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아이는 "내가 왕이 되면" 상황극에 빠져서 온갖 즐거움을 상상하느라 바빴다.
어른들에게도 이런 즐거운 상상이 하나 있지, 그건 바로 왕 말고 로또 1등 당첨.
주말 저녁 로또를 사며 "내가 로또에 당첨이 되면"과 같은 기분 좋은 짜릿한 상상의 시간이 있으니까
네가 하는 그 마음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이로는 왕이 되면 병사들에게 레고를 원하는 만큼 사 오라고 시킬 거라고 했다.
(이 와중에 요즘 아이들은 물건 = 사는 것이란 자본주의 기본을 알고 있다.)
그리고 밤 8시가 되면 찾아오는 마녀 (내가 재우려고 수를 쓴)를 없애라고 명령 할거라 했다.
고작 이 소박한 두 가지가 왕으로서 누릴 사치인 것이 전부인 5살 인생.
온종일 집안을 맴돌던 [내가 왕이 된다면]이란 말에 나 역시도 상상해 본다.
인생 후반기 왕이 된 찰스 3세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나는 왕이 된다면 무엇을 할까.
요즘 세상에 왕이야, 오래된 예절이나 지켜야 하는 고달픈 삶 같아서 딱히 부럽지도 않고
값비싼 보석에 집 따위도 딱히 부럽지 않은 걸 보면 요즘 세상의 왕은 디즈니 만화에서나 위대할 뿐
현실세계에서는 레고나 사 오라고 시킬 힘 정도뿐인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침대에 함께 누워서 배도 쓰다듬고, 등도 긁어 주고, 많이 커졌지만 여전히 작은 아이의 손을 만지작하며 내가 널 이렇게 마음껏 만져볼 날도 얼마 안 남았겠구나.
왕이되면 내가 아이를 이렇게 직접 키울 수 없는건가? 그럼 나는 왕 안하고 싶은데. 아, 왕 따위 불편해.
아, 생각이 났다.
내가 왕이 되면, 언제든 이 아이를 꼭 안아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생각해 보면 사춘기 자식 앞에서는 왕도 못 할 것 같은데... 이게 왕이라고 요구할 수 있는 건가?
바라만 보아도 예뻤던 베이비의 시간이 지났고
이젠 우리와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어린아이의 시간을 관통하고 있다.
얼굴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주는 일도, 매주 손발톱을 깎아주는 일도, 귀여운 볼살을 마음껏 뽀뽀하고
엉덩이를 두들기며 행복을 느끼는 일들도 곧 지나가겠지.
시끄럽게 재잘거리던 너의 말소리가 끝이 나면 어느새 내 품이 아니라 네 방에서 오롯이 너의 시간을 보낼 날도 금방 올 거고, 우리 곁을 떠나갈 날도 머지않았겠지만 글로 사진으로 소중한 오늘을 기록해 보고 싶어졌다.
신이 돼야 할 수 있겠지만, 엄마가 정말로 원하는 건 딱 한 가지
어린 시절의 너를 모두 간직해서 언제든 꺼내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