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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철우 Feb 06. 2022

창의적 사고란 자유롭게 기존 틀을 깨야 하는 걸까?

직장인을 위한 심리학 레시피 8

직장인을 위한 심리학 레시피

  레시피가 필요한 직장인의 여덟번째 질문!


"형식을 파괴하고 자유롭게 생각해야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것 아닐까요? "


최고윤 사원과 김필승 사원은 입사 동기이다.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최고윤 사원은 영업기획팀에 김필승 사원은 상품개발실에 배치되었다. OJT 지도사원이 정해지고 본격적인 업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두 사원을 담당한 선배 지도사원의 업무 방식이 전혀 달랐다.       


 최고윤 사원의 선배인 영업기획팀 강대리는 유연하고 자유스러운 스타일이었다.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고 팀의 막내라도 자유스럽고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 대리님! 여기 문서 만들어 봤습니다. 오타 체크도 했고요 “

 ” 응.. 잘했네,  팀장님께 보고하세요 “

 ” 직접.. 바로 말합니까? “

 ” 네, 팀장님께도 편하게 본인이 이번 사안에 대해 생각하는 의견 말하면 좋아하실 거예요 “


 담당 팀장님도 자유스러움을 좋아해서, 문서작성도 형식보다는 내용의 충실함을 중요하게 여겼다.

 분량도 자유롭게, 특별히 사내 규정을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는 편하게 작성토록 하였고, 보고 할 때도 자유스럽게 최고윤 사원 스타일에 맞춰서 의견 개진하도록 배려했다.

      

 김필승 사원의 선배인 상품개발실 최대리는 전형적인 형식주의 스타일이었다. 그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업무의 형식이었다. 특히 문서작성에 대해서는 정해진 분량만큼 더도 덜도 아닌 딱 맞춰서 쓰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 김필승 씨 이거 글자포인트를 11포인트로 줄였네요? 줄 간격도 120%로 줄였고요? “

 ” 네.. 대리님 아무래도 1페이지 내에 쓰려다 보니 칸이 모자라서요 “

 ” 아니죠.. 이렇게 하면 안돼요! 기존 12포인트 크기와 줄 간격 140%는 유지해야죠! 이건 모든 문서의 기본인데.. 그리고 1페이지로 줄이라는 것은 내용을 요약하라는 의미이지 글자 크기를 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고요 “

 ” 대리님! 도저히 그 이하로는 줄이지 못하겠어요.. “

 ” 암튼 크기와 줄 간격 수정해서 1페이지 내로 다시 쓰세요! “

 김필승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문서를 다시 수정했다. 어쩌어찌 중복이 될 문한 표현을 빼고 가급적 단순하게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겨우 1페이지로 줄일 수 있었다.


 ” 대리님! 여기 있습니다. “

 ” 음.. 필승씨 수고 많았어요..  그리고 동일한 형식을 유지하면서 2페이지짜리로 하나만 더 부탁할게요 “

 ” 네? 2페이지는 왜요? “

 ” 응.. 팀장님은 1페이지짜리를 선호하시는데 본부장님은 2페이지를 좋아하세요..  기존 내용을 다시 한번 보면서 2페이지로 만들어 봐요 “

 김필승 씨는 울고 싶은 마음에 속으로 외쳤다.

‘저 인간 업무 스타일 맞추다가 날 새겠다. 아니.. 형식이 그리 중요해? 내용만 잘 전달되면 되는 게 아니야? 도대체 이놈의 것을 왜 지맘대로 1페이지로 했다가 2페이지로 했다가..  이런 식으로 일하다가 완전히 바보 되는 거 아닌가.. 내 아이디어가 몽땅 사장되는 것 같아..’     


둘 중 누가 더 창의적인 사원으로 회사에서 성장하게 될까?       

   


심리학 레시피


1. 창의성의 개념     


 대리 시절 받았던 창의력 교육 연수에서 강사는 고전적인 창의성 문제라고 하면서 아래와 같은 문제를 제시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번 풀어보시라 


 그림처럼 아홉 개의 점 퍼즐이 있다. 당신은 아홉 개의 점을 네 개의 직선을 사용해서 연결하되, 도중에 연필을 한 번도 떼지 말아야 한다. 시작!      

 해결되었는가? 해결하신 분들은 축하드린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마음속에 가상의 사각형을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사각형 내에서 해결하려고 수많은 직선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었을 것이다. 그리고 답을 못 찾아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럼 정답을 공개한다.            

   

문제에서는 아홉 개의 점이라고 했고 사각형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대부분 참여자들은 아홉 개의 점을 사각형의 틀로 바라본다. 그리고 열심히 사각형 범위 내에서 네 개의 직선으로 연필을 떼지 않고 연결하려고 하지만 잘 안된다.     

 정답을 보는 순간 정답을 맞추지 못했던 분들은 아~라는 탄식이 떠오를 것이다.

 ”그래! 내가 사각형이라는 틀 속에서 아홉 개의 점을 바라봤구나, 틀을 깨트려야 하는데 나는 너무 고정관념의 틀 속에 있어, 그래서 창의적이지 못한가 봐 “

라면서 자신을 잠시나마 자책한다.  

