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왕적 대통령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에디터 소.소입니다. 병신년 한 해가 지나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다들 새해 계획은 세우셨나요? 하시는 일, 원하는 일 모두 잘 되시길 ‘사적인 모임’이 응원하겠습니다.
새해가 밝았음에도 지금의 정치권은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죠? 지난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 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헌재와 특검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피눈물이 난다"라며 입장을 전했다고도 하는데요. 이 시점에서 피눈물 나는 입장은 과연 누구인지 모를 일입니다.
한편,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국정 농단 중심에 있는 최순실 씨에 대해 “시녀와도 같은 사람”이라 했다 전해지는데요. 마치 한 나라의 왕이 말한 듯한 표현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은 그의 행동에서도 쉽게 포착할 수 있었는데요. 잠깐 머무는 행사장에서 전용 화장대를 만들도록 지시하는 등 과도한 의전 요구를 통해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왕과 같은 형태로 인식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2017년의 해가 뜬 21세기 시점에서 말이죠.
언론과 학계에서는 이처럼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권한이 제왕과 같이 비대해진 형태를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1973년 술레진저가 출간한 「The Imperial Presidency」에서 처음으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래로 정치학, 역사학계에서는 통용되어 사용되고 있죠
술레진저는 미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긴급상황에서의 대통령의 권한 남용으로 정의하였으나, 한국에서는 보다 넓은 의미로 수용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제의 본원적 핵심은 3권 분립, 즉, 입법부, 사법부가 독립성을 유지하여 행정부의 독주를 방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해질 경우 이 균형이 무너져 결국 전근대 왕정과 같이 권력을 사유화하게 되는데, 이 경우까지 제왕적 대통령제의 모습으로 보고 있죠.
‘제왕적 대통령제’,
국민들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된 ‘대통령’ 앞에 봉건시대 왕정체제인 ‘제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으신가요?
일부 학계에서는 대통령제의 단점이자 한계로 지적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원인을 크게 개인적 영역, 정치문화적 영역 그리고 제도적 영역으로 분류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측면에서 대통령 개인이 독단적 리더십 및 독재적 리더십을 갖고 있을 경우 제왕적 형태를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정치문화적 측면에서는 정치권에 만연한 수직적이고 경직된 현 정치문화 속에서 제왕적 형태의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은 더욱 커지게 되죠.
그리고 제도적 측면에서 대통령은 헌법상에 명시된 바와 같이 국회, 사법, 행정에 대한 권한과 긴급명령권 긴급 재정 및 경제 처분권과 계엄 선포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대권이 대통령 개인에게 쏠려 있는 만큼 제왕적 형태의 수장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가령, 국회의 동의를 기반으로 하지만 국무총리 임명권을 대통령이 갖고 있다는 점,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해 여대야소인 통합정부에서 의회가 대통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등이 일례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대통령제를 도입했던 초대 대한민국 정부에서부터 대통령은 제왕적 형태로 등장했습니다.
왜 대통령제를 처음 실행한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지금까지
제왕적 형태의 대통령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던 걸까요?
과연 그 원인이 단순히 대통령 개인의 능력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제도적으로 과도한 대권을 쥐여주었기 때문일까요?
정말 헌정 이래 대통령 개개인이 모두 독재적 리더십만을 가진 인물들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정권의 성격을 대통령 개인 한 사람의 과오라고 모는 것은 정권 내 부역자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또한 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과도한 대권 속에서도 충분히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법률이 존재하기는 했었습니다. 이를 활용해 자정 작용할 수 있었음에도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행정부의 중심인 청와대까지도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없었다는 것은 다른 영역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요?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무엇이 민주주의 국가의 제왕을 만들었는지 그 역사적 흐름과 뿌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지금의 내각 책임제적 요소를 갖춘 대통령제부터 현대사의 암흑기로 불리는 유신 체제까지의 역사 속에서 대통령은 어떻게 제왕처럼 군림할 수 있었을까요?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내각책임제를 선택할 것인가, 대통령제를 선택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이승만과 친일파 정당이었던 한국 민주당(이하 한민당)은 팽팽하게 대립하게 됩니다. 미 군정의 비호를 받고 있었던 이승만은 자신의 권력욕을 포기할 수 없었고, 친일파 정당인 한민당도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각책임제 도입을 주장했죠. 이승만은 해방 이후 남한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었기에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고, 동시에 반공과 친미주의적 성향을 가진 대표적 인물이었습니다.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친미적 인물인 이승만 한 개인의 상징성과 영웅성을 강조하며 배후에서 그가 초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이죠.
결국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하되 대신 내각 책임제적 요소인 국무총리직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로 조정되어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선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됩니다. 즉, 대통령제 자체의 수립 과정에서부터 이미 정치적 권력이 한 데로 모인 내정자가 있었고, 이는 그를 민주 공화정의 왕으로 만들 것임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었습니다.
