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간식은 바나나, 오후 간식은 국수였어!
다섯살 아이가 전하는 오늘의 안부
어느 날인가부터 송이는,
하원 시간 어린이집을 나서서 엄마를 보자마자 처음 하는 이야기가,
오늘의 오전 간식과 오후 간식 메뉴를 읊는 것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키즈노트에 뜬 식단 사진을 보고 이미 알고 있는데요. ㅎㅎ
왜 하필 간식 메뉴를, 매일같이 말해주는 걸까,
아이한테 물어보면 왠지 무안해할 것 같아,
혼자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봤어요.
아무래도 아이가 전하는 나름의 하루 안부인 것 같네요.
오늘도 어린이집에선 나에게 이런 맛있는 것들을 주었어.
그렇게 오늘 하루도 잘 보냈어, 같은.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요.
신혼 초에 남편이 매일 자기가 먹는 점심 상차림 사진을 찍어 보냈던 게 떠올랐거든요.
별다른 다정한 멘트를 덧붙이지 않아도,
사진을 보내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너와 헤어져 밖에 나와 있고,
바쁘게, 때론 힘들게 일하고 있지만,
잠깐 쉬면서 맛있는 거 먹고 있어.
이렇게 한숨 돌리면서야 니 생각을 하네.
너도 점심 잘 챙겨먹어, 같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따뜻한 일인가요.
누군가 내 하루를 궁금해한다고 믿을 수 있다는 게요.
송이는 4세반 2학기 때 잠깐 등원거부가 심하게 왔었어요.
어찌어찌 고비를 넘겼지만,
어느 날 또 갑자기 어린이집 안 가겠다 할것만 같아 아침마다 아이 눈치를 보던 시절,
하원하는 아이 손을 꼭 잡아주며 매일 물었었어요.
"오늘 어린이집에서 잘 지냈어?"
그럼 아이는 대부분 씩씩하게 응, 잘 지냈다고 대답해주었구요.
며칠 같은 질문을 반복하자, 언젠가부턴 제가 묻기도 전에,
"나 오늘 어린이집에서 잘 지냈어."
먼저 말해주기도 하더라구요.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또 어찌나 안쓰러운지.
그땐 집에서 엄마랑 뒹굴거리는 걸 제일 좋아하는 아이였으니까요.
(지금은 엄마보다 친구랑 노는 걸 더 좋아해서,
어린이집에서 오랜 시간 보내게 하는 게 좀 덜 미안합니다. 후후.)
안쓰러운 마음을 지우려고 질문을 바꿨어요.
"오늘은 간식 뭐 나왔어?"
한두시간 전에 먹은 간식을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지만,
뭐가 나왔었는지 기억해내고 이야기해줄 땐 표정이 밝아지더라구요.
먹는 얘기만큼 즐거운 게 어딨습니까. ㅎㅎ
5세반이 되며 반 친구들이 바뀌고,
아이가 한참 친구와 함께 노는 법을 배워나갈 때엔,
"오늘은 누구랑 뭐하고 놀았어?"
가 하원 질문이었네요.
그 질문도 몇 번 하지 못했어요.
묻기도 전에 송이가 먼저,
오늘은 현이랑 블럭놀이 했고, 서랑 색칠놀이했어, 말해주기 시작했거든요.
어느 날은 "오늘은 아무도 나랑 안 놀아줬어" 시무룩해하기도 했었는데.
이젠 친구들이랑 두루두루 잘 지내는가봐요.
친구 얘기 대신 간식 얘기를 하는 게,
친구들이랑 같이 재밌게 노는 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길 바래요.
그래서 오래전 엄마가 매일 간식 메뉴를 물었던 게 떠올라,
지금도 엄마가 궁금해할 거라 생각하고 먼저 말해주고 있는 거라구요.
남자아이들은 대개,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 쫑알쫑알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던데, 송이는 제 바람대로 반쯤은 딸같은 아들인가봐요.
유치원에 가도 그래줄까요?
송이는 내년 3월부터 유치원에 갑니다.
(원하는 유치원에 우선지원해 선발됐어요!)
6세에 합류하는 거라, 5세 때부터 다니던 아이들 틈에 잘 녹아들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지만,
이제 낯가림이 거의 없어져 어딜 가든 씩씩하단 칭찬 받는 송이를 한번 믿어보려구요.
그보단 유치원은 오전간식이 없다는 게 조금 더 걱정입니다. ㅎㅎ
등원시간이 빨라져,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이 가장 큰 걱정이고요...
그래도 뭐, 시간이 약이니까요.
등원거부 심할 땐 아침마다 엉엉 우는 아이를 떼어놓는 그 괴로움이 영원할 것 같이 힘겨웠는데,
지나고 보니 겨우 한두달이었거든요.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나갈 거라 믿습니다.
여름의 무더위를 걱정하기보다 물놀이를 기대하고, 겨울의 맹추위를 대비하기보다 눈사람 만들 상상에 설레하는 송이를 보며.
저도 새로운 변화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봅니다.
어제는 몸이 좋지 않아 글이 하루 늦어졌네요.
비가 온다 했지만 아직은 참아주고 있어서,
공원에 나와있어요.
아이가 아빠와 킥보드 타고 한바퀴 돌고 오는 동안 이 글을 씁니다.
어라. 빗방울이 떨어지네요.
나온지 한시간도 안됐는데 철수해야겠어요!
이제 저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ㅎㅎ
이번 주말도 육아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