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살자.
그러니까 내 얘기를 좀 들어봐.
나는 십 대 중반부터 결혼 직전까지 오늘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았어.
열네 살에 적은 일기에는 내가 죽고 싶은데 어떻게 죽어야 잘 죽을 수 있을지 장소를 고민했던 것들이 있었어.
나를 둘러싼 공기마저 싫어서 도피처럼 도망 온 프랑스였지만 그곳까지 그 어두운 삶이 따라왔는지
매일밤 눈뜨면 죽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6년을 살았어.
한달에 십여 일은 뜬 눈으로 하루를 보냈고, 프랑스에서 살았던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깊은 잠을 자 본 기억이 희미해.
그렇게 내 아름다운 십 대와 이십 대 중반까지 다 소모하고 나서야 나는 내 삶이 견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
무엇보다 내가 친구들의 예상보다 일찍 결혼을 하고 예상보다 일찍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데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삶에서 죽음보다 삶을 더 채워 나간 절대적인 이유 같아.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나는 나의 아이 덕분에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보듬어 줬고 그리고 요즘은 사랑도 해주게 됐어. 내가 아팠던 사춘기와 이십 대 초반의 시간들을 보듬어주며 말이야.
잘하고 있다고, 잘할 수 있다고 그렇게 아이에게 위로를 해주듯이 나 스스로에게도 토닥여 주고 있지.
이건 내가 38살이 되어야 깨닫게 된 거야.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다지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남들의 평균보다 못한 나의 삶에 늘 불만이 많았어. 죽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졌을지언정 잘 사는 알 수 없는(unknown) 누군가의 삶과 비교하며
부족한 것들을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입으로 뱉어내기 바빴어.
그런데 얼마 전에 말이야. 진짜 인생 최고의 위기처럼 경제적으로 꽉 막힌 순간이 찾아왔는데
정신이 바짝 드는 거야.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싶어서 내가 미친 듯이 일을 해서 한 달에 얼마를 벌 수 있을지 분단위로 쪼개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
그렇다고 동화 속 해피엔딩처럼 그 빚을 다 갚고 행복해졌다는 결말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어.
아직 빚은 그대로 있지만 다만 나는 열심히 일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중이야.
과거의 나였더라면 나는 분명 이 현실이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죽고만 싶었을 거야.
그것이 자살을 염두하는 인간이 고른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라고 착각하면서.
그런데 말이야. 네가 자살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오늘이라면 말이야.
한 번은 생각해 봐.
나이를 먹고 오늘보다 조금 나이진 오늘이 찾아오면 말이야.
계절이 변해 꽃이 피고 지는 것마저 고마운 순간이 찾아와.
오늘은 무탈했고, 잃을까 걱정하던 나의 소중한 것들을 잘 지켜낸 오늘이 그저 감사한 그런 날
오늘 목표했던 달리기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는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날 말이야.
그러니까 죽지 말고 살아.
오늘 죽고 싶거든 내일 아침 4k 달리기를 해봐.
숨이 턱 막혀서 아이고 나 죽겠다 싶을 때
그 구간을 넘어섰을 때. 와, 안 죽어서 다행이네. 하는 말이 절로 나올 거야.
그렇게 일주일에 세 번 혹은 매일같이 달리기를 하다 보면
삶은 별거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어. 인스타와 유튜브도 끊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해서 나를 바라봐. 번드르르하게 멋지게 살지 않아도 나는 꽤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너에게 보여주면 돼.
죽지 말고 오늘도 살아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