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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맑은물 Jul 05. 2023

불꽃놀이

  머드 축제 개막식을 앞둔 대천 해변 풍경은 이색적이다. 여름을 즐기는 이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번잡한 소리는 한 사람 목소리쯤은 소거해 버려도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인다. 맘껏 시원함을 뽐낸 의상은 바다처럼 푸르고  거침없는 그늘 몸짓은 역동적이다. 모두 축제를 알리는 광고 모델 같다. 점점 기울어지는 해가 뿜어내는 붉은색과 푸른 바다가 만나는 시간. 바다 너머에서 풍겨오는 묘하고 불가사의한 색채가 사라지면서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어두워질수록 피서객 몸짓이 더욱 흔들린다. 손에 들고 있는 음료와 술병도 흔들린다.  

  사람들 환호에 파도 소리가 묻힌다. 불꽃놀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방씩 터질 때마다 탄성이 탁구공처럼 튕긴다. 어두운 하늘에 빛나던 별이 사라진다. 화려한 불꽃이 별을 삼켜버린다. 매캐한 냄새가 싱그러운 바다 냄새를 서늘하게 만든다. 마지막 불꽃 하이라이트는 화려하다. 조금 후, 싱그러운 바다 내음을 토해내며 불꽃이 사라진다. 사라졌던 별이 나타난다.  별이 빛난다. 별이 웃는 것 같다.  


  쓸쓸하고 고요한 바닷가. 주먹만 한 감장돌 하나, 그 옆에 조그맣고 뾰족한 풀. 그 풀이 꽃을 피우니 이름은‘바위나리’. 유일한 일은 해를 기다리는 일이기에 외로워 울었지요. 어느 날, 하늘에 있는 아기별이 바위나리 울음소리를 듣고 바위나리를 찾았지요. 아기별과 바위나리는 만나서 즐거웠어요.

  매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닷가에서 놀던 바위나리와 아기별. 어느 날, 아기별은 바닷가로 내려오지 않았어요. 별나라 임금님이 밤마다 사라지는 아기별에게 외출을 금지했기 때문이지요. 아기별은 바위나리가 그리워 밤마다 울었고 바위나리도 아기별이 보고 싶어 시들해졌어요. 결국 바위나리는 바다에 휩쓸려버렸고 하늘에서 쫓겨난 아기별도 풍덩실, 바다로 빠져버렸지요.

  참 이상한 일이지요? 아기별이 빠져들어 간 곳은 오색 꽃 바위나리가 바람에 날려 들어간 바로 그곳이었어요. 해마다 바위나리는 그곳에서 피어난답니다. 바다 물이 깊으면 깊을수록 환하고 밝게 보이는 이유를 알겠지요? 한때 빛을 잃었던 아기별이 다시 빛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 바위나리와 아기별, 마해송 / 정유정, 길벗어린이-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사람이 생각난다. 검은 눈동자가 별처럼 빛나던 그는 아름다웠다. 20대 초반에 가정을 꾸리고 노부모까지 모시고 있는 삶이 지닌 무게만큼 일을 열심히 하였다. 강대국 욕심으로 자주성을 잃었던 역사와 포악한 독재자를 빼놓을 수 없는 ‘킬링필드’라는 끔찍한 비극에서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 가장은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는 타국 여행객에게 조용한 눈빛으로 의사소통하는 눈만은 별처럼 빛났다. 그런데 슬펐다.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은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저녁이면 이내 어두워졌다. 어디에서나 별을 닮은 눈동자를 지닌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불꽃놀이하는 별들이 그들 눈동자로 타들어 다. 참으로 멋진 광경이었다. 소음도 없이 찾아오는 초저녁별은 소박한 축제를 즐기는 그들에게 불꽃놀이가 되었다. 그들은 매일 축제를 다. 사원 옆에 해자 언저리에 돗자리를 깔고 노부모와 함께 담소를 즐겼다. 웃는 모습이 순박했다. 젊은 연인들도 자전거를 타고 별빛 속을 달렸다.

  이 낯선 땅이 낯설지 않다. 나의 유년 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다. 가난했던 시절, 우리도 이들처럼 입성도 좋지 않았으며 팔과 다리는 가늘었으며 긴 시간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서 옥수수빵을 배급받으며, 육성회비 때문에 가슴앓이 했던 경험은 살과 뼈와 근육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삶의 단면이다. 그러나 하늘에는 별이 빛났고 그 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단발머리 여학생과 빡빡머리 남학생은 간절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별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곤 했다. 앞마당에 모여 앉아 모깃불 태우며 날아가는 연기 따라 바라본 밤하늘은 별들 잔치였다. 하늘 끝 찬란함은 끝날 줄 몰랐다.

 

  머드 축제 개막 행사가 끝난다. 불꽃놀이도 끝난다. 취기가 오른 관광객들이 휘청거린다. 흐려진 눈동자도 가물거린다. 여기저기서 고함지르는 소리도 개의치 않는다. 더 크게 괴성을 지르며 고함에 화답한다. 파도 소리에 묻혀 밀물 되어 사라졌던 욕설이 썰물 되어 되돌아온다. ‘보령 머드축제’를 광고하던 현수막이 찢겨 있다. 모델 얼굴도 찌그러진다. 웃는 얼굴이 우는 것처럼 보인다. 버려진 술병과 먹다 버린 핫도그, 주인 잃은 슬리퍼가 밟힌다. 개막 행사 뒤이어 준비된 축하 무대가 시작된다. 별이 또 숨어버린다. 찬란한 무대 조명이 눈부신가 보다.  

  숨어 버린 별을 찾는 시간은 어쩌면, 우리가 별을 닮아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삶도 혼란함으로 지나치면 진실로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진다. 바다가 깊으면 깊을수록 밝은 것이 아기별 빛 때문이라면, 바위나리와 함께 있는 아기별 생명력 때문이라면, 깊고 깊은 삶 속에 숨어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야 할 것이다. 별처럼 빛나는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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