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멜로디』(조해진, 문학동네, 2024)
“전쟁을 아십니까? 저는 콩고에서 사역을 수행했습니다. 바그다드와 카불에서도요. 형제자매 시체들이 즐비했습니다. 기독교인과 무슬림들이지요. 싸워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향해 싸우는 것일까요. 정신착란으로 이런 끔찍한 일들을 벌였다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상대는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어요. 우리가 지금 증오에 굴복한다면,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 어느 한쪽 편에 서겠다는 뜻이 됩니다.”
영화 「콘클라베」(97회 아카데미 각색상)의 한 장면이다. 전쟁터에서 사역하는 성직자. 그는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전쟁터에서 성직자가 전하는 말이 피흘림을 멈추게 하고 막무가내로 닥쳐오는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진정으로 전쟁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고통이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종교가 전쟁의 원흉이 되는 상황에서 정말, 사람이 죽지 않으려면, 평화로운 세상이 되려면 우선, 전쟁을 멈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세상은….
이 영화는 바티칸 권력의 이면을 치밀하게 보여준다.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매우 비밀스러운 선거인 콘클라베를 진행하는 동안, 밀실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선거는 인간 본성과 유사하다. 그 과정이 전쟁과 다르지 않음을 은유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폐쇄된 세상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흡사하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 『빛과 멜로디』는 일기다. 일기는 개인 기록이다. 기록이란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을 가진 글이다. 그렇다면, 남길 목적을 가진 자기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자기에게라도 남기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나는 글이 아닐까. 그렇다면, 일기는 비밀스러운 글이라기보다는 솔직한 글일 것이다. 작가는 일기 형식을 통해 무엇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무엇을 남기고 싶었을까.
이 소설은 초등학생 5학년 때 같은 반 학생이었던 권은과 승준이 성인이 된 어느 날, 우연히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십삼 년 만의 재회지만,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했다. 세상이 달라진 것처럼, 그들의 모습이 달라졌다는 것. 그 모습에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을 포함한 모습일 것이다. 특히 승준이 권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권은에 대한 정보뿐, 어두컴컴한 집에서 부모님 없이 지내는, 자기는 고아가 아니라고 승준에게 말하는, 어린 시절의 권은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것은 권은을 잊은 것이 아니라, 12살의 권은과 35살의 권은이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권은은 살기 위해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것도 전쟁터에서.
혹시 그들의 엇갈리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소설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상 곳곳에서 전쟁 때문에 나라를 잃고, 가족을 잃은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가족과 다름없는 타인의 도움으로, 보답을 바라지 않는 작은 호의로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니까. 기적 같은 현실처럼, 시간과 공간을 넘어 따뜻한 마음으로 감은 태엽이 풀리면서 아름다운 멜로디는 계속 흐르고 있으니까. 그리고 또 태엽을 감으면 멜로디는 흐르고, 흐르고…, ….
전쟁.
시리아에서, 레바논에서, 남수단에서, 가자기구에서, 우크라이나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고,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굳이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누구는 태어나고 누구는 죽는 오늘이지만, 부처님의 마지막 유언처럼, 회자정리의 맥락과 동떨어진 죽음은 매우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이다. 아수라장인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 ‘전쟁 같다’라는 말인데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전쟁이란, 누구는 이유도 모르고 죽고, 누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죽고, 누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그러다 죽을 뻔한 상황에서 구조가 된 누구는 그다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 전쟁 같은 일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구촌 이야기를 마치 모르는 일처럼 사는 이들이 지구촌에서 산다. 마치 전쟁 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망각하고 사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는 곳으로 가서 전쟁을 함께 겪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이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빛.
눈을 감고 있으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빛. 사진을 찍을 때는 빛이 모여들었으니까. 얄팍하게 접혀 있던 빛 무더기가 셔터를 누를 때면 일제히 퍼져 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던 순간만큼은 적어도 춥지 않았으니까. (30쪽)
물고기 비늘 같이 반짝이는 빛이 없으면 소용없는 카메라처럼, 세상은 어둠뿐이다. 어린 시절, 승준이 권은에게 준 카메라는 가난하고 슬픔뿐인, 아마도 아무도 돌보지 않는 권은에게 빛과 같은 존재였다. 작디작은 빛이었지만, 권은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권은에게 카메라는 한 줄기 빛을 찾아 생존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되었다. 미끄럼타듯이 다가오는 빛은 또 다른 빛이 되어 누군가에게 미끄러지듯이 다가갈 수 있기에.
고등학생이었던 권은은 우연히 분쟁 지역을 다룬 게리 앤더슨의 사진을 보며 사진이 분해되어 자기 몸으로 흡수되는 것을 느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그 강렬한 빛은 난민 캠프 사람들, 의료진과 환자들 모습에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는 계기기 되었다. 프레임 안에 모여드는 빛을 느꼈던 순간부터 죽음만을 생각하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아 뭐든 쉽게 잊는 무정하도록 나태한 세상에 타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바로 나를 살게 한 카메라로 그들을 살릴 수 있도록. (86쪽 참조)
권은은 분쟁 지역을 사진으로 찍는다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전쟁을 겪는 사람들의 한순간을 기록하는 것은 의사가 응급수술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수술을 하기 전에 헌혈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에 폭탄을 두르고 전쟁 속으로 뛰어드는 군인들은 말한다. 그것이 테러가 아니라 신앙이라고, 사랑의 경지라고, 자신의 몸이 신전이 되어 순교한 기회를 얻은 것뿐(176쪽)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신의 뜻이라는 전쟁을 멈추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난민은 전쟁의 희생자다.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인종이나 종교, 신분, 견해에 따라서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공포심으로 살아야 할 곳을 찾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살 수 있는 공간과 사람 그리고 호의다. 난민들이 모여 있는 곳은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너무도 다르다. 모든 것이 부족한 것들이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살 곳이 필요하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을 주기 위해 난민 지역에 모여드는 사람들. 그들에게 삶의 멜로디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들.
멜로디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한 권은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살았다. 그리고 분쟁 지역에서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러나 빛의 호위를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누구는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그 의무를 다하지 않지만, 보호해야 할 의무를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녀를 돌보지 않는 부모,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나라,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신이 있음에도 세상은 빛이 있기에 피사체를 향해 카메라가 작동한다. 세상은 밀실이 아니다. 인간 본성 중에서 빛을 내는 따뜻함으로 서로에게 기적이 된다. 기적은 신의 영역이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 마음에는 빛의 멜로디가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서 북한 군인이 거의 이천 명 가까이 죽었다. 그리고 2025년 9월, 베이징에서 김정은은 푸틴과 악수하며 러시아에 더욱 도울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담에서 김정은의 외교술을 극찬하는 기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광기와 같은 기대를, 취기와 같은 뜨거운 동질감을 나누는 것이 폭력이 아니면 무엇일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그런데도 빛은 또 다른 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