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가 끝났는데 대리님 한분이 다른 사람들 다 나간 뒤에, 조용히 다가와서 물었다.
"강사님, 과장님이 저한테는 막 대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래요. 회의 때마다 저만 깎아내리고...
저 너무 만만해 보이나요? 성격을 바꿔야 할까요?"
이런 질문, 여러분도 한 번쯤 해보셨을 것이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대리님, 방금 하신 질문 있잖아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이 질문 자체가 벌써 문제예요. 이건 마치... 학교에서 맞고 온 아이한테 '너가 뭘 잘못해서 맞았니?'라고 물어보는 것과 똑같거든요."
누군가 직장에서 갑질을 하면 분명 명백히 가해자가 있는데, 왜 우리는 항상 피해자한테 물어볼까?
"오죽했으면 그랬겠어?"
"성격이 유하게 보여서 그래"
심리학에는 '피해자 비난(Victim Blam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세상을 공정하다고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쁜 일은 나쁜 사람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나는 착하니까 안 당할 거야"라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착각이다.
갑질은 당신이 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대가 나쁜 사람이어서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가해자가 나쁜 놈이다" 알고 끝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건, "이 놈이 왜 하필 나를 골랐는지"를 아는 것이다.
내가 만난 수많은 사례를 보면, 갑질러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이 유형은 직설적이다. 소리 지르고, 무시하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준다.
작년에 만난 5년 차 최대리 사례다.
팀장이 회의 때마다 최대리한테만 "야, 이것도 못해? 대학은 어떻게 나왔어?"
그런데 신기한 건, 옆자리 이대리한테는 절대 그렇게 안 했다는 것이다.
"이대리는 그럴 때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아, 이대리는... 바로 쏘아붙여요. '팀장님, 그건 제가 자료를 안 받아서 그런 거고, 다음주까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최대리님은요?"
"저는... 일단 죄송하다고 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여쭤봐요..."
바로 이것이다.
갑질러들은 본능적으로 반격 안 할 사람을 고른다. 마치 동물이 먹이를 선택하듯이.
공감결핍형 빌런이 좋아하는 타깃은 이렇다.
갈등 회피형 – "죄송합니다" 먼저 말함
공감형 – 상대 기분 먼저 살핌
칭찬 의존형 – "제가 잘못했나요?" 묻는 사람
이런 분들은 공감결핍형 빌런형에게 '안전한 타깃'이다.
왜냐하면 반격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상처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2. 권모술수형 빌런
이 유형은 더 무섭다.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매너 있어 보인다. 하지만 뒤에서는 정치하고, 통제하고, 조종한다.
6년 차 정대리 사례다.
새로 온 차장님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정말 좋은 사람 같았단다.
"정대리, 고생 많아. 그부분 정대리가 직접이야기 하면 오해할 수 있으니 차라리 내가 상무님이랑 먼저 이야기해볼게."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3개월 쯤 지나니까 프로젝트 성과는 차장님이 다 가져가고, 실패는 정대리 탓으로 돌리더란다.
더 무서운 건, 다른 팀원들과 회의할 때는
"이건 정대리가 주도해서 한 거고, 제가 서포트했습니다."
라고 설명해놓고 정작 임원 보고에서는
"제가 주도적으로 방향을 잡아서 팀원들이 실행했습니다." 라고 보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권모술수형 빌런이 노리는 타깃은 이렇다.
정치 감수성 제로 – 누가 누구 편인지 못 읽음
실무형 인간 – 오직 일만 열심히 함
조직 권력 무관심 – 회의 때 누가 영향력 있는지 모름
이런 분들은 권모술수형에게 '최고의 먹잇감'이다. 왜냐하면 뒤통수 맞고도 왜 맞았는지 이해를 못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가지 질문과 행동을 장착하라고 권유한다
갑질을 당한다고 느껴지면,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스스로 묻지 말고
"저 사람 행동, 상식적으로 적절한가?" 라고 되물어야 한다
팀장이 회의에서 "야, 이것도 못해? 대학은 어디 나왔어?"
여기서 대응해야 할 것은 "내가 뭘 잘못했나?"가 아니라
"회의에서 팀원에게 모욕주는 게 적절한 행동인가?" 라는 팀장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직접 빌런에게 하지 않는게 좋다. 그럼 더 복수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이는 나의 마음을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질문으로 활용할 것을 권장한다.
권모술수형 빌런은 항상 자신을 도우는 척 하면 결정적 공을 가로챈다.
이걸 지키는 방법은 모든 업무 논의를 문서로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업무를 메일로 보낼때 모든 참석자를 숨은참조로 보내는 것이다.
"오늘 회의 내용 정리합니다. 제가 주도하는 부분: A, B, C / 차장님 서포트 부분: D, E / 이해 안 되는 부분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차장은 더 이상 쉽게 공을 가로챌 수 없었다.
권모술수형 빌런이 내게 또 접근한다면, "나를 어떻게 조종하려는가?"를 마치 제 3자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록하는 것이 좋다.
나를 위하는 척 했지만 실제 성과는 본인이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면 금방 패턴이 보인다. 이것을 당사자 입장에서 당한다고 생각하면 기분나쁘과 좌절의 시간을 보낸다.
생각을 전환해서 마치 다른 사람을 보듯, 어떻게 이용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기록을 해보자
그러면 일단 본인의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지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기록된 내용은 향후 수많은 상황에서 갑질 빌런에게 반박근거로, HR팀에는 조사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갑질은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나쁜 사람이라서 일어난다.
박대리, 최대리, 정대리... 모두 아무 잘못이 없었다.
다만 "이 사람이 나를 노리고 있구나"를 조금만 일찍 알아챘더라면, 더 빨리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억하자.
당신이 공감 잘하는 사람이든,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든, 솔직한 사람이든 그건 장점이다.
다만, 그 장점을 악용하려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만 가지면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명확한 경계선을 그을 수 있는 세가지 질문과 행동을 실천하면 된다.
절대, 절대, 스스로를 탓하지 말자.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P.S. 만약 당신이 지금 직장에서 갑질을 당하고 있다면, 이 글을 읽고 "그래, 내 잘못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다음 단계는 천천히 가도 된다. 하지만 한 가지만 기억해 두자. 상처받은 당신에게 필요한 건 자책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과 푹 쉬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제 뭘 해야 하지?"를 고민할 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