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구즉 할머니 묵집
작은 모자를 쓴 도토리.
맑은 어느 가을날이면 엄마는 김밥을 싸서
어린 나를 근처 산으로 데리고 가셨다.
높지 않은 산이었지만 정상까지 가는 길을 따라
오르며 도토리를 주웠다.
여기 하나, 저기 하나
떨어진 도토리를 찾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고 금세 주머니는 불룩해졌다. 너무 많이 주우면 다람쥐가 먹을 게 없다면서 도토리묵을 만들 만큼만 줍자고 하셨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도토리묵은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엄마는 주워온 도토리를 며칠 동안 물에 담가 껍질을 까서 말리거나 그대로 갈아서 묵을 만들었던 것 같다. 말은 간단하지만 도토리를 주웠던 것을 잊을 무렵이 되어야 엄마의 묵을 먹을 수 있었다. 그만큼 만들기가 번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음식이다.
대전에는 금병산 줄기를 따라 박산, 적오산, 오봉산, 불무산 등 12개의 크고 작은 산들이 있다. 구즉동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만 해도 동네 뒷산에는 도토리가 지천에 있었고 묵을 만들어 파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묵마을로 유명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중 구즉 할머니 묵집은 지금도 故강태분 할머니(2009년 1월, 83세로 돌아가심)의 손맛을 추억하고 찾는 단골들이 많다. 故강태분 할머니는 스무 살 무렵 시집와서 도토리를 주워 묵을 만들어 팔았다. 당시에는 소쿠리에 묵을 이고 다니며 시장을 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점차 찾는 손님이 많아지면서 열 명이 겨우 앉을 만한 변변치 못한 공간에 비닐을 치고 작은 식탁 5개로 시작을 했다.
3대째 운영하고 있는 손주(이성렬)의 이야기에 의하면 예전에는 구즉동이 워낙 외진 시골마을이었기 때문에 하루에 버스 한 대가 4-5번 운행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 묵을 먹으려고 승용차가 드나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2-30개의 묵집이 주변에 생겼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음에도 운 좋게 할머니의 단골손님이었던 할아버지 세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 오려고 빨간 차(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왔어.
할머니 묵집이 저 위에 있을 적에 자주 왔지.
옛날에는 그 집 대문간 밖에
콩 장사들, 조, 찹쌀 파는 사람들이 죄 줄을 서 있었어.
묵 먹으러 온 사람들한테 팔려고 말이야.
그때는 집도 엉성하고 초가집이었지만
할머니 묵집 만한 곳이 없었어.
묵집이야 많았지. 그래도 할머니 집만 줄을 섰어.
줄 서면서 들어가 먹고, 먹고 그랬는데 딴 집에는 사람이 없었어.”
묵사발, 묵무침, 부침개. 도토리묵사발은 묵말이라고도 부른다. 간장 물에 일정한 길이로 썬 도토리묵을 소복이 담고 그 위에 김과 깨소금, 고춧가루를 올렸다. 소박한 차림 옆에는 신김치와 소금에 삭힌 고추가 있다. 국물 맛은 깊고 향긋하다. 국수 모양의 묵 한 오라기를 젓가락질하려니 자꾸 미끄러지고 끊어진다. 필자의 모양새가 우스운지 할아버지 한 분이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라며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
“묵사발은 젓가락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먹는 거야. 그릇에 입을 가까이 대고 후루룩 하고 먹어야지. 그리고 신 김치를 올려 먹으라고, 여 삭힌 고추도 넣고. 그래야 맛있어. 옛날에는 할머니가 김을 꿔가지고 이렇게 손으로 비벼서 부셔 넣었어. 그때가 2천 원이었어. 시골 살면서 묵 안 해 먹어본 사람 있나. 그래도 그 할머니 묵이 먹고 싶어서 왔지. 묵사발 국물이 달라. 구수하지, 암. 지금 살아 있으면 그 할머니가 나랑 동갑일 거야.”
묵과 씨름을 하던 필자는 할아버지 말씀대로 숟가락으로 묵을 떠서 후루룩 소리를 내보았다. 그리고 단숨에 향긋한 간장 향이 베인 찰진 묵사발 한 그릇을 비웠다. 묵무침도 맛있다. 피곤한 입안을 상큼한 초와 상추, 양파, 오이, 당근이 위로해 준다.
단골들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잊지 않고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돌아가신 할머니의 맛을 추억할 수 있는 간장과 된장, 고추장 맛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에 현재의 봉산동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할머니의 맛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손주의 노력이 대견하다. 故강태분 할머니는 손님들에게 정 많은 분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묵 써는 채칼을 손수 만드실 만큼 눈썰미도, 손재주도 많으신 분이었다. 손자는 할머니가 쓰시던 묵 써는 채칼을 보여준다.
필자는 머리 흰 단골들이 오봉산에서 주웠다는 도토리 한 움큼을 선물 받았다. 그들은 젊었던 어느 가을날 할머니가 따듯하게 내어 주시던 묵사발이 그리웠나 보다.
[도움 주신 분]
구즉 할머니 묵집 3대째, 이성렬(손주), 임미연(며느리)
손주 부부는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뒷산의 도토리를 재료로 묵을 만들지는 않지만 좋은 도토리 가루를 선별하여 그 맛을 이어가고 있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882?_ga=2.41458402.1351539288.1613098536-477163452.1613098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