    


당시 교육에서 문제의 정답을 알게 된 교육생들이 약간 인사이트를 얻은 표정을 지을 때 강사는 

”創意 “라고 한자로 표현된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운다. 

그리고 이것을 분해해서 창의성이 뜻을 밝히려고 접근한다.      


 창의성은 창고(倉)를 칼(刀)로 난도질한다. 즉 틀을 깨는 것이다. 하지만 틀을 깬다고 끝이 아니라 그 깨어진 틀이 어떠한 가치를 품어야 한다면서 창의성의 최종 뜻은 "새로움에 가치를 더하는 것이다" 라며 도입부 강의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후의 과정은 이러한 틀을 깨트리기 위해서 어떻게 마인드를 갖추고 스킬을 습득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활동과 이론적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아홉 개의 점 퍼즐은 1970년대 초 인간지능의 심리학적 연구의 초석을 다진 조이 폴 길포드 (J.P.Guilford) 박사가 창의성 연구과제로 처음 제시한 이래 50여 년간 창의성 교육의 근간을 이루어 온 ”틀을 깨라! “ 의 핵심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길포드의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 20%만이 가상의 사각형이라는 틀을 깨고 네 개의 직선을 연결했었고 요즘도 강의 현장에서 가끔 이 문제를 내 보면 이 문제를 처음 접한 교육생들 대부분은 여전히 50여 년 전과 동일한 모습을 보인다.      

창의성의 핵심은 바로 ”자유롭게 틀을 깨는 것이다. “는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적어도 직관적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2. 자유롭게 틀을 깨야 창의적 결과물을 가져다주는가?     


어떠한 제약(Constrain)이 주어지면 창의성이 방해되는 것인가? 

이에 대해 지속적인 질문이 심리학 연구자들로부터 제기되어 왔다.      

 2005년에 진행된 Moreau와 Dahl의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5-11세 아동들을 위한 장난감을 디자인하라고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아래의 그림과 같은 모양이 각기 다른 20개의 도형이 제시되었다.      

         

 참가자 절반은(A) 20개의 도형중 5개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B) 주최 측에서 강제적으로 5개씩 지급했다.  

 그리고 자유롭게 5개를 고른 참가자 중에서 다시 절반에게는(A-1) 5개를 무조건 모두 디자인에 사용하라고 하였고, 나머지 절반(A-2)은 5개는 물론 20개의 도형 중 자유롭게 전부 혹은 일부를 이용해서 디자인에 활용하라고 하였다. 

 또한 주최 측 에서 강제적으로 5개씩 지급한 집단에서도 역시 절반(B-1)은 주어진 5개를 무조건 디자인에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B-2)은 5개 포함하여 기존 20개 중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지시했다.      


정리를 하면      

 - A-1 : 5개 자유선택 + 디자인시 강제 활용 = 제약 횟수 1회  

 - A-2 : 5개 자유선택 + 디자인시 자유 활용 = 제약 횟수 0회

 - B-1 : 5개 강제선택 + 디자인시 강제 활용 = 제약 횟수 2회

 - B-2 : 5개 강제선택 + 디자인시 자유 활용 = 제약 횟수 1회     


이후 최종 디자인 결과물이 얼마나 창의적이었는가를 측정하기 위해 3명의 디자인 전문가가 참신함과 적절함을 중심으로 평가했다. 

 그 결과 제약성이 더 많아질수록 (B-1) 창의성이 더 활발하게 활용되었고, 가장 무난하거나 이미 알려진 장난감 디자인과 거리가 먼 작품을 만들어냈다. 

반면에 가장 자유로운 선택을 한 A-2의 경우에는 시중의 장난감과 가장 유사한 디자인 작품을 제출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결국 창의적 결과물은 자유롭게 틀을 깨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약이 가해질 때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보여주었다. 



3. 제약을 통해 창의성 높이기     


 김 작가는 매번 드라마 대본을 쓰지만 할 때마다 힘이 부친다.  시청률에 대한 압박이나 PPL 광고를 적절하게 삽입하다가 너무 많다고 욕을 먹는 것은 차라리 소소하다. 

 정말 문제는 너무 많은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곳곳에서 터지고 이를 수습하기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번 드라마처럼 국내 촬영, 해외 촬영이 모두 있고, 시공간을 초월하다 보니 과거를 배경으로 한 사극 촬영과, 현실을 반영한 현재 촬영이 혼재하다 보니 작가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많이 벌어졌고 이때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가님! 문제가 생겼어요.. 우리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메밀밭 신 말이에요~ “

오늘 촬영을 마치고 회의를 하는데 이 감독님이 메밀밭 신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 네.. 아마 6회 하고 8회쯤 나뉘어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좀 있습니다. 3일 후 해외 촬영 있으니까 거기 먼저 보름 정도 찍고 다녀와서 현대 씬 이틀 정도 찍고 나서 찍으면 될 것 같아요 “

” 그게 아니고요..  지난번 회의 때 말씀하신 거 생각해보면 메밀밭에서 메밀이 눈꽃처럼 날려야 한다고 했었 잖아요..“

” 네.. 거기서 남녀 주인공이 키스도 하고, 회상도 하고 여러 장면이 필요해서요.. “

” 알아보니 지금 메밀꽃이 피었는데 이번에 피고 한 15일 정도 지나면 진다고 하네요 “

” 네? “ 김 작가는 기겁을 했다.

