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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20. 2021

빙그르르 뽑아 먹고
껍질도 고아먹는 다슬기

춘천 달팽이 국

  왼손에는 삶은 다슬기를, 오른손에는 이쑤시개나 바늘을 들어야 한다. 딱딱하고 검은 딱지 밑의 목을 정확하게 찔러 왼손을 빙그르르 돌린다. 손목에 힘을 주면 잘 나오던 다슬기가 끊어지기 때문에 내장이 다 나올 때까지 조심히 돌돌돌. 능숙하게 다슬기를 뽑아내려면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입으로 다슬기를 ‘흡’하고 뽑아보면 되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으나, 잘 되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는 다슬기를 꽤 잘 먹었다.
돌돌 말린 신문에 다슬기를 받아 들고
학교에서 집까지 오는 길에 다슬기 수십 마리를 해치웠다.


  다슬기의 딱지가 있는 곳을 물고 쭉 빨면 잘 삶아진 짭조름한 다슬기가 천정에 턱 붙었다. 어떤 것은 잘 뽑히지 않아 껍질을 와그작 씹어서 속까지 먹느라 애를 썼다. 그때만 해도 이가 좋았나 보다.


  다슬기는 표준말 이름이고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춘천에서는 다슬기를 달팽이라 부르고 충청도 등지에서는 올갱이라고 한다. 소래고동, 갈고동, 민물고동, 고딩이, 대사리, 물비틀, 소라, 배드리, 물골뱅이라고도 부른다.




  햇볕이 따가워지는 초여름이 되면 홍천강 주변에는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이 꽤 많다. 등을 보이고 강바닥을 들여다보며 서성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다른 벌이보다 다슬기 잡는 것이 쉽고 수익도 좋다. 복잡한 도구가 필요하지도 않다. 강바닥을 잘 볼 수 있도록 유리판을 댄 바구니와 다슬기 넣을 비닐봉지 정도. 기술이야 어릴 때부터 갈고닦은 다년간의 경험이 전부이겠지만 그들은 다슬기가 있는 곳을 누구보다 잘 안다. 


  다슬기는 맑은 날보다 흐린 날 활동하기를 좋아한다. 맑은 날에는 돌 밑에 숨어 있으니 돌을 들어 잡고 흐린 날에는 돌에서 나오니 그것들을 주워 담으면 된다.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지만 강은 그 깊이를 떠나 위험한 곳이다. 종종 다슬기를 잡던 노인들이 익사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는데 업으로 하는 분들의 안전이 걱정되기도 한다.



  검은 혹은 짙은 갈색의 껍질에서 분리된 다슬기는 푸른 옥색의 살만 남는다. 수북이 뽑아낸 다슬기는 푸른 물을 흥건하게 내어 놓는다. 그냥 먹으면 비릿한 맛이 나고 끝 맛은 쌉싸름하다. 다슬기 요리법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된장을 넣거나 맑게 끓이는 곳도 있고 산초열매나, 방아잎을 넣어 먹는 곳도 있다. 필자는 된장을 넣고 아욱과 부추를 숭숭 썰어 넣은 다슬기탕을 좋아한다.


  춘천 육림고개 작은 골목에는 현지 주민들에게 유명한 오래된 다슬기 식당이 있다. 어쩌다 강촌에서 다슬기를 유통하다 보니 언제부터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여기는 원래 달팽이 국이라고 부르는데
달팽이 국에는 된장을 풀고 아욱하고 부추를 넣지요.
국물은 무, 양파, 대파, 파뿌리 청양고추를 넣고 먼저 끓여야 돼요.

  “다슬기는 된장이 들어가면 비린 맛을 잡아줘요. 여기는 지역특성상 된장국을 좋아해요. 칼국수도 시래기와 된장을 넣은 장칼국수, 소면도 된장에 말아먹어요. 여기는 원래 달팽이 국이라고 부르는데 달팽이 국에는 된장을 풀고 아욱하고 부추를 넣지요. 국물은 무, 양파, 대파, 파뿌리 청양고추를 넣고 먼저 끓여야 돼요. 손님들이 잡숫고는 다들 시원하다고 하세요. 다슬기는 버릴 것이 없어요. 껍질도 푹 고와서 달여 먹어도 간에 좋아요.”




  여주인(조윤숙 여, 51세)은 바지런히 부엌 정리를 하며 다슬기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는다. 이렇게 많이 담아도 되나 하고 생각이 들만큼 큰 뚝배기에 다슬기를 수북이 담는다. 이 푸른 다슬기가 간에 좋고 해장에 좋다고 하니 하나도 남기지 말고 일단 먹기로 했다. 배가 불룩한 다슬기는 쫄깃하고 어떤 것은 모래알처럼 껄끄럽게 씹히는 것도 있다. 그 모래알 같은 것은 다슬기의 새끼라고 한다. 암수 구별이 어려워 어떤 것이 암컷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모래알이 아니라니 안심이다.     



[도움 주신 분]

소양강 다슬기 전문점 조윤숙(여, 51)씨는 결혼 후 젊은 시절을 다슬기와 보냈다. 다슬기 유통을 하다가 식당을 하게 되었고 작은 골목에서 언제부터 했는지 모를 만큼 바쁘게 살았다. 이제는 그녀의 아들이 일을 도와주고 있다. 


* 위 글은 문화채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707?_ga=2.112867652.1559705289.1613814797-477163452.1613098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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