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빛 Feb 12. 2021

갯고랑 넘어야 먹을 수 있는
바지락칼국수, 그 깊은 시

제부도 바지락 칼국수

  

  봄내음이 콧가를 살랑거릴 무렵이면 서해안을 간다. 나른한 봄볕이 달궈지기 전에 서둘러 출산준비를 하고 있는 바지락을 만나기 위함이다. 이 시기에는 조개를 좋아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칼국수를 즐기는 사람들도 서해안으로 몰려든다. 



  전국적으로 바지락이 생산되고 있지만 서해안의 바지락이 제일 맛있다. 바지락은 껍데기가 두껍고 동그란 모양이다. 황갈색의 다양함도 그렇지만 줄무늬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감히 누가 따라 할 수 있을까. 


 바다가 밀려나가는 시간에 맞추어
갯고랑(조류의 통로)을 이용해야 했다.
 발이 쑥쑥 빠지고 미끄러운 갯벌을
넘어지지 않고 걷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어린이는 업고 노인은 부축해서 건네주어야만
제부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제부(濟扶)’,  참으로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 이름이다.
자연환경이 ‘효’를 선양(煽揚)한 셈이다. 


  필자가 처음 제부도를 갔을 때는 바닷길이 열리는 시간을 몰라 송교리 끝자락에서 허망하게 바다만 바라보아야 했었다. 제부도는 경기도 화성시에 속한 작은 섬(면적 0.98㎢)이다. "저비섬", "접비섬"이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조 중엽 이후에는 "제약부경(濟弱扶傾)"을 몸으로 실천하는 곳이라 하여 ‘제’ 자와 ‘부’ 자를 따서 제부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제부도로 가려면 송교리를 지나야 한다. 지금이야 제부도로 가는 길이 시멘트 도로로 포장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바다가 밀려나가는 시간에 맞추어 갯고랑(조류의 통로)을 이용해야 했다. 발이 쑥쑥 빠지고 미끄러운 갯벌을 넘어지지 않고 걷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어린이는 업고 노인은 부축해서 건네주어야만 제부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제부(濟扶)’,  참으로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 이름이다. 자연환경이 ‘효’를 선양(煽揚)한 셈이다. 



  제부도 모세의 길이 하루에 두 번 열리면 4~5m 깊이의 바닷물이 양쪽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바닷속에 잠겨 있던 2.3km의 길이 마법처럼 드러난다.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도 좋다. 바다에 깔린 붉은 우뭇가사리가 단풍처럼 곱다. 바다 위에 떠 있던 작은 배들도 갯벌 위에 얌전히 앉았다. 제부도를 찾던 날은 운 좋게 하늘이 맑았다. 마치 바닷물이 하늘로 올라간 듯 갯벌 너머 하늘이 푸르다.



  제부도는 지하수 맛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물맛도 음식 맛도 좋다. 갯벌체험 장소로도 유명하다. 갯벌이 깊지 않고 부드러워서 어린이가 놀기 좋고 조개와 게, 쏙, 고둥도 캘 수 있다.  

  섬은 북쪽의 자갈밭과 해수욕장을 제외하면 모두 갯벌이다. 20년 전만 해도 바지락을 캐서 팔았다. 바다에 들어가기만 하면 갯벌에 숨은 바지락을 한 양동이 씩 캐왔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삽과 갈퀴, 양동이면 족했다. 낙지도 많았다. 지금은 바지락도 낙지도 그전만 못하다. 



  바지락은 해감(바닷물 따위에서 흙과 유기물이 썩어 생기는 냄새나는 찌꺼기)을 빼는 것이 중요한데 해감을 잘 못하면 먹을 때 불편하기도 하고 국물 맛이 텁텁해진다. 해감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흐르는 바닷물에 4시간을 담가 두면 된다. 깨끗하게 조개껍질도 닦아야 한다. 물속에서 껍질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바지락 거리며 청명하다. 통통한 바지락으로 육수를 내는 것은 대파와 호박이면 된다. 바지락의 통통한 속살이 뽀얗게 부풀어 오를 때 쫄깃하게 잘 뽑은 칼국수를 살살 풀어 넣는다. 뽀얀 국물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칼국수 면발이 설설 끓는 국물 위로 올라온다. 


  먹는 순서가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먼저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맛보아야 한다. ‘이야~’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다. 깊은 바다에 풍덩 빠졌다가 떠오른 기분이다. 뜨거운 것을 잘 못 먹는 필자도 바지락칼국수는 작은 그릇에 덜어먹지 않는다. 국물을 절반쯤 홀홀 마시면서 바지락 향기로 온몸을 적신 후 칼국수에 젓가락을 댄다. 이때 주의할 점은 바지락 향에 빠진 칼국수를 실컷 맛 본 후 다른 반찬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바지락 때문에 밍밍해진 입안을 얼큰하고 시원한 김치로 달래고 싶겠지만 참는 것이 좋다. 그래야 바지락칼국수의 맛을 가슴에 남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혹 어떤 이들은 칼국수에는 김치를 싸서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바지락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맨 나중에 한 점으로 마무리하면 어떨까? 단무지가 나온다면 그것으로 대신해도 좋다. 



  바지락칼국수는 양념이 과하지도 않고 조리방법이 어렵지도 않다. 먹는 방법도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그러나 제부도의 바지락칼국수가 특별한 이유는 신선한 바지락과 좋은 물, 그리고 신비한 갯고랑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제부도가 건강하게 유지되길 바란다. 멀리 갯벌체험을 하는 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도움 주신 분]     

중앙횟집 김수남(남) 제부도에서 식당을 한 지 20년 되었다. 바지락 어획량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828?_ga=2.208179538.1351539288.1613098536-477163452.1613098536

매거진의 이전글 진정한 오징어순대는 바르르한 밥알을 손으로 채워 넣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