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을 읽고
정혜윤의 <아무튼 메모>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우리의 삶은 시간을 쓰고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다.”
전 세계가 기후 변화로 폭염, 폭우, 폭설, 가뭄, 산불 등 재난을 겪고 있는 요즘, 이 문장을 자주 곱씹어 보게 된다. 우리의 삶, 인류의 역사가 만들어 낸 쓰레기들이 우리 터전을 병들게 했구나. 위대한 자연의 회복 능력을 무참히 깨트려 버렸구나. 편리하고 쾌적한 것을 넘어서 값비싼 것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욕심내며 사는 데 익숙해져 버린 우리가 과연 어떻게 절제하고 회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사고팔며 기대어 살아간다. 쓸모 있는 것을 만들어 사고파는 일은 나쁘지 않다. 다만 금방 잊히고 버려질 쓸모없는 것들을 사고파는 일은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 또한 자원을 낭비한다는 점에서 쓰레기다. 이는 비단 물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극적이고 비방하고 현혹하는 이야기들은 감정의 찌꺼기, 부스러기 같은 가십만 남긴다는 점에서 역시 쓰레기다. 쓰레기가 쌓이면 더러운 가스가 방출되고 공기가 탁해지고 정화를 위한 회복력, 균형을 깨트린다. 평화로운 삶이 위협받는다.
인간이 시간을 써서 남겨야 하는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진실이다.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짓는 것은 삶을 통해 발견한 진실-우정, 사랑, 신뢰, 개성, 자유, 공존…-들을 이야기의 형태로 남기고 다음 세대로 계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진실, 본질 등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이것을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실재’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실재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됩니다. 세상은 외피를 벗고 더욱 강렬한 삶을 얻은 듯 보입니다.”
실재는 휘발되지 않고 남는 것이며, 외피가 아니라 속에 있는 것이며, 세대를 거듭해도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억압하고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강렬하고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쓰레기를 남기는 삶이 아닌 진실을 남기는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가는 감정의 빨간빛이 아닌 진실의 하얀빛으로, 속박 없이 자유롭게 불타오르는 마음으로, 실재하는 것들을 이야기로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수를 쓰든 자신의 힘으로 여행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갖고, 세계의 미래나 과거를 사색하고, 책을 상상하며 길모퉁이를 배회하고, 생각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드리울 만큼 충분한 돈을 갖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진실을 추구하는 삶은 치열한 삶이다. 시련 속에서도 복종 대신 자유를 선택하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휘둘리지 않고, 직접 경험하고 판단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표현을 빌리면 ‘심오하면서 얄팍한 당신의 영혼을, 허영과 관용이 공존하는 영혼을 밝게 비춰내야 하는’데 이 또한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매일 새로운 바다를 헤엄친다는 상어처럼 관성에 물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고, 사색하는 고독한 시간을 의식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남들의 명령을 수집해 따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 의미 있는 것에 매진해 고유한 빛과 감성을 발해야 한다. 세상의 존재들은 어떤 질서에 의해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흩어진 채 각자 자리에서 고유한 빛을 내며 빛나고 있을 뿐이므로. 우리는 모두 단독자로서 자기의 빛을 찾아야 한다. (단, 자기만의 방을 마련할 수 있는 돈이 있다는 전제하에. 돈이 필요한 이유는 사치나 과시가 아니라 자유롭게 사색하고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시간을 써서 쓰레기를 남기는 대신, 실재하는 것을 마주하고, 진실을 남기는 삶은 철저한 단독자의 삶인 동시에 책임감 있는 삶이다. 쓰레기는 삶의 터전을 오염시키지만 진실은 삶을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말한다.
“인간을 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 관련해서 본다면, 그리고 하늘도 나무도 그 밖의 무엇이든 그 자체로 볼 수 있다면, 어떤 인간도 시야를 가로막아서는 안 되므로 밀턴의 악령을 넘어서서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매달릴 팔이 없으므로 홀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관계를 맺는 세계는 남자와 여자의 세계일 뿐 아니라 실재의 세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마주한다면, 그때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피드에 갇혀있지 말고, 세상의 말들, 명령에 굴복하지 말고, 인간의 관계에만 몰입해 이 세상을 보지 말고, 실재를 마주하는 활기찬 삶을 향해 세상으로 나가자. 사물을, 살아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특별한 빛을 찾아보자. 항상 자유롭게 생각하고 정직하게 쓸 용기를 가지자. 이렇게 하루하루 올곧게 살면 내 삶이 어떤 조그만 진실이라도 남길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