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와이안 May 28. 2024

약 일년간의 정리

나는 어떻게 지냈나 - 2023년 중반부터 지금까지

약 3년간 글 세 개를 올린 게 전부다. 브런치 아이디를 받으며 그게 뭐든 자주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물론 서랍에는 쓰다 만 글이 한 네 개쯤 있다. 그것도 많은 건 아니지. 


프리랜서로 혼자 사는 심심함을 토로한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1.

우연히 회사를 하나 들어갔고, 2년을 버티다 나왔다. 엄청난 일들을 겪었는데, 씁쓸하게도 '사람은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행히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을 얻어서 상처는 크게 남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같이 일을 해봐야 진가를 안다.


#2.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년 반 전, 결혼을 했다. 결혼 후 그야말로 지지고볶고 살아서 심심할 틈이 없었다. 대체로 행복한 날들이었다. 전세 2년 계약을 마치고 동네에 좋아하는 공원 근처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계약 종료와 입주 기간이 두 달 뜨는 바람에 종로 부근의 어느 원룸에서 두 달을 딱 붙어 지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계절이라 매일 둘이 산책을 했다. 청와대 앞의 텅 빈 길이 좋았다. '무무대'에서 고요하게 서울 야경을 한참 바라봤고, 숲속 카페에서는 하루 종일 앉아 일을 하기도 했다. 사소한 일로 크게 싸운 뒤 마음 답답할 때도 혼자 마냥 걸었다. 좋은 계절이었다.


#3.

지독한 목감기에 걸렸다. 이사를 2주 정도 앞둔 늦가을이었다. 남편에게 옮았다.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던 터라 방심했다. 남편의 기침이 심상치 않다는 것쯤은 눈치채도 좋았을 텐데. 평소처럼 출근 후(아, 나는 또 2년 전에 친한 선배와 함께 사무실을 시작했다. 망원동에 있다.) 반가운 손님을 맞았다. 한참 수다를 떠는데 점점 목에서 쇤소리가 났다. 퇴근길에 약국에 들렀을 때는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약사는 얼른 병원에 올라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병원 처방을 받아 다시 내려왔는데, 요즘 유행하는 감기지만 이렇게 심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했다. 다음날에는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가슴속에 시멘트를 덕지덕지 바른 것 같았다. (남편은 연기하지 말라고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아무튼 사람과 필담을 나눈 건 그때가 처음이다. 밤에는 목이 터질듯한 기침이 찾아왔다. 날이 갈수록 점점 잦아들긴 했지만 두 달 가까이 기침을 했다.


#4.

이사하던 날, 여전히 아팠고 추웠다. 어머님께서 내 상태를 알고 따뜻한 차를 보온병에 준비해오셨고, 패딩을 찾아 입혀주셨다. 포장이사라 사실상 할 일은 없었지만 앉아 있는 것조차 고됐다. 두 달가량 보관되어 있던 우리 가구들과 물건들이 반가웠다. 이사를 마치자마자 쓰러져 잤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운 겨울을 그렇게 새공간에서 시작했다. 


#5.

부엌창으로 보이는 뒷산 나무는 점점 앙상해져 갔다. 좋아하던 공원으로의 산책은 시도도 못했다. 하지만 재개한 게 있으니, 난임 치료다. 치료라고 하는 게 맞나. 이미 1년 넘게 아이를 기다렸고, 좌절한 끝에 시험관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사 때문에 미뤘던 난임센터를 다시 찾아 시험관 시도를 하겠다고 말했다.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않은 채 그냥 맡기자 생각했다. 시키는대로 주사를 맞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마음을 비웠다. 매일 주사를 스스로 놓는 일이 서럽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6.

배아를 동결하고 한 달쯤 뒤 배아를 이식했다. 첫 시도였는데, 사실 그 며칠 전 출장 중 꿈을 꿨다. 로또 아니면 태몽이다 했는데 남편에게 꿈값을 받고 산 복권이 제대로 꽝이었다. 태몽이리라 믿었다.


#7.

언니네가 미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가면서 강아지를 열흘 넘게 맡겼는데, 워낙 내가 예뻐하는 친구라 같이 보내는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마침 봄이 오고 있어 같이 여러 날 공원을 산책했다. 남편은 매일 언니네에 들러 고양이들 밥을 챙겼다. 고마웠다.


#8.

이식 12일차, 임신을 확인했다. 태몽이라 믿었지만 한 번에 되는 일은 잘 없다고 해서 기대를 버렸는데 아이가 이때쯤 오고 싶었나보다. 처음으로 두 줄 진한 테스터를 확인하고 곧바로 남편에게 보여줬다. 서로를 부둥켜 안거나, 울거나, 기뻐서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행동은 둘에게서 전혀 나오지 않았다. 쳐다보며 둘 다 "올~ 신기해" 하고 말한 게 끝이다. 물론 이후에 잔잔한 이벤트는 있었다. 아이 심장소리를 들은 날 남편은 트렁크에서 꽃을 꺼내왔다. 그때는 눈물이 났다.


#9.

오늘 임신 19주 1일차에 돌입했다. 지난한 입덧을 겨우 지나왔는데 어딘가 속이 또 읔. 하지만 잘 먹지 못한 날은 없다. 이상한 입덧. 17주차에 처음 꾸물, 태동을 느꼈고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아이가 잘 있나 궁금하고 불안한 날들의 연속에서 태동은 단비다. 뜻밖의 선물을 받아 <엄마의 역사: 우리가 몰랐던 제도 밖의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있다. 임신에 관한 과거 여성들의 기록을 좇아가는 책. 거기서 인상적인 부분을 적어본다. 태동에 관한 이야기다.


'만일 시각이 가장 주요한 감각이라면 아마도 임신은 촉각으로 다시 교육받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촉감은 아기와 나 사이의 지식의 점자(點字)이며, 임신의 중후반기를 살아내고 이해하게 하는 가장 주요한 감각이다. 임신 테스트에서 선을 기다리는 것, 슬프거나 기쁜 모니터 화면 스캐닝, 아기가 '거기에 있음'을 나타내는 이 시각적인 순간들은 촉각이 '여기에 있음'을 주장하는 앞에서 희미해진다. 촉각은 활력 넘치는 유대이며 그것을 따라 감정들이 전율하고 움직인다. 아기는 외계인 같고, 동행 같고, 나 자신 같기도 하다.'

- 세라 놋 <엄마의 역사> 중 -


#10.

매일이 가고, 마침내 아이를 만나는 날이 오기를 나는 매순간 기다린다. 좋은 계절이 또 지나가고 있고, 다시 좋은 계절이 오면 만날 수 있다. 그저 건강하기를.


작가의 이전글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