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2023, 《월간토마토》12월호 원고
얼마 전, 대전 잡지 《월간토마토》에 내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글을 짓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공모전에 도전하는 이야기가 주제였다. 글을 쓰지만, 글이 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2018년 지역도서전 서평대회에 월간토마토(출판사)에서 출간한 작품으로 참가하면서 칠전팔기 마음으로 계속 글을 쓰고 있다. 잡지를 구독한 지 십여 년이 훌쩍 지나고 있지만, 내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소개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월간토마토》는 대전에 녹아있는 사람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역의 소소한 일상과 그 일상을 엮어가는 사람들 이야기. 과거와 현재 고리 역할을 하는 매체. 충분한 사료와 발품이 없으면 허공에 사라질 이야기를 모으고 기록하며 미래로 향한다. 대전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친 이야기를 잡지에 싣는다.
[시행 1988. 2. 25] [헌법 제10호, 1987. 10. 29., 전부개정] 첫 장을 넘기면 만나게 되는 대한민국헌법. 시작은 미약했으나 창대할 것을 꿈꾸며 창간했던 편집장 마음이 읽힌다. 법으로부터 보호받고 차별받지 않는다는 명제에 따라 성실하게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인간 존엄성이 잡지 생명줄이며 평등한 인간애는 잡지가 존재하는 이유로 느껴진다. 지역이라는 지리적인 한정성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느끼게 해주는 기사 내용이 유기체처럼 마음에 다가온다.
지면에 정치와 사회, 문화와 예술, 사람 사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중앙으로 집중된 구조적인 문제를 차치한다고 해도 대전에 살면서도 대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많음을 잡지를 통해서 알게 된다. 내 주변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환경에 매료되고 사람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을 혼자서 잘할 수 없을 때, 잡지는 도움이 된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그만그만한 사실이 그만그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글과 사진으로 말해 준다.
매달 만날 수 있는 정기간행물 역할은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이다. 그러니 즐거울 수밖에. 암석이 얼기설기 엉켜있는 동굴 같은 일상을 보냈다고 해도, 경계가 모호한 길에서 헤맨다고 해도, 그 길에서 빛을 느끼게 해주는 글은 안도함으로 귀결하는 힘이 있다. 도시가 개발되면서 사라지는 장소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은 사람을 선하게 하는 신묘함이 있다. 그 자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복원한 이야기는 옛 장소에서 느끼는 그리움 비슷한 다의의 감정을 만나게 된다. 대전에서 잊히거나 잊혀가는 만물에 대한 이야기는 잃어버린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역할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지역 잡지, 《월간토마토》가 한다. 누군가 건네는 미소 같은 글을 만나게 하는 잡지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남향집에 사는 개 짖는 소리와 북향집에 사는 개 짖는 소리 차이’라는 부제를 달고 어느 마을 이야기를 정성껏 써 내려간 기사는 정답다. 잃어버린 것을 소환하는 일은 남향집 개 짖는 소리처럼 허공을 울리는 감동으로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시나브로 축소되어 가는 문화콘텐츠 운명이 점점 다가오더니 현실이라는 문을 두드렸다. 그것은 휴간이었다. 새롭게 단장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휴식에 들어간다는 안내 문구는 애독자들에게 아쉬움과 허탈함이었다. 빈 곳에 남겨진 잡지 정체성이 겪는 혼란한 시간을 자기 일처럼 걱정했다. 어느 사이, 이 잡지 영향으로 대전이라는 장소에 대해 작은 이야기를 쓰던 나는, 내가 사는 도시 콘텐츠가 해체되는 기분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었다. 고향이나 타향이라는 낱말보다는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해 애틋함이 꽤 깊었음을 확인하는 사건이었다. 잡지가 복간되기를 바라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걱정했지만, 다행히 《월간토마토》는 다시 돌아왔다. 그간의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잡지를 기다리는 독자들 애달픔에 화답한 잡지 생존이 신성한 의식 군락지 같았다. 그곳에 가면 희구하는 낭만과 희망이라는 불이 꽃처럼 피어오르는 현실이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편집이나 제본뿐만 아니라 내용이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진 모습이 역력했다. 흑백사진으로 정보 제공하는 잡지의 새로움은 많은 감성을 두드렸으며 따뜻한 찻잔을 만지는 느낌이었으며 가벼운 포옹에서 전해지는 안도감이었다. 고서 제본 형식인 오침법으로 갖춘 외양도 독특했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라고 박동진(1916~2003, 중요문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예능보유자) 명창 소리 한자락 듣는 것 같았다.
