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과 살아갑니다.
지난여름 캠핑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배정받은 자리에 텐트를 치고 짐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아이도 제 일을 해내고 심심했던지 캠핑장 놀이터와 우리 텐트 사이트를 오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참을 놀이터에서 돌아오지 않더니 아이의 표정이 뾰로통해져서 텐트로 돌아와서는 쏙 하고 들어가 몸을 돌려 벽을 보고 있는다. 남편과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도 답은 없고 우린 짐정리에 정신이 없어
내버려 두면 본인이 마음을 다스리고 나오겠거니 하며, 각자 하던 일을 했다.
한참이 지나 아이는 내게 “이제, 엄마한테 내 마음을 말할 수 있어”라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너는 왜 이렇게 속상했던 거야?"
“놀이터에서 노는데, 나는 한국말도 독일말도 할 줄 알아.라고 말했는데 그 친구들이 나한테 한국말을 해보라고 했지만 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 말 안 할 거야라고 말했더니 나는 한국말을 못 하는 똥 이래. 그래서 너무 속상해서 와 버렸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아이들과 생겼던 작은 해프닝인데, 놀이터에 있던 독일아이들이 독일어를 하는 동양인을 처음 봤던 것일까.(베를린에는 외국인들이 많아서 이런 경우가 없지만 다른 지역으로 오면 종종 이런 일들을 겪곤 한다.) 6-7세 어린아이들이 하는 똥에 관련된 말들을 내뱉으며 아이를 놀려대니 아이는 약 오르고 속상해 울며 텐트로 돌아와 한참을 혼자서 속상함을 삭였던 것이다.
“이로야, 학교에 가면 절반은 너를 그렇게 놀리고 좋아하지 않은 친구들이 있을 거야. 그럴 때마다 도망갈 수는 없어. 어떻게 하면 도망가지 않을 수 있는지, 아니면 어떻게 해야 너에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말을 해 두곤 아이를 안아주었다.
나의 말을 이해했는지 그건 모르겠고 결말은 유튜브의 한국 만화영화 한 편으로 아이의 기분이 풀리긴 했지만, 말하면서도 먼 시간을 생각해 보면 아이가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는 없을 것이란 것을 직감 할 수 있었다.
아이의 사회생활을 통해 보니, 성인인 내가 겪었던(겪는 중인) 인종차별은 맥주 한잔에 털어버릴 일이 대다수 이지만 아이들의 다름의 차별은 내가 겪은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쓰리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경험이 적기 때문에 자신들이 받아들이는 범위도 딱 그 경험해본 것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눈동자의 색, 피부색, 머리칼의 색깔처럼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이 이상하고, 어색한 말투는 더더욱 이상한 것들의 연속일 것이다. 아마 어린 아이들 눈에는 다른 것이 더 크게 보이는 만화 같은 세상이 될 수도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심지어 독일어 국적이지만 생김새도 모국어도 각기 다른 나와 같은 이민자의 아이가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생겨날까.
"어떤 힘을 아이에게 길러줘야 할까. "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요즘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이 하는 대화의 주제이다.
작년까지는 유치원에서 자기 표현을 제대로 못해서 몇달이고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모습에 속상해 나는 아이에게 "네가 마음먹기에 달라. 네가 맞으면 그렇게 말해도 돼"라고 말해줬었다.
네가 하는 것이 맞다고 네 스스로 믿으면 돼.라고 알려주었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마음을 먹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앞으로 아이가 헤쳐나가야 할 사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너무 많을 테고 더 심해질 텐데, 언제까지 나 자신의 믿음만으로는 견뎌나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기에 어차피 상처는 날테니 아이가 빠른 회복력을 기를 수 있다면 그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전환하기 시작 했다.
상처받는 일이 생겨도 빨리 회복할 수 있는 힘이야 말로 본인의 삶을 더 단단하게 메꾸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언제까지 제 3자인 나와 남편의 위로가 자신에게 위안이 될지 모르겠고. 우리가 대신 그 상처를 막아줄 수 없는 노릇이니 당사자가 선택하는 것이 답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내가 아닌 나의 아이가 겪어야 할 세상이기에 무엇이 나은건지 정답인지 알 수 도 없는 조언들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나는 16년 차, 남편은 20년 차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모국어처럼 외국어를 잘해도 때때로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나는 안다. 나의 아이는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국적도 독일인이지만 온전한 독일인도 한국인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2세들이 겪고 있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아이에게도 생기겠지만 어떤 종류가 되었든 간에
자신에게 찾아온 상처를 만들지 않을 방법도, 피해 갈 방법도 없을 것이다.
대신 그 상처를 곪게 만드느냐, 작은 흔적으로 만드느냐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을 테니
그 상처를 치료하는 법을 가르쳐줘야 겠다.
아, 물론 아이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필요하다.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삶.
매 순간 긴장하고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다름을 증명해나가는 삶.
잘 아문 상처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