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마지막으로 꾸었던 꿈이 / 새의 밑으로 고요히 새어 나옵니다. / 오래 앉았던 가지의 모양으로 – 83P.
#사랑하는소년이얼음밑에살아서 #한정원 #시
작년 여름, ‘시간의흐름’ 출판사를 소싱해보겠다고, <움푹한> 강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강연 전까지 순식간에 절반 가까이 읽었지만 결국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그때, 출판사에서 시집을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들었고, 올해 초에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여름 초입에 구매하게 됐는데, 첫인상은 ‘오 시집도 나오는건가’ 보다 ‘특이하게 생겼네’였다,
새하얀 표지에 한 겹의 막에 쌓인 것이 마치 제목처럼 ‘얼음’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첫장을 넘기고 시인의 말을 보며 크리스마스를 노렸던 것일까, 하고 넘겼는데. 내용이 가로로 되어 있었다. 보통 책등을 잡고 읽으면 됐는데 그게 안 돼서, 위 끄트머리를 잡고 가로로 읽게 되었다. 진짜 특이하네.
소설을 읽으며 시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은 많았지만, 한편 한편으로 쪼개진 시가 아닌 시를 극 형식으로 읽어 본 건 처음이었다. 일종의 연시처럼. 소년과 소녀는 함께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떨어져 있는 순간들이 극처럼 조명된다. 멀지는 않지만, 그들을 갈라놓은 막은 확연하다.
목소리만 있는 사람처럼, 나 건너에 있는 사람.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멀어진 사람.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는 어떠한 풍경보다 순수해 보인다. 그래서 이 둘이 찢어지는 순간 그 공허함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막이 보이는데도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럼에도 소년과 소녀는 대화한다. 그 대화들을 잊기 힘든 극이었다.
아마 내가 이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내 독해 수준이 얼음처럼 껴있을테니까, 그래도 다시 펼쳐보면서 이야기해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읽던 중, 선물로 책갈피를 받았다. 얼음은 아니지만, 바다처럼 투명한 책갈피기에, 하나의 막으로써 나와 내가 읽은 책들을 막으면서, 이어줄 것 같았다. 책갈피, 막을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