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현탁 Nov 25. 2022

오레오를 추억하며

2017년 7월 31일, 여행가방에 들어간 오레오


녀석을 처음 만난건 막 사무실을 옮긴 오래된 빌딩에서였다. 처음에는 극렬히 동물을 사무실에 들이는 것을 반대했던 나였지만 어느새 가장 정이 들어버려 녀석과 나는 낮밤을 함께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무실을 학교 근처로 옮기게 되면서 새 사무실에서의 규칙상 애완동물을 들이는 것이 금지되었고 녀석을 떠앉는것은 내 몫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나는 회사 생활과 함께 졸업 논문을 준비하는 마지막 학기에 있었고 녀석은 내가 집에 올 때면 항상 나를 반겨주는 반려동물이 되어 있었다. 평소와 같이 배를 어루만지던 때에 가슴 쪽에 무언가 조그맣게 잡히는 혹이 있었는데 당시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딱딱하게 집히는 알수없는 물체가 조금씩 커지는 것을 느끼고 난 뒤 그제서나 나는 녀석을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조직검사를 해 봐야겠는데요"


이때에도 나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산을 하고 난 뒤의 암컷 고양이는 높은 확률로 악성 유선 종양이 생길 수 있다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은 녀석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수술 날짜를 잡게 되었다.

배를 절반으로 잘라내 종양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거친 뒤에 암이 재발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암은 그런 존재였다. 나날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항암 치료를 이어가지만 한 달에 한번씩 들르던 병원은 2주에 한번, 1주에 한 번, 3일에 한번으로 줄어들었다.

녀석과의 투병 생활을 이어가게 되면서 나는 암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울리게 된 질환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윽고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하게 된 녀석에게 종종 링거를 맞추러 동물병원을 들르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녀석에게 심정지가 발생했을때 빠르게 조치가 취해질 수 있었다. 심정지 이후에 빠르게 취해진 심폐소생으로 인해 기적적으로 정지된 심장이 잠시 다시 뛰었고 다행히 나는 녀석의 푸른 눈을 마주하며 녀석을 떠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12월 23일, 그렇게 녀석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머나먼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녀석을 받아 돌아오는 길은 허망했다. 모든 것이 막막했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마지막까지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빈 케이지가 유달리 가벼웠다.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일주일 만에 졸업 논문을 완성해야 하는 과제에 놓이게 되었고 나는 눈물을 삼켜 가며 현실의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했다. 바쁜 날들이 지난 뒤에도 녀석은 종종 꿈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동안 잘 지내왔냐고,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눈인사를 하며, 공허한 온기를 나누며 그렇게 녀석은 잠시금 들렀다 갔다.


종종 녀석과의 추억이 담긴 디지털 사진첩을 열어본다. 사진에서 녀석은 잘 갖춰입은 턱시도와 함께 모든 것을 꿰뚫어보듯 당당하고 매력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젠가 녀석을 다시 만나게 되면 이야기 해 주고 싶다. 함께해서 영광이었다고.


2017년 10월 16일, 자취방에 설치해둔 홈카메라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