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라온 지도 벌써 7년째가 되었다. 아직도 서울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매우 많지만, 그래도 이제는 단골 집도 생기고 좋아하는 동네도 생겼다. 내가 사는 합정동은 모든 가게를 가보지는 못했어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지방 사람들에게 매우 핫하게 느껴지는 홍대를 '집 근처'라 부를 수 있는 특권도 매우 사랑한다. '홍대? 그거 집 앞인데?'라는 허세가 가능해서 정말 좋다. 그런데 약속은 홍대에서 절대 안 잡는다. 사람도 너무 많고 생각보다 갈 만한 데도 없고 별로다. 머리 깎으러 갈 때 빼곤 갈 일이 없다.
아무튼 나름대로 서울 사람이라는 범주에 열심히 녹아들고 있지만, 여전히 적응... 아니 앞으로도 적응 못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지하철. 언제든 사람이 매우, 아주 많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지하철이 있는 어느 도시든 비슷하겠지만 서울은 정말이지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다 보면 인류애를 조금씩 잃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헬 중의 헬(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마는)이라는 2호선과 9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했었다. 가장 최근에 출퇴근으로 이용했던 건 9호선인데, 유독 9호선에서 진기한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아무튼.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한 번에 다 풀면 안 그래도 많이 읽지도 않는 거, 더 길어져서 그마저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아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어쨌든 9호선으로 출퇴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리자마자 달린다는 것. 나는 2호선을 타고 당산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는 루트였다. 당산역은 2호선에서 9호선으로 가는 길이 매우 멀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에스컬레이터 길이가 거의 탄광 체험을 하러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만큼 길다. 9호선으로 갈 수 있는 길은 그곳 하나뿐이고, 그곳으로 몰리는 사람은 수백 명이다.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9호선 열차 도착정보가 나오는 작은 전광판도 하나 있다. 3-3 정도에서 내리면 내리면서 현재 9호선 열차의 위치를 곧장 확인할 수 있다. 달린다고 해도 지금 당장 들어오는 열차를 타려면 어벤져스 비전의 페이징 능력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는데, 그 모습이 흡사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그냥 설렁설렁 뛰는 게 아니라 올림픽의 그것처럼 전력으로 달린다. 무섭기 짝이 없다.
그 사람들이 좀비처럼 달리는 게 너랑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직접 경험해 보면 대번에 알 거다. 달리지 않고 걷는 사람을 거의 장애물 취급한다는 게 문제다. 내가 무슨 이를 악물고 스크린을 시전 하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 9호선 타는 곳으로 충분히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는 건데, 지들이 뛰는 데 방해된다고 사람을 길막 빌런쯤으로 취급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지나간다. 정 급하면 집에서 10분 빨리 나오면 될 일이 아닌가. 본인이 늦게 일어나서 급한 상황을 초래해놓고 왜 그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물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보자면, 9호선은 급행과 일반 열차가 나눠져 있고 목적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급행이 10-15분 정도 빨리 간다. 고작 1-2분으로 촌각을 다투는 출근 시간에 10분 남짓은 매우 큰 시간이기는 하다. 다른 호선과 다르게 9호선 급행을 한 번 놓치면 무려 15분이나 후에 다음 급행열차가 오니까, 항상 타는 시간에 급행을 타지 못하면 지각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이번 급행 놓치면 망하니까 뛰는 거겠지,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본인 상황이 어찌 되었든 그 또한 본인 문제 아닌가. 출근시간 9호선은 사람이 더럽게 많아서 줄 뒤편으로 쳐지면 그 시간에 열차가 들어와도 못 탈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겠다. 여러 이유로 급한 건 이해하겠는데 왜 다들 안 뛴다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장애물 취급하냐는 거다. 급하면 아침에 10분 빨리 일어나라고. 나도 잠귀가 더럽게 어두워서 알람을 휴대폰에 10개, 일어나야만 끌 수 있는 위치에 아이패드로 10개를 맞춰놓는다. 이렇게 해봐도 안 되면 일찍 자든가. 알람도 못 듣겠고 일찍 자는 것도 싫으면 뭐 어쩌라고. 심지어 에스컬레이터는 사실 걸어서도 안 되고 뛰는 건 더더욱 안 되는 일인 건 아는지 모르겠다. 뭐, 알아도 급하니까 뛰는 것이겠지마는 지가 늦게 일어나서 급한 걸 제발 나처럼 하나도 안 급해서 걸어가는 사람한테 짜증 좀 내지 마라. 냄새나게 땀 뻘뻘 흘리면서 전력질주하면서 어깨치고 가는 네가 더 짜증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