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하고 싶지 않은 일 투성이야.
나의 아이는 I 형 엄마인 나를 닮아 낯 가름이 있긴 하지만 익숙해지면 적극적인 E형과 비슷한 성향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친해지고 난 뒤에는 다들 그렇지 않던가.
어떤 아동심리학자는 "나의 아이가 이런 모습이야"라고 엄마가 생각하고 양육한다면
아이는 그런 모습으로 자라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아이는 소심해서, 나의 아이는 소극적이라서 라는 엄마의 생각(혹은 그렇게 믿는)이 아이를 바라볼 때,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는 언제나 엄마에게서 인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엄마가 의도한 대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나의 아이가 약간의 낯 가름이 있는 아이라고 해서 억지로 인사를 시키거나 함께 놀라고 등 떠밀고 싶진 않았다.
내가 겪어온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 처음이라는 긴장감이 가득한 "낯선 시작"에서
온몸으로 느껴지는 긴장감은 누가 뭐래도 본인이 가장 고통스럽다는 것을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성향이 거의 반대인 나의 남편은 그런 나의 태도를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에게도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 있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련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 시키겠다며 웅변학원과 태권도 학원으로 보내졌을 수많은 우리시대 아이들처럼
시련 극복을 위해 극닥전인 상황으로 몰아넣어 극복 시킬 수도 있겠지만
반 유럽인인 남편은 아이에게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것을 선택했을 때도 좋은 것이 생길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지금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도움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늘고 있다. 지켜나가야 할 규칙도 다양한 사회생활도 말이다.
그 이전까지는 [하지 않는 것]으로 선택을 피했다면
다섯 살이 된 이후로는 아이에게 본인의 선택도,
구성원으로서 의무(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것)도 해야만 하는 나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 유치원에서도 비슷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린 나이 일 때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하는 놀이를 강요하지 않지만 5세가 된 이후에는 본인의 의사결정만으로 선택하는 것을 모두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주말, 아이는 두 개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이 아이들은 유치원 친구가 아니라 개인적 친분이 있는 아이라서 생일파티 참석자가 모두 처음 보는 아이들이 온다는 사실에 아이가 생일파티 가는 것을 거부했었다.
물론 생일 파티는 억지로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아이에게 내키지 않은 일을 했을 때도 즐거운 것이 있다는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 같아
기나긴 상의 끝에 아이와 생일 파티에 가기로 했다.
두 아이 중 한 명 생일파티에는 내가 함께했고 그다음 날은 혼자서 놀고 왔다.
물론 가기 전에는 눈물까지 보이며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한껏 상기된 얼굴과 목소리로 오늘이 최고의 날이라는 얘기도 해줬다.
파티 가는 길 발걸음이 천근만근 남편의 월요일 출근길처럼 느껴졌지만 선택의 마지막은 괜찮은 결과였기에 좋은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라 믿는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해보니 괜찮았던 기억
우리 어른들에게도 꽤 많이 있으니까.
아이에게도 분명 같은 경험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맞았다.
어른이 되고 나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만 하는 날도 많지만 또 반대로 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정말 많다.
먹기 싫은 음식,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씻지 않기 등
나의 선택에 의해 하지 않는 것이 익숙해지다 보면
새로운 것에 쉽게 겁이 나고 변하지 않으려
나의 자리에 주저 않아 버리는 날도 많아진다.
무엇이 되기 위해 도전하라는 것은 아니다.
변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나의 일상이 단순한 시도로 즐거움 혹은 제법 괜찮은 정도의 단계를 유지한다면
나의 삶이 제법 마음에 들게 되지 않을까?
길거리에서 아이와 율동을 하며 노래를 부르거나
얼굴이 시빨갛게 온힘을 다해 달리기 시합을 하거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개미를 관찰하거나
이웃들에게 웃으며 큰소리로 인사하거나
바다 수영을 하러 들어가는 일처럼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내가 절대 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대부분의 것들이 해보고 나니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결과만이 남았을 뿐, 부끄러움이나 남들의 시선의 부끄러움 따윈 하나도 남겨지지 않았다.
역시 해봐야 후회는 없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