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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Nov 01. 2024

우쭈쭈, 우리 공주, 우리 고양이!

다섯살 어린이의 4박5일 집사 체험

친구가 여행을 간다며 고양이를 맡아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혼자나 둘이 살 때라면 고민없이 OK했을텐데

(남편과 둘이던 시절에도 며칠 맡아준 적이 있어요!)

아이가 있고 보니 선뜻 그러자는 말이 안나오더라구요. 

하루 정도 생각해보고 답을 주겠다고 했어요.


송이는 동물을 조금 무서워하고 많이 좋아합니다. 

동물원에서 라마에게 처음 건초를 먹였을 땐, 

먹이 보고 우르르 다가오는 게 무서워 제 등 뒤로 숨어 소리를 질러놓곤,

집에 와선 또 라마 보러 가자고 졸라댔던 아이에요. 

참, 고양이랑 사는 그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도, 고양이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었네요. 

고양이가 자기랑 안 놀아준다고 삐지기까지 했었어요.


걱정되었던 건, 혹시 모를 알러지, 

아이가 귀찮게 해서 고양이가 물거나 할퀴지는 않을지, 

고양이가 숨을 때마다 아이가 삐져 피곤해지진 않을지, 

고양이가 가고 나서 우리도 키우자고 떼쓰지는 않을지... 여럿 있었는데요.


그래도 맡아보기로 했습니다. 

송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해보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돌봐줘야 하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경험이요.


어느 고양이 까페는 '집사 체험'이란 홍보 문구로, 꽤 비싼데도 며칠씩 예약이 꽉 차 있더라구요. 

좋다, 공짜로 집사체험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죠.


미리 말하면 오는 날까지 고양이 언제 오냐고 하루 수십번 물을 게 뻔해서, 

오는 날 하원하며 알려줬어요. 윤 이모네 고양이가 우리집에서 네 밤 자고 갈거라고. 

어. 그런데 송이, 

"싫은데. 고양이 안왔으면 좋겠어." 하는 거예요! 

이제와 무를 수도 없고, 

왜, 이모네 놀러가서 고양이 보고 좋아했었잖아, 같이 지내면 너도 좋아할 거야,

열심히 달래며 집으로 왔지요.


늦은 저녁, 친구가 고양이 케이지랑 고양이 짐을 한아름 안고 왔어요. 

화장실이며 밥그릇, 스크레쳐 자리를 정하는 동안, 

낯가림 없는 성격인 고양이는 초면에 제집인양 여기저기 어슬렁거리고 있었고요. 

낯가림이 반쯤 남은 송이는 멀찍이서 점잖게 지켜보고만 있더라구요.


친구가 돌아가고 고양이랑 엄마랑 셋이 남자, 

송이 목소리가 갑자기 달라집니다. 

한옥타브가 올라갔어요.


"고양이야! 어구 우리 고양이, 우쭈쭈! 배고파? 심심해? "



태세전환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안심했어요!


그렇게 4박5일동안 송이와 퐁듀는 다투거나 다치는 일 없이 잘 지냈습니다. 

대부분은 따로 놀긴 했지만요. ㅎㅎ 

고양이 이름이 퐁듀에요! 

송이는 퐁듀라는 이름이 어려운지 끝까지 외우지 못하더라구요. 

몇번이고 저에게 "고양이 이름이 뭐더라?" 묻더니, 

나중엔 그냥 '공주'라고 불렀답니다. 

공주야, 우리 공주! 우쭈쭈! 다행히 암컷이었어요. ㅎㅎ


고양이야 늘 예쁘고 귀엽긴 하지만.

뭘 저리 호들갑 떨며 귀여워하는지. 시끄럽고 유난스러워서...

음... 거울치료 제대로 당했습니다.


퐁듀를 처음 맡았던 건 5년 전. 난임시술에 몇 차례 실패하고 지쳐있을 때였어요.

퐁듀는 너무 어리고 여린 몸으로 새끼들을 밴 채 거리에서 발견됐대요.

새끼들을 낳고 임보를 거쳐 친구 집에서 적응을 잘 마치고, 

저희 집에 잠깐 맡겨졌던 그 때도 아직 만 한 살이 안 됐다고 들었어요.


첫날부터 제 무릎에 누워 태연하게 그릉거리는 퐁듀는 참 따뜻하고, 보드랍고,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는데요.

그 와중에 그 작은 동물에게 질투가 일 때가 있더라구요.


너는 한 살도 안 돼 엄마가 되었는데,

난 마흔을 앞두고도 아이를 품지 못하는구나.


어이없는 말을 건네곤 했습니다. 

형편없이 마음이 약해져있던 때였어요.


그런데, 때 맞춰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주고, 토한 걸 닦아주고, 

놀아주고 만져주기까지 해야 하니, 

하루종일 늘어져있던 몸을 일으킬 수 밖에 없더라구요.

내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누군가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아이를 안 주시는 건가, 

생각한 적도 있는데,

내게도 '돌보는 마음'이 있긴 있구나, 확인하고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퐁듀는 5년 전의 저를 기억할까요.

송이는 다섯 살 때 4박5일동안 같이 지낸 고양이를 기억할까요. 

 

고양이를 키우자고 조르지 않을까 걱정했던 건 기우였습니다.

마지막날엔 "고양이, 이제 갔으면 좋겠어." 하더라구요.

송이가 미술학원에서 공들여 만들어온 작품을 퐁듀가 조금 망가뜨렸거든요. ㅎㅎ

가고도 한동안은 안 찾더니,

2주쯤 지난 요즈음 가끔 찾네요.

하원해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으며,

없는 거 알면서도 괜히 "고양이야!" 불러보네요.

뭐 그 정도.

나중에 어찌 될 진 몰라도, 당분간은 동물을 키우자는 말은 안 할 것 같네요.


다행이에요.

제가 돌볼 수 있는 몸은 하나뿐이거든요.

제 몸 말고 송이 몸이요.

우당탕탕 송이 등원시키고 돌아오면 지쳐서,

퐁듀가 오토바이처럼 그릉거려도, 강아지처럼 장난감을 물어와도,

만져주거나 놀아줄 힘이 안 남아 있어, 너무 미안하더라구요.


이번주 내내 송이랑 저랑 같이 감기를 앓고 있는데,

송이 약을 챙겨 먹이고 나면 이상하게 제 약은 까먹고 맙니다. 

나이가 많지 않았어도 전 둘째는 포기했을 거예요.

느리고 둔하고 멀티가 안 되는 저는, 두 사람은 절대 케어 못해요. 암요.

(둘째 안 낳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하는 말입니다.)


송이가 제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자랄 때까지,

제 몸이 (세심히 보살펴주지 않더라도) 알아서 잘 버텨주길 바랄 뿐이에요.

저랑 비슷한 엄마들도 있겠지요?


내일은 잠깐이라도 혼자 이불 푹 뒤집어쓰고 감기를 쫓아보고 싶지만...

주말이네요. ^^

약이라도 잊지 말고 잘 챙겨 먹어야겠습니다.

송이야. 이젠 약 먹을때마다 온 집안 헤집고 도망다니면서 엄마 혼 좀 빼놓지 말아줄래?


이번 주말도, 육아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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