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딧 Aug 02. 2021

아플 준비를 하는 새나라의 어른

2차 백신 접종을 앞둔 일상

아직   하나 건사하기 힘들고, 사고 치고 수습하느라 바쁜데이런 모자란 나도 이제 어른은 어른이구나 싶었던 계기가 있다. 백신 이차 접종을 앞두고 며칠 앓아누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단단히 준비를 해둔 것이다. 미리 맞은 주변 사람들이 아파서 병가를 냈다,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등의 소식전해주니 나도 많이 아플까  문득 겁이  것이다.


그래서 며칠에 걸쳐 준비를 했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다. 일단 최대 4일 아플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빨래와 집안일을 미리 해두었다. 빨래는 사실 세탁기가 하는 거라 내가 힘들 건 없는데, 내겐 어쩐지 너무 귀찮은 일이라 쌓여있는 빨래를 전부 해버렸다. 백신과 상관없이 그냥 속이 시원하다. 그리고 청소를 하고 미루었던 정리를 해두었다. 아프면 속수무책으로 어질러질 테니 일단 지금 깔끔하게 해 두었다.


그리고 사흘 간의 스케줄을 최대한 비웠다. 회사에도 백신 맞는다는 얘기를 미리 해두고, 사적인 약속도 잡지 않았다. 잡스러운 일들, 택배 보내기, 공과금 처리 등등 이런 것도 내친김에 해버렸다. 평소에도 이렇게 제 때 제때 하면 되는 걸, 늘 미루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디데이! 아침에 나가 일주일치 먹고도 남을 장을 보았다. 평소엔 하루 이틀 먹을 치만 사두는데 이번엔 냉장고가 가득 차도록 장을 보았다. 나름 머리를 굴려 잘 익은 과일과 덜 익은 과일을 섞어 샀다 (이런 나를 보며 굉장히 뿌듯했다). 그렇게 가득 찬 냉장고를 보니 내 마음도 준비가 다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백신 맞는 장소로 가면서는 다시금 떨렸다. 이 시국에 다들 한번 아니 두 번씩 치르는 통과의례인데… 당연히 맞아야지 하면서도 떨린다. 아무런 예고 없이 아픈 것과, 이렇게 어느 날 몇 시부터 아픈 것.. 뭐가 나은지는 모르겠다. 주사를 맞고는 언제쯤부터 아프려나 계속 신경이 쓰였다. 몇 시간 만에 반응이 있었다는 친구도 있고, 적어도 하루는 걸렸다는 친구도 있었는데… 저녁도 먹고 책도 읽고 일상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계속 초조했다.


주사를 맞고 정확히 열두 시간 후에 몸에 반응이 왔다. 준비성 철저하게 침대 옆에 놓아둔 파라세타몰을 입에 털어 넣으며 내가 대견했다. 이런 게 어른의 책임감, 어른의 삶이구나 싶은 거다. 사실 많이 아프지는 않아서 일주일 치 장을 볼 필요까진 없었다. 하지만 별 알맹이 없는 이 글의 의도는 사실 그거다. 아무도 몰라주니 나라도 알아주자는 마음, 머쓱하지만 스스로 칭찬해주는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SNS 염탐의 순기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