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 차가운 물에 적셔서 엄마 이마에 얹어줄까?
T 어린이가 T 엄마에게
이석증 앓아 보신 적 있으신가요?
10년 전쯤 아빠가 이 병으로 고생하셨고
남편의 누나도 앓았었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 이름이나 증상에는 익숙했는데요.
막상 저한테 직접 닥치니 그 어지러움은 진짜,
당황스럽더라구요.
지난주 금요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데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요.
욱 하고 속도 치밀고요.
바로 아, 이게 그거구나 알겠더라구요.
남편은 출근했고 아이는 아직 자고 있는데,
가만히 앉은채 몇분이 지나도록 꼼짝을 못하겠어요.
꼭 곧 정신을 놓을 것만 같구요.
아이한테 119를 불러달라고 해야 하나,
아이가 할 수 있을까, 많이 놀랄 텐데,
에이, 이석증이 119 부를 일은 아니지,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119에 전화해 집주소 알려주는 법 정도는 미리 가르쳐 놔야겠다,
까지 생각하자 겨우 어지럼이 좀 잠잠해졌어요.
쓰러지더라도 등원은 시켜놓고 쓰러지잔 마음으로 아이를 일찌감치 깨웠구요. 등원시키고 오며 좀 괜찮아진 것 같아 방심한 마음으로 잠깐 눕는다는 게, 방향을 잘못 잡았는지 또 빙빙 돕니다. 몇시간을 헤롱거리다 하원 시간에 맞춰 겨우 병원에 다녀왔어요.
안진 검사를 해봤는데 반응이 없었어요. 아마 이석이 자연히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은데, 며칠은 어지러움이 남아있을 거라며 약을 처방해주더라고요. 중년 이후에 흔히 오는 병이니 다음에 또 와도 놀라서 응급실 가지 말고 이비인후과로 오라고. ('중년 이후', 맞지만 괜히 서운해지네요...) 집안일은 고개를 숙이고 하는 일이 많으니 왠만하면 하지 말라고 했구요.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단 말을 들어 그런지 어지러움도 거의 없고, 하원한 아이랑도 평소처럼 열심히 놀아줬는데, 저녁 설거지를 좀 길게 하다 보니 다시 확 어지러워요! 역시 의사 말은 잘 들어야 되는구나, 남은 설거지는 남편한테 맡기고 소파에 기대 앉았어요. 눕다간 또 어지러워질 것 같아 무서워서 못 눕겠는데, 그게 또 괜히 서러워요. 아빠한테 엄마 아프니까 말 잘 들으란 잔소릴 단단히 들은 송이가 쭈뼛쭈뼛 다가왔어요.
"엄마, 차가운 물에 수건 적셔서 이마에 얹어줄까?"
"(이와중에 귀엽다!) 아냐, 괜찮아. 열 나는 건 아니라서."
모처럼 아픈 엄마를 걱정해주는 아이에게 상당히 T스러운 답을 해버렸네요. ㅎㅎ
자기가 박치기해서 엄마 턱에 피멍이 들었을 때도, 엄마 너무 아프다고 부러 더 앓는 척을 해도, "괜찮아~"하며 (왜 니가 괜찮은 건데!!!) 다른 장난감으로 달려가던 송이가, 많이 컸네요.
찬물에 수건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기특해요.
자기 열감기 들어 엄마가 밤새 열보초 서며 수건 얹어줄땐 차가운거 싫다며 내팽개치더니, 그게 보살피는 일이란 건 기억하고 있었나봐요.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고 있나봐요.
30분이나 지났나, 심심하다며 빙글빙글 돌려달라고 달려들긴 했지만요. ㅎㅎ (지금 빙글빙글하면 우리 둘다 쓰러져!)
인스타에서, 아기엄마가 저혈당 쇼크가 와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 기어다니는 아기를 (당시 판단에 가장 안전해 보였을) 아기침대로 옮기고, 그와중에 토한 아기 옷을 갈아입히고 토한 것까지 다 닦아내고 있는 영상을 본적이 있어요. 대단하다 싶었는데, 이거 남의 일만은 아니네요.
송이 젖먹이 시절, 자주 몸살이 와 골골거리면서도 아기는 못 내려놓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엄마는 아프지도 못한다"며 안쓰러워하시던 게 떠오릅니다.
건강검진에서 모양이 안 좋다는 혹이 나왔을 때, 혹 사진을 띄운 모니터 위로 아이 얼굴부터 떠오르던 순간도요.
좋은 거 먹고 (나쁜 거 먹지 말고) 운동하고 검진도 꼬박꼬박 받고, 네, 아프지 말아야겠어요.
가끔 아이한테 "니 몸은 니 거 아냐! 엄마가 줬으니까 엄마 거야!" 반 농담으로 말하는 엄마들을 보는데, 엄마 몸이야말로 엄마 게 아닌 것 같아요. 아기의 밥줄이었다가, 베게며 쿠션이었다가, 장난감이나 놀이터였다가, 어쨌든 아직은 아이의 것.
이번 주말도 아이한테 박치기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러면서도 열심히 또 건강히. 육아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