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시간에 회사 동료가 ‘긴긴밤’이라는 책을 주말에 읽고 입을 부여잡고 울었다며 추천해주었다. 개인적으로 동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시큰둥 했었는데 메마른 동료의 마음을 움직여 펑펑 울게 만들었다는 내용이 궁금해서 주말에 영풍문고에 들려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동화책 치고 분량이 좀 있었지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한 시간 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이었다.
이 책은 이름없는 누군가의 소개로 시작된다. 노든이라는 코뿔소를 소개해주는데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코끼리 무리에 섞여서 행복한 삶을 살지만 고민 끝에 바깥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대부분의 인생이 후회가 더 많다지만 노든은 이 선택이 후회되지 않는 선택으로 꼽을 정도로 그의 삶에서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바깥세상으로 나온 노든은 초원에서 자신과 같이 코뿔소들을 발견하게 되고 아내와 딸을 두며 행복한 가족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아내와 딸이 인간의 습격을 받아 코가 짤리고 총에 맞은 채 죽게 되고 함께 있던 노든은 동물원으로 끌려가고 거기서 앙가부라는 코뿔소 친구를 만나게 된다.
인간에게 분노만 가득했던 노든은 앙가부를 만나게 되고, 지금까지 동물원 속에서만 살아 자기 자신의 본성도 잊은 앙가부에게 들려준다. 결국 그들은 탈출을 계획하지만 실패하고 설상가상 총에 맞은 다리를 치료하러 노든이 떠난 사이 앙가부는 또다른 인간의 습격으로 코가 짤린 채 죽음을 맞이 하게 된다. 충격을 받은 노든은 인간에 대한 분노가 더 커져가는데 그러던 중 인간이 일으킨 전쟁으로 동물원이 쑥대밭이 되고 노든은 그렇게 동물원을 나오게 된다. 동물원 곳곳에 죽거나 갇힌 여러 동물들의 눈을 바라보며 걷던 노든은 알을 넣은 양동이를 부리에 물고 있는 펭귄 치쿠를 만나게 된다.
펭귄 치쿠는 사랑하는 윔보와 함께 반점이 있는 이상한 알을 품어주게 되는 데 전쟁으로 윔보는 심하게 다치게 되고 그런 윔보를 뒤로 한 채 치쿠는 알을 갖고 위험한 동물원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코불쏘 노든을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그 둘은 함께 동행을 하게 된다. 치쿠는 무조건 바다로 가야 한다며 그곳에서 본인과 같은 동료 펭귄들을 만날 수 있고 알도 살아가게 할 수 있다며 노든이 함께 동행해 주기를 바란다. 결국 노든은 인간에 대한 복수를 조금 뒤로 미룬 채 치쿠와 함께 생전 본적도 없는 바다라는 곳을 향해 끝없이 이어진 길을 향방 없이 걸어가게 된다. 결국 힘에 부친 치쿠는 노든에게 알을 부탁한다고 말한 뒤 죽게 되고 노든은 생전 키워 본 적도 없는 알에서 깨어난 펭귄과 함께 바다를 향해 걷게 된다. 아무도 없는 초원과 긴긴 밤을 아기 펭귄과 노든 둘이서 의지하며 함께 보내게 되고, 결국 지치고 늙은 노든은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이 인간에게 붙잡히게 된다. 떠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보는 아기 펭귄에게 노든은 이제 바다로 혼자서라도 떠나야 한다고 말을 한다. 처음 코끼리 고아원에서 코끼리 무리속에서 코뿔소인 노든을 코끼리 동료처럼 받아들여줬던 것처럼, 초원에 홀로 나온 노든을 품어주고 사랑해줬던 아내와 딸처럼, 복수심에 가득 찼던 노든을 지켜봐주고 들어줬던 앙가부처럼 노든이 주변에서 받았던 연대와 사랑을 아기 펭귄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노든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죽어가면서도 알을 지키려 노력했고 그 긴긴밤을 노든과 함께 동행했던 친구 치쿠와의 약속이기도 했기에 노든은 아기 펭귄이 떠나야 한다며 떠나기를 격려한다.
결국 아기 펭귄은 인간들 속에서 노든을 맡긴 채 그렇게 홀로 직감을 믿고바다를 찾아 걷다가 절벽 끝까지 만신창이가 된 채 올라가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바다를 마주하게 된다. 결국 생존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바다로 향했지만, 바다를 마주하게 된 아기 펭귄은 자신을 그토록 태어나게 하려 애썼던 치쿠와 윔보의 몫까지 살기 위해 살아내라 했던 노든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종이 다른 동물들이 서로 연대하며 이해하고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자식으로서 품고 가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연대의 공동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늘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것만 같은 심리적 압박감에 모두가 살아가고 있지만, 늘 소중한 인연은 주변에 있었고 그들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서로’가 필요한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 중]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 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