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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Oct 18. 2024

어쩔 수 없잖아, 엄마품이 제일 따뜻한 걸.

애착인형은 없구요. 엄마 팔이 애착베개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졌어요!

어느새 낙엽이 지네요. 맑은 날엔 하늘이 너무 예쁘구요.

귤이 점점 맛있어지고... 음, 드디어 시금치 값도 내려갔어요!

하...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에게 가을은, '팔베개'의 계절입니다.


한여름엔 쿨매트도 덥다고 벽에 일자로 붙어자던 송이가,

며칠 전부터 다시 엄마 팔을 베고 자기 시작했어요...


아주 얇은 이불도 덥다고 걷어차는 아이인데,

사람 체온이 제일 더운 건데,

더우면 잠이 잘 안 올 법도 한데,

엄마 팔을 베야 잠이 온다고 합니다.

두돌 무렵부터였으니, 네돌 지난 송이에겐 인생 절반을 함께해온 습관이네요.


잘 때는 다른 사람과 살이 닿는 게 싫어,

가족여행 때 오랜만에 나란히 자게 된 엄마가 잡았던 손도,

신혼 때 남편이 선심 쓰듯 내주던 팔베개도 슬금슬금 피했던 제가,

무려 2년 동안이나 누군가의 팔베개가 될 줄은, 그렇게 되기 전엔 상상도 못했어요.


처음엔 그 작은 머리도 무겁다고 5분만 지나도 손끝이 저려왔었는데,

이젠 단련이 됐는지 30분, 1시간이 지나도 아무렇지도 않네요.


물론, 송이가 뒤척임을 멈추고 깊이 잠들면, 아이가 못 느끼게 조심조심 팔을 빼야 합니다!

안 그러면 열 많은 송이 머리가 땀범벅이 되거든요.

아이 재우고 저도 깜빡 잠들었거나,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본다고 팔을 늦게 뺀 날엔,

제 옷이 소매부터 겨드랑이까지 흠뻑 젖어 있어 갈아입어야 될 정도예요.


어젯밤엔 진지하게 제안해 봤지요.


"송이 이제 엄마 팔베개 그만 베는 게 어때?"

"시이이이잃어."

"송이 이제 송이 방 만들어달라며! 그럼 혼자 자야 되는데, 팔베게 베는 습관부터,"

"방 있어도 잠은 엄마랑 잘 건데?"

"...그래? 그래도, 팔베개 하고 자면 송이 땀이 너무 나는데? 그럼 감기 걸릴 수도 있고,"

"(한숨) 어쩔 수 없어."

"에? 왜 어쩔 수 없어?"

"엄마 품이 제일 따뜻한걸!"


'엄마 품'이라니. '품'이라니.

'품 안에 자식'처럼 관용어로만 쓰이는 거라고 생각했던 단어가 아이 입에서 나오자,

왜인지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리더라구요.


그림책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중에서


까짓거, 팔베게 한 2년 더 해주죠 뭐.

이젠 좀 컸는지, 땀 좀 났다고 감기 걸리진 않더라구요!

대신 제가 한겨울에도 (안았을 때 아이 머리가 닿는) 목 언저리에 땀띠를 달고 살지만요...

분리수면도 저희 집은 아직 먼 얘기인 것 같구요.

요즘들어 무서운 게 많아진 송이인데, (태풍, 화산폭발, 혜성충돌, 정말, 아는 게 병이네요;;)

엄마가 안아주면 안 무섭다고 하니 그건 참 다행이다 싶어요.


아이가 품 안에 쏙 들어오던 시절이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집니다.

아이를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꼭 안아줄 수 있는 시절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참, 많이 컸어요.

멀리서 엄마를 보고 안기려고 우다다 달려올 땐, 코어에 힘을 딱 주고 자세를 낮춥니다.

안 그럼 둘이 같이 뒤로 넘어가는 수가 있거든요. ^^

(실제로 연약한 이모할머니 두 분과 아이 무게를 모르는 미혼의 이모 한 분은 뒤로 넘어가셨습니다...)


지난 주말엔 불꽃놀이를 보러 인파가 몰린 공원에 갔었는데,

오고가는 사람들에 치일까봐 아이를 한동안 안고 있었더니,

밤엔 팔이 아니라 무릎이 아파와서, 서글프더라구요.


크는 아이를 어떻게 막겠습니까.

운동해야겠습니다. ^^


땀 좀 나도 감기 걱정 없이 밖에서 뛰어놀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요.

이럴 땐 비도 주말은 피해서 와줬으면 좋겠는데. 내일은 이 비가 그쳐줄까요?

이번 주말도 육아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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