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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Nov 07. 2019

머리카락이 뭐라고

이게 이렇게 편할 일이야?


이게 이렇게 편할 일이야?

머리카락이 뭐라고




머리를 잘랐다. 윗 머리를 고정하고 그 속을  슥슥 밀었다. 그리고 난 후에 윗 머리를 귀에 살짝 닿을 정도로 다듬었다. 잘려진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후두두 떨어지는 것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고 있자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기분이 들어 눈물이 핑 돌았다. 다행히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지는 않아 민망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미용실에서 나오는 길,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짧아진 머리를 지나 두피를 관통했고 그 느낌은 후덥한 날씨와 반대로 꽤 서늘했다.


지난 20여 년간, 쇄골을 웃돌던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했던 이유는 오직 '여자 같기' 위함이었다. 나는 그 '여자 같기' 위함을, 즉 '그들에게 여자로 보이기 위한 것들'을 나의 삶에서 지우기로 했고 그 출발과도 같던 날의 기분은 슬프게도 해방감이나 자신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마치 벌거벗은듯한, 수치심 비스무리한 기세에 위축되어 고개를 들지 못했으니 말이다.


다행히 짧아진 머리에 적응을 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를까 말까 고민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마치 한 번도 머리가 길었던 적이 없던 것처럼 나는 짧은 머리에 빠르게 적응했고, 동시에 나의 삶에는 여러 변화가 생겼다. 일단 출근 전 최소 1시간을 잡아먹던 준비시간이 단 20분으로 줄었다. 이는 부족한 아침잠에 허덕이는 직장인에게 아주 큰 변화였고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40분이나 더 잘 수 있었다.


또한 옷차림이 꽤나 편안해졌다. 어이없게도(?) 출퇴근 지하철에서는 불필요한 스킨십이 눈에 띄게 줄었고, '아가씨'라는 듣기 거북한 호칭은 '학생'으로 바뀌었으며, 홀로 밤거리를 거닐어도 그 누구 하나 말을 걸지 않았다. 비록 대한민국 여성 평균 키를 사뿐히 넘는 신체 조건 때문에 영화관이나, 술집과 같은 공공 화장실을 이용할 때에 약간의 눈치를 봐야 하는 애로사항이 새로이 생겨났지만, 이 정도는 앞선 변화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이쯤 되면, 나는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게 이렇게 편할 일이야?"

"머리카락이 뭐라고"


어쩌면 나는 '여자로 보이기 위한 것들'중 한 가지를 내려놓음으로써 많은 편리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그간 그 간단한 것 한 가지를 내려놓지를 못해서 최소 10년을 엄한 고생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걱정과 달리 머리가 길든 짧든 나는 여전히 여자였고, 머리 짧은 여성으로 세상을 살아본 결과 잠재적 연애 대상자들에게 내가 어떠한 모습의 여자로 보이는지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바라는 '여성스러운' 모습에 맞출 필요는 더욱이 없었다.


업무는 머리카락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 예의에 어긋난 것도 아니고.(꽤나 보수적으로 평가되는 공무원들과의 미팅도 곧잘 했으니 나의 차림새가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이는 것 또한 아니었다.) 작은 변화들(어쩌면 당연히 누려야 할 편안함들)로 하여금 삶의 질 또한 올라갔다면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을 이유는 없었는데, 나는 왜 미용실에 들어서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렸을까. 왜 그토록 머리길이에 대한 변화를 두려워했을까.


어쩌면 나는 그날 지하철에 탄 사람들에게 단발이었던 내 머리가 한껏 짧아졌단 사실보다 그날의 웹툰과 뉴스 메신저가 더 중요했다는 걸 아주 잘 알았지만, 미처 그 무관심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별 것 아닌 행위에 그간 할애한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허무할까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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