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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맑은물 Mar 26. 2024

시인

프레드릭 (레오 리오니 그림, 글. 최순호 옮김 / 시공주니어)

  소들이 풀 뜯고 말들이 뛰노는 풀밭이 있었습니다. 그 풀밭 따라 오래된 돌담이 죽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헛간과 곳간에서 가까운 이 돌담에는 수다쟁이 들쥐 가족 보금자리가 있었습니다. 농부들이 이사 가자, 헛간은 버려지고 곳간은 텅 비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자, 작은 들쥐들은 옥수수와 나무 열매와 밀과 짚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단 한 마리, 프레드릭만 빼고 말입니다.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나도 일하고 있어.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프레드릭이 대답했습니다.

  어느 날, 들쥐들은 동그마니 앉아 풀밭을 내려다보고 있는 프레드릭을 보았습니다. 들쥐들이 또다시 물었습니다.

  -프레드릭, 지금은 뭐 해?

  -색깔을 모으고 있어. 겨울엔 온통 잿빛이잖아

  프레드릭이 대답했습니다.

  한 번은 프레드릭이 조는 보였습니다.

  -프레드릭, 너 꿈꾸고 있지?

  - 아니야, 난 지금 이야기를 모으고 있어. 기나긴 겨울엔 이야깃거리가 동이 나잖아.

  프레드릭이 대답했습니다.

  겨울이 되었습니다. 첫눈이 내리자, 작은 들쥐 다섯 마리는 돌담 틈새로 난 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먹이가 넉넉했습니다. 들쥐들은 바보 같은 늑대와 어리석은 고양이 얘기를 하며 지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먹이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  시간은 아스라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돌담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었습니다. 누구 하나 재잘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들쥐들은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는 프레드릭 말이 생각났습니다.

  - 네 양식들은 어떻게 되었니, 프레드릭?

  프레드릭이 커다란 돌 위로 올라가더니

  - 눈을 감아 봐. 내가 너희들에게 햇살을 보내줄게. 찬란한 금빛 햇살이 느껴지지 않니?

  프레드릭이 햇살 이야기를 하자 들쥐들은 몸이 점점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프레드릭 목소리 때문일까요, 마법 때문일까요.

  - 색깔은 어떻게 됐어?

  - 다시 눈을 감아 봐.

  프레드릭은 파란 덩굴꽃과 노란 밀짚 속의 붉은 양귀비 꽃, 또 초록빛 딸기 덤불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들쥐들은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색깔을 또렷이 볼 수 있었습니다.

  - 이야기는?

  프레드릭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마치 무대 위에서 공연이라도 하듯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송이는 누가 뿌릴까? 얼음은 누가 녹일까?

  궂은 날씨는 누가 가져올까? 맑은 날씨는 누가 가져올까?

  유월의 네 잎 클로버는 누가 피워낼까?

  날을 저물게 하는 건 누구일까? 달빛을 밝히는 건 누구일까?


  하늘에 사는 들쥐 네 마리.

  너희들과 같은 들쥐 네 마리.

   

  봄쥐는 소나기를 몰고 온다네.

  여름쥐는 온갖 꽃에 색칠을 하지.

  가을쥐는 열매와 밀을 가져온다네.

  겨울쥐는 오들오들 작은 몸을 웅크리지.


  계절이 넷이니 얼마나 좋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사계절.

  프레드릭이 이야기를 마치자, 들쥐들은 손뼉 치며 감탄했습니다.

  -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프레드릭은 얼굴을 붉히며 인사 한 다음, 수줍게 말했습니다.

  - 나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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