본격적인 문제는 바로 그다음부터였습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이승만이 갖는 개인적 상징성과 영웅성을 기반해 선출했으나 전쟁 발발과 그 과정에서 보인 여러 행태들은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그의 리더십 자질을 의심하게 만들었죠. 간선제였던 제헌헌법 대통령제 아래에서 이승만의 재선은 더욱 불투명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내각의 부정적 여론 대신 언론을 통해 형성된 대중들의 긍정적 여론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직선제가 필요하다 생각하게 되죠. 지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이승만은 폭력단체를 비롯한 원외 단체를 끌어들여 국회의원들을 납치 및 구금하고 직선제 개헌을 통과시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재선에 성공하죠. 비극적이게도 이 사건, ‘부산 정치파동과 발췌 개헌안 통과’를 기점으로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마치 왕의 권력처럼 사유화되고 독재를 향한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승만의 삼선과 부통령으로 이기붕을 앉혀 정당정치를 이어가려던 음모는 삼선 개헌 시도로까지 이어집니다. 삼선 개헌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국회 내 136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투표 결과 135명으로 한 표가 모자랐죠. 하지만 재적의원 2/3이 135.333… 이라는 수에 반론을 제시, 135명도 가결임을 억지 주장하여 개헌 조항을 가결시킵니다. 바로 이 사건이 ‘사사오입 개헌’이죠. 앞선 개헌 사례와 달리 사사오입 개헌은 본격적으로 이승만 개인의 장기집권을 법적으로 확인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왕적 대통령제 선례의 시작이었죠.
불행 중 다행일까요. 결국 권력의 사유화는 3.15 부정 선거를 계기로 발발한 4.19 혁명에 의해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마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19 혁명을 통해 민중들은 민주주의적 가치가 무엇인지 인지하고 열망하여 잘못된 시작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고요. 그렇지만 문제는 이승만이 하야하고 등장한 허정 과도정부가 4.19 혁명의 가치를 수용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죠.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승만 한 개인만 떠난 것이지 그를 축으로 뻗어있던 거대한 뿌리들은 그대로 남아 과도정부의 역할을 했었기 때문이죠. 민주주의적 가치와 대통령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시대가 붙잡아주지 못한 상황에서 5.16 쿠데타가 일어나 새로운 민주공화정의 제왕 박정희가 등장합니다.
박정희 정권 시기는 공개적으로 독재체제가 부활된 시기였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쿠데타라는 비민주적 방법을 통해 정권을 획득했다는 것이었는데요. 5.16 쿠데타 당시는 이승만 세력을 물리치고 4.19 혁명의 정신을 이어간다는 명분으로 등장했지만 법치국가에서 쿠데타는 엄연히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민주적 가치 측면에서 자신의 한계를 숨기기 위해 경제 드라이브를 대대적으로 활용합니다. 지금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권력 등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죠.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이 진행되어 수출이 증대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들 스스로가 허리띠를 졸라맨 노력은 평가절하되고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폭압 등의 비민주적 행위는 묵살되죠.
또한 공산당 활동 전력이 있다는 박정희 콤플렉스는 대통령의 강력한 대권을 정당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숨기려는 목적 아래 제1 국시를 ‘반공’으로 삼고, 강력한 반공정책을 실시하게 되는데요. 북한으로부터 남한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 전체가 전시체제를 유지하고 강력한 국가권력 즉,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함을 정당화한 것이죠. 그리고 그가 갖는 이 레드 콤플렉스는 냉전이 와해되는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도 유지되어 유신 체제 등장의 배경이 됩니다. 독재가 정당화되고 폭압이 당연시되는 유신 체제 아래에서 한국 사회는 더욱 경직되어갔고, 박정희는 더 이상 행정부 수장이 아닌 초헌법적 기구이자 마치 황제로서 군림했죠.
이렇듯 박정희 정권 시기의 경제개발 드라이브와 반공정책은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양산한 결정적 원인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 이후로부터 국가 주도형 경제개발에 대해 양적 측면의 성공만을 비춰 그 이면의 민주적 가치 훼손, 가령 수직적 의사결정과 독선을 우리 사회는 암묵적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경제적 영역과 민주적 영역은 엄연히 다른 평가 기준임에도 말이죠. 분단국 가이지만 전시 상황과는 많이 다른 현대사회에까지도 아직까지 빨갱이라는 단어가 통용되고 수용되는 것도 그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시기와 이후 전두환 정권까지 이어진 한국 사회 병영문화의 잔재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수직적 의사결정과 상명하복의 의사전달 체계를 내재화했죠.
격동하는 희극적인 현대사 속에서 민주적 가치는 끊임없이 풍파를 맞았고, 그 속에서 허울뿐인 대통령제는 사실상 권력을 재생산하는 도구로서 전락했습니다. 어쩌면 제왕적 대통령제, 즉, 행정부의 권력 과부하는 그 당시 논외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경제, 안보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암처럼 자리 잡은 권력체계는 오늘날까지 영향을 주어 지금의 지경까지 이르게 했죠.
역사 속에서 남한 사회의 대통령제는 본원적 의미로 작용한 적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독재에 대한 논의는 항상 미뤄졌고, 권력 집중화는 당연시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좌절하거나 한국의 대통령제에 대해 비관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비극적이고 혼란스러운 지금의 정국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바로잡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 긴 제왕의 역사를 끊을 수 있는 기회가 말입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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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일, 「제왕적 대통령의 기원」, 『황해문화』 60, 2008.9, pp.117-138.
홍득표, 「제왕적 대통령론 : 그 특징과 원인을 중심으로」『윤리연구』 50, 2002, pp.145-171.
박효종, 「시론: 제왕적 대통령제가 저질 대통령 낳는다」, 『한국논단』 156, 2002, pp.18-25.
기사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다. 청와대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허밍턴 포스트, 2016.11.16.
http://www.huffingtonpost.kr/2016/11/16/story_n_13003694.html
“남경필 경기지사 “최순실 사태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제“”, 노컷뉴스, 2016.11.15.
http://www.nocutnews.co.kr/news/4685200
“탄핵까지 최장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 미디어 오늘, 2016.11.17.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3379
“[세상읽기]제왕적 대통령제와 ‘비선’”, 경향신문, 2014.12.0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2082051475&code=990100
내가 바로 민주공화국의 왕이다! - 에디터 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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