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귀엽다고 해준 사람은 니가 처음이야!
아이아빠는 술 한잔 하고 들어온 날엔
아이에게 평소에 하지 않는 말을 자꾸 합니다.
"송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송이, 나중에 아빠 없으면 어떻게 살래?"
(전 아이한테 왜 그런 말을 하냐고 질색하지만,
아이는, "엄마랑 살면 되지 뭐." 하고 마네요. ^^;)
나이 많은 아빠의 꼰대력이 취기와 함께 상승한달까요...
어느 날은 이런 질문까지 했습니다.
"송이야. 아빠는 어떤 사람 같아?"
아... 옆에서 듣는 제가 다 닭살이 돋았습니다.
"음... 아빠는 멋쟁이야."
착해라.
아빠도 만족한 듯 싶었는데요.
"그리고 나는 예쁜이, 엄마는 귀여운이야!"
세상에.
귀염둥이도 아니고, '귀여운이'라니!
듣도보도 못한 말을 쓰는 아이의 귀여움,
아이가 엄마를 귀엽다고 해줄 때면 늘 밀려오는 감격에,
"꺄!" 소리지르며 아이를 꼭 껴안고 흔들고 구르고,
음, 누가 보면, 술 한 방울도 안 마신 제가 더 취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 같네요.
돌아보면 연애 3년, 결혼생활 10년 동안
아이아빠는 제게 귀엽다는 말을 해준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아니, 살면서 귀엽다는 소릴 들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외모도 성격도 귀엽다기보단 의젓한 편이고...
어릴 때도 어른스럽단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제가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
다섯살 송이에게선 가끔 '귀엽다'는 소릴 듣는답니다.
오늘도 들었어요!
등원길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불기에,
아이 외투에 달린 모자를 씌워주려는데,
아이가 싫다고 합니다.
부끄럽대요.
(골라준 옷이 마음에 안 들 때 쓰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보란듯이 제가 먼저 점퍼 후드를 뒤집어 썼지요.
"모자 쓰는 게 뭐가 부끄러워! 어때? 엄마 모자 쓰니까 이상해?"
"아니. 안 이상해. 귀여워."
아아...
등원길에 아이를 안고 구를 수는 없어 꾹 참고,
아이 모자만 얼른 씌워줬구요.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지만,
오늘은 특히 날아갈듯 기분좋게 돌아왔네요.
아이를 낳기 전엔 아기 예쁜 거 잘 몰랐던 저인데,
송이는 매일매일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귀엽다", "예쁘다"는 말을 하루에 열두번도 더 했어요.
볼 때마다 다시 반한달까요. 외모보다 행동에 더요.
일부러 해주는 칭찬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흘러나왔던 거죠.
그런데 아이아빠는 제가 아이한테 "귀엽다"고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더라구요.
버릇 나빠진다고요!
(이 꼰대 아저씨를 어찌합니까...
어쩌면,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애정표현을 많이 못 받아봐서,
제가 하는 표현들이 어색해서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또 좀 안쓰럽네요.)
그런데요.
저는, 아이가 하지 말라고 할 때까지는 해주고 싶어요.
귀엽다는 말.
두세살 땐 잠깐 외출해도 모르는 할머니 아줌마들에게서 귀엽다는 탄성을 서너번은 들었던 송이가,
이젠 남한테선 귀엽단 말 듣기 어려운 나이가 됐어요.
저만 해도, 엄마 품에 안긴 갓난아기나 이제 막 아장아장 걷는 돌쟁이들을 보면
한 번 안아보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데,
무섭게 뛰어다니는 대여섯 살 아이들은,
무슨 키즈모델 같은 외모가 아니면, 다시 돌아볼 정도로 이쁘진 않거든요.
(물론 엄마 눈엔 계속 귀엽겠지만요^^)
엄마(그리고 할머니!) 아니면 누가 귀엽다고 해주겠습니까!
누군가 나를 언제까지나 귀여워하고, 예뻐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게
어느 순간엔 아이에게 큰 힘이 될 거라고 저는 믿어요.
사랑과 표현을 듬뿍 받아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걸 돌려줄 수 있다는 것두요.
"엄마가 너를 혼낼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항상 널 사랑하고 있다"고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긴 하지만요. ㅎㅎ
갑자기 또 쌀쌀해졌는데,
아이들도 엄마들도 모두 감기 조심하시구요.
독감 접종 더 늦기 전에 꼭 하시구요.
이번 주말도 육아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