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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맑은물 Mar 18. 2024

꽃밭

(오소리네 집 꽃밭,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회오리바람이 불던 날이었어요. 50년 묵은 밤나무가 뿌리째 뽑혀 넘어질 만큼 무서운 바람이었어요. 이런 날, 오소리 아줌마는 양지볕에 꼬박꼬박 졸다가 불어오는 회오리바람에 데굴데굴 날려 갔어요. 아줌마는 40리나 떨어진 읍내 장터까지 가서 가까스로 멈추었어요.

  아줌마가 정신을 차려 보니 사람들이 와글와글 시끄럽게 온갖 물건을 사고팔고 있었어요. 고무신, 운동화, 반바지, 사탕, 떡 등등. 아줌마는 실컷 구경하고 싶었지만, 사람들한테 들킬까 봐 얼른 달아났어요. 마침 굴러온 쪽에서 풍기는 오소리 냄새 때문에 집으가는 길을 금방 찾았어요.

  시장 모퉁이를 돌고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학교가 있었어요. 울타리 사이로 학교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어머나, 예뻐라."

  운동장 둘레에 예쁜 꽃밭이 있었어요. 봉숭아, 채송화, 접시꽃, 나리꽃, …, 이름 모르는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어요.

  "나도 집에 가서 예쁜 꽃밭 만들어야지."

  아줌마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오소리 아저씨는 잔뜩 걱정을 하며 아줌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도 꽃밭 만들어요."

  "갑자기 무슨 꽃밭을 만들자는 거요?"

  "그냥 예쁜 꽃밭이요."

  아저씨는 아줌마가 시키는 대로 괭이로 밭을 일구었어요. 

 영차"

   "아니, 여보! 그건 패랭이꽃이잖아요? 쪼지 마세요!"

  아줌마는 봉오리가 맺힌 패랭이꽃을 쫄까 황급히 아저씨 팔을 붙잡았어요. 아저씨는 다른 쪽으로 돌아서서 괭이를 번쩍 들었다가,

  "영차" 하고 땅을 쪼았어요. 

  "에구머니! 그건 잔대꽃이잖아요? 쪼지 마세요!"

  아저씨는 조금 비켜 나와 "영차" 하고 땅을 쪼았어요.

  "안 돼요! 그건 용담꽃이에요. 쪼지 마세요!"

  아저씨는 이젠 어느 쪽에서 괭이질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럼 대체 꽃밭을 어디다 만들자는 거요?"

  "꽃이 데를 찾아보세요."

  "여기저기도 꽃인데, 어디 틈난 데가 있어야지"

  오소리네 둘레엔 온갖 꽃들이 피어 있었으니까요. 모두 그대로 꽃밭이었어요. 잔대꽃, 도라지꽃, 용담꽃, 패랭이꽃 등등.

  "우리 집 둘레엔 일부러 꽃밭 같은 것을 만들지 않아도 이렇게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구려"

  "그건 그래요. 이른 봄부터 진달래랑 개나리랑 늦가을 산국화까지 피고 지고 또 피니까요."

  "겨울이면 하얀 눈꽃이 온 산 가득히 피는 건 잊었소?"   

  "정말 그러네요. 호호호호 …."

  "하하하하하…."

  오소리 아줌마와 아저씨는 즐겁게 웃었어요. 오소리네 집 산비탈에 핀 꽃들도 모두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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