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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통 Sep 05. 2023

끝, 사라진 빛 - <8월의 빛>을 읽고

읽다

서기 이천이십이 년 사람들은 유령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저마다 흐르기를 멈추기 시작한다 어디론가 끌려가기는 한다 흰 마스크를 쓰고 끊임없이 서로를 감염시키면서 - <기묘입자 中>

시는 대체로 죽음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 <2031 中>

 

어쩌면 나의 비관은 낙관론자의 비관일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함께 살아 있는 존재들을 사랑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의 비관은 그러니까 삶을 너무 좋아해서 생겨난 슬픔이다. 너무 사랑해서 못 견디게 슬픈 것이다. - 149P.

 

#8월의빛 #박시하 #시

 

아침달 인스타그램과 국제도서전에서 만났을 때, 내 머릿속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8월에 읽자’ 보통 이런 결심을 하면 10에 7번 정도 실패하는 편인데, 오랜만에 성공했다. 다만 여름빛의 강렬함을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읽은 게 함정.

 

다소 어둑한 배경에 촘촘한 빛이 내려오는 순간, 표지를 보고는 그늘에서 바라본 햇빛을 상상했다. 촘촘하지만 강렬한 빛. 그 순간의 빛깔과 빛이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지금 보니 처음 본 박시하 시인의 시집이기에, 나는 그만큼 생동감 넘치는 시들이 가득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 읽었었을 때, 묘하게 오소소한 느낌을 받았다. 강렬한 건 맞지만, 생동감이라기보다는 죽음의 이미지가 더 가깝다. 유령들과 혹은 유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순간까지, 그럼에도 빛나는 건, 삶보다는 이야기에 가깝다. 죽음 이전에 삶이 있으니, 그 이야기들.

 

내가 기억하는 첫 꿈이자, 악몽의 순간이 떠올랐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가라앉은 집에 있던 하얀 원피스를 입은 장발의 여자,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 볼인가 어깨 언저리에 손을 올리려고 했을 때, 얼굴을 보지 못하고 나는 잠에서 깼다. 그때, 얼굴을 마주쳤다면 뭐라도 이야기를 했었을까. 나는 그 이후로 귀신 꿈을 꾼 기억이 없다.

 

저것이 첫 공포였다면, 이 책을 읽으며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 공포는, 내가 태어난 날이 누군가의 기일이 될 수 있다는 것.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부분인데, 이번 여름에는 크게 여행을 가지도 않았는데, 오랜만에 아빠와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너랑 이럴 시간이 얼마나 더 있겠니’라는 말이 더 무섭게 다가오기도 했다.

 

계속 얘기하다 보니 ‘8월’의 빛인데, 나는 왜 여름을 먼저 생각했었을까, 이 책은 여름의 생동감보다는 늦여름에 드문드문 느껴지는 선선함을 닮아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창의 때를 지나가 약간은 쌀쌀하기도 한 순간들, 겨울에 읽으면 뭔가 묘했을 것 같다.

 

강렬하지만, 따뜻함보다는 따끔따끔한 이야기가 많았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빛이 아니라, 종종 보이는 빛은 주변이 꽤 어두워서 더 강렬했다. 다시 적응할 때쯤 번쩍. 반전이 있다기보다는 점점 시를 읽을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앞으로 볼 것들은 얼마나 어둡고 밝고, 강렬하려나, 좋은 꼴도 있겠지.

 

여담이지만 첫 시를 읽자마자, 이 책 전에 읽은 <밝은 밤>에서 마음에 들었던 문장(마음을 꺼낸다는 부분)을 만나 느낌이 묘했었다. 그래서 ‘밝다’고 생각했었지만, 시에서는 슬픔을 꺼낸다. ‘슬픔으로 꺼내어 영혼을 씻었다’(페퍼민트)라는 문장 보며 생각했다. 슬픔으로 닦인 영혼은 어떤 빛깔을 띠고 있을까.

 

늦여름, 나름의 납량특집 같았던 시집이었다. 이젠 여름도 끝났지만. 다시 더워졌지만 끝은 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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