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아침산책은 하루를 시작하는 가장 신선한 행위이며 또 다른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다.
숲이 있는 공원이 집 근처에 있다는 건 커다란 축복이라고 매일 주문처럼 되뇌고 있다.
숲은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며 늘 내어줄 준비를 하기 때문에 고맙고 사랑스럽다.
특히, 숲에서 챙길 것이 많은 나는 숲을 향해 인사를 한다.
"도브리 덴!"
나의 산책코스, 오보라 흐베즈다로 가는 길은 주택가를 지나 펼쳐진 초원을 거쳐 가는 길이 가장 좋다.
키 큰 미루나무와 잘 어울리는 하늘, 그리고 넓게 펼쳐진 풀밭에 서면 가슴이 후련해진다. 아침 6시의 햇살도 좋다.
동네 공원이라 하기엔 이 숲이 가지고 있는 야생화, 야생초들의 어우러짐과 숲의 넓이나 지형이 예사롭지 않다. 커다란 산이 안고 있는 숲에 비하면 쉽고 가볍게 언제든 들어설 수 있는 정원 같은 오보라. 뛰거나 걷거나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기엔 천국 같은 곳이다. 이 숲엔 길이 여러 갈래다. 어느 길로 들어서면 야생의 산속을 헤매는 듯하고 또 어느 길로 들어서면 아이들의 놀이터가 있는 잘 가꾸어진 동네 공원이라 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사방으로 출입문이 있고 출입문마다 동네가 다르며 두꺼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더 신비로운 것일까. 담이 없으면 좋았을 텐데 싶다가도 멀리서 바라보면 저 안엔 뭐가 있을까, 하는 두근거림이 생기기도 했다. 옛날 왕의 사냥터였던 곳이라 그대로 남아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각종 산나물이 즐비한 봄날, 나는 이것들을 채취하기에 여념이 없고, 동네 주민들은 개를 끌고 유유히 지나가거나 조깅을 하느라 미처 이 동양인 여인을 보지도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명이나물이라 불리는 산마늘은 귀하기도 하건만 이 공원에 지천인 이것들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니 모두 내 것이나 다름없다.
두 종류의 명이나물/이 근처에 오면 마늘냄새가 은은히하게풍긴다.
하늘바람꽃
울창한 나무 아래에 하얗게 피어있는 꽃, 작고 순결해 보이는 이 꽃의 이름은 하늘 바람꽃이다. 한국의 깊은 산속에서 바람이 차가운 봄날 잠시 피었다가 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개화 시기가 잠깐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곳에선 한 달 내내 오가며 하얗게 무리 지어 핀 바람꽃을 볼 수가 있다. 이 또한 내가 누리는 행복 중 하나이다.
어디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인지 아주 작은 개울을 이룬 물길이 호숫가로 흘러가고 있다. 이 물줄기를 따라 걷는다. 나는 이 길을 매우 좋아한다. 이 개울길을 따라 호수까지 걸으며 혼잣말을 시작한다. 내게 주어진 독백의 길이다.
나는 어제 무엇 때문인지 기분이 울적했답니다. 공연히 모든 게 귀찮아지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볶아댔다고요. 문제는 제 마음에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시간은 내게 무슨 색을 칠하고 있는 거지? 나를 위해 어떤 최선을 하고 있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어제의 그 마음을 이 아침, 흐르는 물줄기에 얹어드릴게요. 가져가면서 말끔히 씻어 주세요.
이 길은 내 마음을 성찰하는 고백의 길이 되었다. 호숫가로 가 보면 물이 왠지 탁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불편한 마음의 찌꺼기들이 이곳에 고여 있는 것은 아닌지.
오보라 공원의 호수
오보라 흐베즈다 공원 중앙엔 별이 있다. 아니, 별 모양의 집이 있다. 흐베즈다(hvezda)는 영어로 star, 즉 별을 뜻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이 집을 별집이라 하고 실제로 지붕의 모양이 육각형의 별 모양이다. 여러 갈래의 숲길에서 방향을 잃었을 땐 큰길을 찾아 이 별 모양의 지붕을 바라보며 걸어 나오면 된다.
옛날 왕의 사냥터였다고 하는 이 숲은 조용히 쉴 수 있는 자리가 몇 군데 있다. 별집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에 자그마한 카페가 있어 커피 냄새가 황홀하다. 마치 호텔을 연상하는 집 구조지만 시즌별로 각종 전시회를 하는 갤러리로 사용 중이다.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하늘의 구름을 보는 것도 행복하다. 별집 좌측으로 난 사잇길로 들어서면 비탈길 위에 반들반들한 나무 그루터기가 있다. 그 위에 걸터앉아 호수로 가는 길을 내려다보는 것도 참 좋다.
Obora Hvezda
오보라 숲은 프라하 중심가에서 떨어진 주택가에 있기에 관광객들에겐 알려지지도 않았다. 이곳 주민들에겐 산소통 같은 곳, 주민의 것으로만 존재한다. 내가 이 동네에 살고 있는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놀러 오는 곳이다. 걸으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그냥 바라만 보지 않아도 되는 곳, 오보라공원을 오고 가며 내가 가장 많이 얻는 것들은 무엇일까. 각종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봄엔 체리를 따먹고 여름엔 자두맛 열매들이 구석구석에 있어 입이 심심치 않다. 가을이 올 무렵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들로 새콤달콤 냄새가 진동을 한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손 닿는 곳의 잘 익은 사과를 따서 한 입 베어 무는 순간의 기쁨, 돈 주고 살 수 없는 행복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고 있는 자연이다. 풀밭을 걷다가 허브향기에 취해 주저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민트며 캐모마일을 채취한다. 이곳에 살고 있는 동안은 이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이 아닐런지.
내일도 나는 아침을 안고 달릴 것이다.
프라하 malostranska에서 Billa hora방면 22번 트램을 타고 15분 정도 오면 obora hvezda역에서 하차, 우측으로 펼쳐진 초원과 숲이 보인다. 도심에서 들떴던 마음 잠시 가라앉히고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