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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Nov 08. 2024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달이 떴어!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

해가 많이 짧아졌어요.

어둑한 하원길, 마트에 들러

내가 고른 반찬거리 하나, 아이가 고른 과자 하나 들고 나서면,

그새 밖이 깜깜해져 있네요.


집에 와 저녁 준비 하는 엄마를 등지고 한참 혼자 놀아주던 아이가

문득 창밖을 보고 외쳤어요.


"엄마! 봐봐! 엄마가 좋아하는 달이 떴어!"


내가 좋아하는 달이 뭐지? 궁금해

손에 묻은 물 뚝뚝 흘리며 거실 창 앞으로 달려가 내다보니,

눈썹달이에요.



가냘프면서도 날카로워 보이는, 얇은 초승달은

볼 때마다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 몇 번 아이 앞에서 예쁘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봐요.

그 말을 아이가 기억하고, 엄마 좋아하는 달 보라고 저를 불러준 겁니다.


아이의 마음이 예뻐서 달도 더 예뻐 보였고,

잠깐 시간을 내 사진을 찍어두었어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있는 것.

그걸 봤을 때 그 사람이 생각나는 마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5월엔 어린이집에서 '엄마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며,

간단한 설문지를 가방에 넣어 보낸 적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이야기 나누고 발표할 자료로 쓸 테니,

엄마가 좋아하는 색깔, 음식, 노래 등등을 적어 보내 달라는 거였죠.


다른 건 술술 적어나갔는데, '노래'에서 막히더라구요.

어릴 땐 유행하는 모든 아이돌 노래들의 가사를 줄줄 외우고 있었고,

젊을 땐 인디밴드 공연이나 페스티벌 찾아다니는 게 취미였던 제가,

떠오르는 노래라곤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들 몇 곡 뿐인 거예요.

괜히 서글퍼지던데요.

한참을 궁리하다, 당시 커버 영상들까지 화제가 돼 안 들어볼 수가 없었던 노래를 적어 보냈죠.


그후로 아이는 그 노래가 들릴 때마다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말해주네요.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닌데 가슴이 뜨끔합니다.

음악을 다시 좀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향 있는 엄마가 되고 싶어서요.

뭐,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쳤고, 지금도 대유행 중인 노래들만 겨우 흥얼거리지만요.


달 취향이라도 확실히 있으니 다행인 걸까요. ^^


취향을 잃어가는 저와는 달리

아이는 점점 취향이 확고해지네요.

이제 곰돌이나 강아지가 그려진 옷은 잘 안 입으려 합니다...

귀엽지 않고 멋있어야 한대요...


색감이 너무 예뻐서 덜컥 산 (곰돌이가 그려진) 맨투맨을,

가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한번도 어린이집에 안 입고 가 줬어요.

더 큰 사이즈가 없어 딱 맞는 사이즈로 샀어서,

내년 봄엔 짤뚱해질 텐데 말이죠.

송이한테 너무 잘 어울리고 예쁘다고 한번만 입자고 사정사정을 했더니,

그럼 어린이집 말고 엄마아빠랑 나들이 갈 때 입겠대요.

선심 쓰듯이요. 허.

   

넙죽 받아들여야죠. 네.

8월에 산 옷, 내일 드디어 개시합니다. ^^

입어줄 때 사진 실컷 찍어야겠어요.

색감이 정말 제 취향이거든요. ㅎㅎ

아이가 아직 엄마 취향대로 입어줄 때 마음껏 즐기시길 바라며.

이번 주말도 육아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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