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우리가 문제야
2024 제23회 국제지구사랑작품공모전 입선
길을 지나다 눈길 끄는 문구가 있어 발길을 멈추었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새삼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경구가 주는 혹독한 매질이랄까. ‘뜨거운 지구가 보내는 차가운 경고, 기후 위기! 이제는 행동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단체에서 기후 위기를 인식하고 지구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합니다. 라는 익숙한 경고문. 건물 입구에서 ‘기후 위기!! 행동하고 실천합시다’라는 차량 스티커를 무료로 나누어준다는 초록색 안내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되도록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더욱 고민하고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굳이 스티커를 만들고 붙이고 버리는 행위를 해야 하나?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도 당면한 지구 기후 문제를 모르는 이들이 있을까.
곽재식 작가는 책,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어크로스, 2022)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재난과 사고로 희생되는 삶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P. 65) 고 적극적인 문장으로 말하고 있다. 작가 의견에 동의한다. 기후변화 문제를 전설이나 신화적인 접근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도 공감한다. 그 이유는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희생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말론이 아니라 현실이다. 다양한 기후변화 원인이 다양한 피해로 이어지는 것은 현재진행형이니까. 아주 작은 원인에도 희생자가 발생하기에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안을 찾아서 행동해야 하는 이유다.
점점 기후 온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홍수가 났던 곳에 홍수가 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것. 기후변화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또 피해를 본다는 의미다. 작년에 농작물로 피해 본 사람이 올해도 농작물로 피해 볼 확률이 높다. 물난리를 겪은 사람이 올해도 물난리 걱정해야 한다. 태풍이나 홍수, 가뭄 등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사회 안전망에 대한 해결책 논의가 제도화되고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극심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물결을 막기 위해 모두가 솔선수범해야 할 이유다.
기후변화와 이산화탄소와의 인연을 묵인할 수 없는 것은 생명체에게 산소가 필요한 것과 맞먹는다.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류는 고민에 빠졌다.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와 마음으로 수용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차이를 찾고 있다. 삶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보다는 수용할 수 있는 것을 실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가능한 것을 실용하는 것이 시간을 단축하는 해법이다. 단축된 시간만큼, 생명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을 테니까. 지구가 아픈 것처럼, 살아있는 것들이 아프고 기후변화로 지구 멸종을 염려하는 사이에 많은 생명이 죽어간다.
종말을 염려하는 종교적인 경구는 오늘을 사는 삶에는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가 우선이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놓칠 수는 없다. 그 가능성을 놓쳐버리면,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고 자연은 파괴될 것이며 눈앞으로 다가오는 재앙에 무너질 것이다.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으려면, 현실적인 대처방안이 필요하다. 연구하고 토론하고 규칙을 만들어 실천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으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 기후로 인한 재앙은 그저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며 그저 신화나 전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 주인공,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불안전한 삶을 구할 방법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희망이 될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숲을 조성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한계가 있다.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식물’이라고 말한 김초엽 작가 의견에 박수를 보내고는 깊은숨을 쉬게 되는 것은 식물이 기후 문제에 수호신 역할 하는 것은 맞지만, 식물 광합성으로 문제 해결하기에는, 다른 도움 없이 식물이 감당하기에는 벅차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방법이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다.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지구 시스템에서 인간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를, 즉,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대응 정책이 필요하다. 부자들 자본 놀이에 소시민은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지 않은가. 부자 나라 이산화탄소 배출로 자연 친화적인 나라가 손해를 입고 있지 않은가. 이 모두가 지구촌 일이다. 담을 치거나 성을 쌓아서 나만 괜찮으면 되는 일이 아니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안이 필요한 현실을 묵인하는 것은 비인도적이고 비인간적이다.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이 우선이지, 무엇을 먼저 실행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쓰레기 문제다.
인간과 관련된 것들 가운데 유일하게 영구적인 것은 인간이 만드는 쓰레기뿐이다, 라는 문장을 슬프게 되새김질한다. 쓰레기 문제를 캠페인이나 경구로 해결하기에는 우리에게 내성이 생겼다. 쓰레기를 줄이자는 낱말이 의뭉하고 식상하게 느껴진다면, 멀지 않아 우리 중 누군가는 기후 이변으로 피해자가 될 것이다. 자기가 남기는 쓰레기는 자기 검열이다. 자기 모든 행적이 기록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삶의 쓰레기는 삶의 기록이다.
쓰레기는 말하고 있다. 지구를 겉도는 모든 쓰레기는 실패한 소비로 인한 고통이라고. 인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고 죽어버린 모든 생명체(살처분된 동물들)가 토해내는 넋두리가 혼이 되어 지구를 맴돌고 있다. 쓰레기는 지구의 페이소스(pathos)다. 슬픈 탄식이 지구 곳곳에서 새어 나온다. 그 소리가 애통하게 들리지 않는가. 인간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너무나 많은 흔적을 남긴다. 그중에서 내가 만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쓰레기가 이산화탄소 주범이라면, 그만큼 책임지는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렇다. 지구에서 들리는 탄식은 우리들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기후 위기를 인식하고 지구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합니다’ 현수막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단체 건물 마당에 행사를 위해 준비된 음식이 비닐 식탁보 위에 있다. 종이컵과 일회용 접시, 나무젓가락과 물티슈 등등, 금방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물건들이 정돈되어 있다. 생각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알면서도 못하는 사이에 생기는 쓰레기.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노력하는 시간에 비해 쌓이는 쓰레기가 어마어마하다.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흔적이다. 자본으로 대체된 욕망의 흔적이… 쓰레기다.
환경 스티커에 지구를 지켜야 할 책임을 떠넘기면 안 된다. 현수막이 해결하리라고 믿어서도 안 된다. 우리가 하는 무지한 행동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현실은 환경 전쟁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생명이 죽으니까. 그것도 많은 생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