《월간토마토》 편집장을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전국적으로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할 무렵, 작은 프로그램에서 지역 잡지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지역 요소요소에 숨겨져 있는 문화재와 오랫동안 가업에 종사하고 있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 다큐멘터리 형식에 가미된 사람 이야기는 꽤 울림이 크고 진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운영하는 운영체계가 천차만별인 것처럼, 타인 삶과 장소가 주는 기시감이 전달될 때, 호기심이 일었다. 잡지가 태어나는 과정과 생명체가 될 수 있는 잡지 세계를 보고 듣던 참가자들 눈이 반짝거릴 때, 내 눈동자도 빛났다. 그 반짝임은 사람에게 사람을 이어주는 힘이고 타인 삶에 다가가는 적극성의 발현이었다.
대전과 청주를 아우르는 대청호가 만들어지면서 생긴 수몰 지역 애환. 그 슬픔과 적막함을 담은 이야기와 사진은 호수 아래, 어디쯤 있었던 삶을 부활시켰다. 대전 역사와 문화, 자연과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이웃이 이웃에게 말하고 있었다. 동중정(動中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정중동(靜中動) 마음으로 거부하기도 하는 사람 이야기가 잡지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사람뿐이랴. 지역을 알리는 잡지 역할, 몰라서 못 했던 것들을 알 수 있게 하고 알아도 함께 하는 이가 없어 동력을 상실하는 것들의 가치를 되살리는 일을 《월간토마토》가 하고 있었다.
2023년 부산수영구한국지역도서전이 열렸다. 바닷가에서 열리는 책 축제. 날씨 관계로 한 달 연기되었다. 시대 흐름에 따라 관심에서 점점 벗어나는 종이책 운명이 넘실대는 파도와 어떤 형상이 펼쳐질지 궁금했다. 혹, 노을이라도 지는 시간에 지역과 시대를 넘어, 인류 지식과 정신을 전달하는 책을 꾸준히 연구하고 출판하는 이들 열정이 식을까 봐 걱정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현실에 덧씌울 때, 보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번 도서전이 한 획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컸다. 어쩌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잡지 역할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잡지는 시간을 기록한다. 기록은 다큐멘터리지만 그사이에 무수한 감정이 있다. 그 감정 선율을 찾아 소통하는 순간이 삶이라는 변곡점이다. 그 점을 이은 선이 삶의 기록이다. 그 일을 잡지가 한다.
누군가 걸어주는 말과 눈길에 의해 무의미했던 일이 그렇지 않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상태가 좋든 나쁘든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는 일을 누군가는 하고 있다. 그 일에 동참한다는 것은 자존이라는 의미를 재인식하거나 아주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이리라. 한 달에 한 권, 손에 들리는 《월간토마토》 역할이 농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나’라는 마음이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정작 자기 훌륭함을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좀 나아질까. 나아졌으면 좋겠다.
지역, 이라는 낱말이 갖는 의미는 어디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지리적인 영역 표시가 아닌 것처럼 그 의미는 시대를 건너고 있다. 지역이라는 느낌은 친근하다. 소통하는 느낌과 더불어 소통을 감싸는 마음 표현, 절대로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마음이다. 처음부터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 마음이다. 진부한 비교리즘에서 벗어난 독특함을 나타내고자 많은 이들은 애쓴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폐허가 될 것이다. 폐허가 되는 것을 묵인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일상에 깃들어 있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들 영역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마치 ET처럼, 어떤 가치와 연결되는 것이라면 손을 내민다. 그렇게 소통하려는 《월간토마토》의 무한한 생명력이 지구의 자전처럼 공전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잡지에 공들인다. 일상이라는 생명력으로.
다시 《월간토마토》는 위기다. 종이책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종이 문화콘텐츠 영역이 확 줄어들었다는 이야기. 함께 일하던 작가들이 잡지사를 떠난 이야기. 아니, 떠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월간토마토》가 숨 쉬던 공간을 줄이고 일인 사업자가 된 이야기. 이러다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정말 지역 잡지는 위기인가, 라고 생각하는 즈음에 만난 이야기. 어느 개인 책방지기 글은 생명수 같다.
‘대전에는 성심당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월간토마토》도 있다’
농부가 농사를 짓듯, 글을 짓는 이들이 계속 글을 지으며 세상과 소통하고 존재한다. 매일 밥을 먹듯이, 우리 일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