꽃을 좋아하는 루다 아줌마와 친해지기
프라하에서 봄을 맞이했다. 봄이 되면 우리나라나 유럽이나 꽃시장이 활기차다. 각종 모종부터 흙과 거름까지 한 곳에서 해결하고 집안의 인테리어를 바꾸기 위한 모든 자재들이 모여 있는 곳에 사람들도 모인다.
어느덧 나이를 먹어서인가 억지로 꾸며 놓는 것들보다는 자연스러운 것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을 때 가장 보기가 좋고 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프라하 시민들도 텃밭 가꾸기를 좋아한다.
마을 곳곳에 텃밭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아파트를 제외한 많은 집들은 집안에 뜰이 있고 텃밭도 있고 화단도 있다. 하지만 별도로 텃밭을 임대해 아담한 농막을 짓고 자연과 함께 아름다움을 가꾸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모습들이 너무 부러워 나는 일부러 마트 가는 길에 텃밭이 늘어선 숲 속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어여쁜 꽃들이 형형색색으로 피어 있는 곳도 있고 거름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도 있다. 허브와 야채들이 싱싱하게 자라는 밭도 볼 수 있다. 남의 것이지만 보기만 해도 좋다.
레스토랑 2층 발코니에 텃밭을 만들기로 했다. 나무로 틀을 짜서 깊이 있게 흙을 채우고 이것저것 심어보자고 한동안 자재를 보러 다녔다. 그러나 봄날은 유유히 흐르고 결국 계획했던 것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발코니에 늘어져 있던 화분들과 재활용품 용기들 안에 흙이 담겨 있고 잡초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니 지난해에 텃밭용으로 사용했던 것들인 것 같다. 그것들을 재 사용하고 사과박스 같은 나무상자를 이용해 허브라도 심어보자 싶어 혼자 시간 나는 대로 작업을 했다. 잡초들을 제거하고 흙을 보충하고 사다 놓은 허브 모종들을 심었다. 물론 산책길에 만난 야생 허브들도 조금씩 떼어다가 옮겨심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 주방에서 일하는 루다가 느닷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무엇인가 찾고 있는 루다의 표정은 곱지 않았다.
발코니에 있던 화분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식물을 심어 놓은 것을 보고 뭔가 심사가 불편해진 것 같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난 체코어를 모르기에 루다가 무엇을 찾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표정이나 어투로 보아 자기가 예전에 심어놓았던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같다. 그것을 어디에 놓았냐고 따지는 것 같았다.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서 야생초 꽃이 피었다가 진지 며칠 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테라스의 난간 위에 올려놓았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어엿한 한 송이 꽃을 품은 그 화분을 엎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루다가 찾는 것이 그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에 있으니 찾아보라고 했다. 내가 정리한 것들은 박스 안의 거름기 없는 흙과 그 흙속에서 질기게 뻗어가고 있는 잡초들이었다. 루다는 테라스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출근길에 길가에서 꽃을 꺾어와 내밀기도 하고 휴식시간엔 꽃을 따러 산책을 나가기도 하는 루다, 그녀는 꽃과 식물을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이 레스토랑 안의 화분들도 그녀가 관리해 왔던 것 같다. 아침에 출근하면 청소부터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때에 따라 선 분갈이도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나타나 이것저것 내 맘대로 엎고 만들고 옮기고 해 대니 마치 자기 영역을 빼앗긴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일까. 자기가 어디선가 옮겨다 심어놓은 작은 풀꽃을 찾아내라고 심통을 부리는 것처럼 나는 느껴졌다.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았는지 그 후로는 별 말이 없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루다는 차츰 마음을 비워가는 듯했다. 내가 분갈이를 하면 빼꼼히 내다보고는 혼자 중얼거리며 한발 물러선다. 아마도, 화분 크기에 비해 흙이 많으니 적으니 하며 참견하고 싶은걸 혼잣말로 대신하며 피식 웃으며 지나가는 것도 같다. 때에 따라선 내가 너무 눈치가 빨라 언짢아지기도 한다.
루다는 시골에서 자라서 약초나 나물 같은 것에 밝았다. 하지만 나도 산골에서 전원생활을 5년이나 했다. 5년 동안 자연과 함께 살며 알게 된 것들도 만만치는 않다는 걸 체코에 와서 뻐기려 하고 있다. 특히 나는 허브에 관한 공부를 나름 했던 터라 기어이 허브 정원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오기까지 부리게 되었다. 결국 루다도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을...
마우스는 집에서 키우기도 하니까 괜찮아!
언니가 일이 있어 한국에 한 달가량 다니러 갔다. 그동안 호텔과 레스토랑의 전반적인 관리를 내게 맡겼다. 사실 직원들 휴가 일주일을 빼면 많은 기간은 아니라서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언니가 없는 동안에 루다와 많이 친해졌다.
아무래도 낯선 이국땅에서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언니 가족 외에는 루다와 셰프 마르틴이었다. 그들이 출근하기 전 나는 커피를 내렸고 가끔 함께 커피를 마시고 하루 일과를 준비하곤 했다. 간혹 손님이 없어 시간이 날 때면 루다는 빨라징끼를 만들어 가져다주고 마르틴은 굴라쉬를 맛있게 만들어 준 적도 있다. 나는 체코의 굴라쉬를 참 좋아한다. 곁들여 나오는 빵이 낯설지가 않다. 한동안 나는 루다와 마르틴을 통해 디아스포라를 넘어 한 가족이 되어 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평일 아침이었다. 루다가 출근하기 전에 나는 산책을 다녀오려고 1층으로 내려왔다. 순간 엘리베이터 앞에서 작고 동그랗고 검은색 실뭉치 같은 것이 또르르르 굴러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얼른 뒤쫓아 갔는데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실뭉치, 딱 주먹만 한 검은 실뭉치 같았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꼬리가 달린 움직이는 쥐가 틀림없었다. 쥐를 찾느라 홀 안을 구석구석 다 쑤시고 다녔다. 눈 깜빡하는 새에 다른 문을 통해 나갔는지 황당해하는데 루다가 출근을 했다. 나는 휴대폰의 번역기를 돌려 이 건물 안에 쥐가 있다고 알렸다. 루다는 그 쥐가 어떻게 생겼냐고 물었다. 내가 본 것, 새까맣고 동그랗고 꼬리가 달린 방울 같은 쥐를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다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하는 말, 여기서는 그 쥐를 마우스라고 하잖아. 그렇게 생긴 마우스(방울쥐)는 집에서 같이 살아도 괜찮은 거야. 걱정하지 마! 였다. 헐~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거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