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이 나물이 나올 때가 되었으니 나물 캐러 가자는 말을 며칠 전부터 계속하는 김여사. 매우 큰 작업이니 몇 사람 손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의 친구와 동생까지 합류해서 휴일 아침 명이 나물을 찾아 출발했다.
음습한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속도로를 달려 30분가량 지났을까. 조용한 시골마을의 풍경은 달력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다. 지도를 찾아보니 까메니체(Kamenice)라는 작은 도시로 들어선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로 십여분쯤 달렸다. 양 옆으로 울창한 숲이 이어졌고 쭉쭉 뻗은 침엽수림 아래로 짙은 초록의 잎들이 초원처럼 펼쳐졌다.
"와~명이나물이다!"
"안나 씨! 시골에서 풀 뽑던 솜씨 발휘를 좀 해봐, 나온 길에 좀 많이 따야 해~"
매년 명이나물을 따다가 1년 치 밑반찬으로 장아찌를 만들어 놓는다는 K식당 사장인 김여사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한국에서도 본 적이 없는 명이나물을 체코에 와서, 그것도 재배가 아닌 자연 속에 어마어마하게 펼쳐진 군락지를 보고 있다. 오래전에 울릉도에 갔을 때 식당에서 먹어본 것이 전부였다. 울릉도의 특산물이라는 얘기와 함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가물가물 남아있었다.
"이게 정말 명이나물이 맞아요? 무슨 잎이 이렇게 크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게 널려있는 초록빛에 압도되어 머리를 갸우뚱했다.
길 모퉁이에 차를 세워두고 우리는 명이 밭으로 뛰어들었다. 이걸 밭이라고 해야 하나? 누가 심은 것도 아닐 텐데... 버려진 듯 그냥 잘 살고 있는 애들 틈으로 휘적휘적 인간의 발자취를 남기며 손으로는 명이 줄기를 똑, 똑 끊어내기 시작했다. 손에서 마늘냄새가 났다. 산마늘이라 불리는 명이의 효능은 마늘과 비슷한 작용을 하지만 섬유질이 많아 장운동을 좋게 한다고 하니 나에겐 꼭 필요한 약이다 싶어 욕심껏 따 담았다.
유럽 사람들은 명이나물을 잼에 넣기도 하고 수프에 넣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처럼 이렇게 많이 따서 차곡차곡 저장해 두는 요리법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여사는 가끔 체코 손님들에게 명이 장아찌를 서비스로 한 접시 내어 놓기도 한다.
그렇게 한 번 맛을 본 손님들은 요리의 이름을 묻기도 하고 다시 방문할 땐 지난번에 서비스로 먹었던 장아찌를 찾는다. 메뉴에 있는 반찬이 아니다 보니 조심스레 주문을 하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이곳 사람들의 입맛에도 우리나라의 음식이 잘 맞는가 보다. 체코어로 명이나물은 medvědí česnek(야생 마늘)이다. 우리가 산마늘이라 부르는 것과 상통하는 것 같다.
아무리 많이 따도 표가 나지 않을 만큼 너른 산마늘 숲에서 마늘 향기에 취해갈 무렵, 도로 위로 경찰차 한대가 섰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처럼 난 움츠러들고, 뭐지? 뭐가 잘못된 걸까? 싶어 일손을 멈추었다.
차에서 내린 경찰관 한 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서며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김여사와 그녀의 친구인 헤나가 도로 위로 올라갔다. 프라하에 살고 있어도 우린 외국인이고 헤나는 체코인이니 잘 알아서 얘기하겠지 싶으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경찰관과 헤나가 몇 마디 주고받더니 이내 웃으며 인사하고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우리가 나물을 따고 있는 여기 말고도 도로 건너편 숲에도 이곳과 똑같이 명이나물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었다. 경찰관의 얘기로는 저 건너편 숲은 보호구역이니 건드리지 말고 이곳에서만 채취하라고 당부를 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지나가던 차량이 제보를 했나 보다. 산림보호구역에서 동양인 몇 명이 뭔가를 마구 뜯어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우리는 안심하고 더 신나게 명이나물을 채취해 장바구니에 옮겨 담았다. 제법 눈에 띌 만큼 많은 양의 산마늘을 차에 가득 싣고 뿌듯해하는데 김여사가 혼잣말을 한다.
"내년 이맘때까지 쓰려면 이것 가지고는 안될 텐데..."
그렇다. 식당에서 정식 메뉴로 올려놓고 판매를 하려면 내년 이맘때까지 쓸 것을 저장해 두어야 하니까.
"우리끼리 다시 한번 와요~"
내 말에 김여사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나도 이런 푸르른 풀밭이 좋다.
날씨가 흐릿해 비가 올 것만 같아 철수하면서도 나는 자꾸 뒤돌아보았다. 차 트렁크에 하나 가득 땄지만 저 푸른 들판에 펼쳐진 명이는 한도 끝도 없는 양이었다.
우리의 맛을 한 가지씩 외국인들에게 맛 들여주는 주부, K식당의 김여사에 대해서는 쓸 이야기가 참 많다.
가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명이나물 밭으로 초록빛이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