” 메밀꽃이 그렇게 빨리 지는 거군요.. “

” 더 큰 문제는 지금 그 지역에 비가 오기 시작해서.. 아마 3,4일 정도면 다 꽃이 질 거라네요.. “

” 아.. 그럼 어쩌죠? “

” 일단 해외 촬영 스케줄은 미루면 되는데..  문제는 시간이 이틀 정도밖에 없다는 거예요.. 지금 메밀밭 관련 씬을 그전에 찍어야 될 것 같아요..  대본 있어요? “

” 아뇨.. 저는 해외 촬영 나갔을 때 쓸려고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

” 내일 밤에는 무조건 찍어야 할 것 같아요.. “

” 아.. 감독님 저 어떡해요 “

” 지금부터 쓰셔야죠 “     


김 작가는 하늘이 노래졌다. 아니 아직 머릿속에만 대충 그림이 있는 정도인데 이게 언제 어디쯤 어떻게 쓰일 줄 알고 내일까지 쓰라고 하는 거야..     

작업실로 돌아오자마자 울상을 지었다. 남은 시간은 열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써야지.. 써야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메밀밭 씬은 이 드라마의 가장 핵심인 멜로씬과 남주인공의 고뇌, 이후 남녀 주인공의 만남. 설렘 모두 담겨야 하는데 그걸 10시간 밖에 안 남은 상태에서 16부작에 나오는 모든 메밀밭 씬의 대본을 써야 했다.

”선생님 어떡해요.. 이 감독 진짜 냉정한 거 아녜요? 아무리 드라마가 요즘 생방송처럼 한다고 하지만... 지금부터 쓰면 되는 거 아니냐며 아주 남 일처럼 쉽게 얘기하네요...  정말 사람이 갈수록 그러네요.. “

보조작가들도 울상이다. 

김 작가는 결심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조건 써야 한다.     


두 달 후..

김 작가가 급박하게 써 내려간 메밀밭 씬이 방송되었다.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이 지금 세상이 어떠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니 잘못이 아니다 “     

 2016년 그해 최고의 드라마로 선정되고 그중에서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뽑힌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 6부, 남자 주인공 공유의 메밀밭 씬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김은숙 작가 인터뷰 참조)


 이처럼 창의적 결과물은 자유롭게 틀을 깨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법적, 시간적 제약이 가해질 때 더 좋게 얻을 수 있다는 증거가 많이 보이고 있다.


 로널드 핑크는 이를  ‘제한된 영역 원리(limited scope principle)’라는 이론으로 설명하면서

 문제해결 상황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의 수를 일정하게 제한하면 보다 당사자의 집중력을 높여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해법의 잠재력을 증폭시킨다 것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창의성은 멀리 다른 곳에 있는 것을 찾아 무턱대로 이리저리 뛰는 게 아니라 제한적인 가능성의 목록 가운데 효과적인 것을 탐색하는 지능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입사 5년이 된 어느 날

 김필승 대리는 회장 비서실로 발령을 받았다. 

 비서실장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 김필승 대리라고 했죠? 축하해요! 작년에 사업 다각화 방안 아이디어 발표회 때 회장님께서 칭찬 많이 하시더라고, 젊은 친구가 아이디어도 좋고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훌륭해서 꼭 비서실로 데려다가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토론할 때 적절하게 내용을 정리하거나 요약하는 방식도 너무 좋았고요, 아직 입사 5년 차 밖에 안되었는데 어떻게 그런 능력을 키웠어요? “

” 아.. 실장님 그건 아마 제가 사수인.. “

김필승 대리는 자신이 신입사원부터 받아온 트레이닝 방식을 비서실장님께 설명했다.     


”맞아요! 그건 비서실에서도 정말 필요한 능력이에요, 회장님이 시간이 늘 가변적이거든, 어느 날은 시간이 한 시간 준다고 하셔서 보고 시간을 한 시간 잡았는데 갑자기 급한 일정 생겼다고 10분 안에 해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또 어떤 경우는 분명히 5분 보고 받으시겠다고 해서 5분 준비했는데 갑자기 뒷 약속이 취소되었다고 하시면서 시간 충분하니 30분쯤 주겠다고 하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 비서실 직원들이 가장 많이 연습하는 게 바로 각종 보고서를 최소한 3가지 버전으로 준비하는 거예요. 1페이지 5분짜리, 3페이지 10분짜리, 15페이지 20분짜리 이렇게요

근데 재밌는 게 뭔지 알아요? 그걸 하면서 비서실 직원들이 전체 사업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생기더라고요..  굉장히 창의적인 훈련이라고 할까?

김필승 대리는 이미 그 훈련을 신입 시절부터 받았던 것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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