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생일에 엄마 생일을 찾은 이유
이번주는 송이의 생일주간이었습니다!
다섯살이 생일주간이라니 너무 거창한가요. ㅎㅎ
지난 주말부터 하루씩 나눠 친가 외가 식구들 모여 미리 축하해줬고,
생일 당일엔 또 당일이라고 엄마아빠랑 작은 케이크에 촛불 불었고,
오늘은 10월생인 아이들 함께 어린이집 생일파티도 해주니,
어유, 생일주간이란 말이 무색하진 않네요. ^^;
늦게 얻은 손주가 너무 귀한 친할머니는 손수 생일상을 차려주셨구요.
고모는 미리 주문받은 헬로카봇을 착실히 사와주셨어요.
삼촌에게 주문한 선물은 '대왕크레인'이었는데요.
다 펼치면 송이 키랑 비슷한 진짜 대왕 사이즈 크레인을 사왔어요!
장난감 가게 가면 제가 먼저 달려가 구경하지만 (어른들 눈에도 참 멋져요)
손 떨리는 가격대라 한번도 사준 적 없는 바로 그 브랜드로요.
(예로부터, 부모는 못 사주는 비싼 장난감 한번씩 사주는 게, 바로 외삼촌의 포지션이죠^^)
음... 최근 몇 달 새 본 송이의 모습 중에 가장 행복해 보였습니다.
집에 있는 온갖 장난감을 다 매달아보구요.
온갖 인형들을 불러 모아놓고 크레인을 구경시켜주며 "멋있지?" "예쁘지?" 의기양양합니다.
신나게 놀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삼촌, 고마워!" 속삭이기도 했구요.
제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한테 '고맙다'고 먼저 말하는 거 처음 봤어요!
삼촌이 돌아간 뒤에도 한참을 크레인만 갖고 노는 아이를 보며,
(마음에 드는 새 장난감이 생기면 늘 그랬듯)
안고 자겠다고 고집 피울까봐 슬슬 걱정이 되는데.
"엄마, 다음에 삼촌 만나면 대왕 트럭도 사달라고 해야겠어.
크레인이 심심하대."
(장난감을 사달라고 할때 가장 많이 쓰는 핑계입니다...)
"송이야. 이런 큰 장난감은 생일 때나 받는 거야."
"아참, 그렇지..."
오, 바로 납득하네? 우리 송이 많이 컸다, 대견한 마음이 드는데,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송이.
"근데, 엄마 생일은 지났나?"
"응? 야! 엄마 생일에 왜 니가 트럭을 받아!"
지나고 생각할수록 아이의 잔꾀가 귀엽고 웃겨서 삼촌에게도 전해줬고,
삼촌도 박장대소를 했네요.
생일 당일 아침,
장난감을 많이 받았으니 엄마는 다른 선물을 사주겠다고,
책(안 고를 거 알지만),
가방(주말에 외출할 때 가방에 장난감 챙겨 들고 나가는 걸 좋아하는데, 쓰던 게 이젠 좀 작아요),
옷(물려받은 게 너무 많은데 이건 안 골랐으면...),
셋 중에 고르랬더니,
옷을 골랐어요.
"어떤 옷이냐면, 앞에는 로봇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영어가 써있고,
뒤에는 스파이더맨 그림 있는 거!"
음...
당연히 주문한 그대로의 옷은 없었구요.
앞은 무난한 줄무늬, 뒤엔 어깨에 귀여운 스파이더맨이 빼꼼 얹혀져 있는 티셔츠를 골라왔는데,
(제가 히어로물을 안 좋아해서, 너무, "난 스파이더맨이다!" 하는 옷은 피했어요!)
다행히 마음에 들어하더라구요.
어린이집 생일파티 하는 날 입고 간다고 할 정도로요.
기분좋게 원했던 새 옷 입고 등원길에 나서던 오늘 아침,
아... 신나는 생일주간의 마무리를 엄마인 제가 망치고 말았네요.
제가 케이크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같이 생일파티할 다른 아이들이 모두 여자아이들이라,
무난하게 곰돌이 모양 케이크로 골랐거든요.
케이크 상자의 투명 비닐로 케이크 모양을 확인한 송이가, 너무너무 실망해버린 겁니다.
"헬로카봇은?"
지난 주말, 할머니댁에 가며 케이크를 고를 때
아이가 헬로카봇 캐릭터 케이크를 사고 싶어했었는데,
그날은 고모부 생일도 같이 축하하기로 한 자리라 무난한 모양으로 고르며,
헬로카봇 케이크는 어린이집 생일파티 때 보내주겠다고 했었거든요.
저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이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와. 눈앞이 깜깜해지더라구요.
여자친구들도 같이 하는 생일이니까 오늘은 그냥 곰돌이로 하자,
헬로카봇은 내년 생일 때 해주겠다고 열심히 달랬는데,
굳어진 아이 얼굴은 도무지 펴지지가 았았습니다.
빵가게에 가서 케이크를 다시 사잡니다.
그럴 시간은 안 돼서 빵가게가 아직 안 열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왼손에 든 케이크도 무겁고 오른손 잡고 터덜터덜 끌려오는 아이도 무겁고, 진땀이 나는데,
"나 정말 속상해."
'속상하다'는 말을 직접 쓰는 것도 처음 보네요.
처음 보는 모습이 많습니다. 생일주간이라 그럴까요?
"생일파티 안 하고 싶어. 오늘이 주말이었으면 좋겠어."
이러다 아이가 울음이라도 터뜨릴까봐 조마조마했습니다.
아니, 제가 울고 싶어졌어요.
아이보다 내가 먼저 우는 거 아닐까 싶던 순간 어린이집에 도착했어요.
등원 맞이하는 선생님들께 슬쩍 사정을 얘기하니,
케이크 진짜 맛있겠다고 기분을 띄워주시려고는 하시는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아이는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네요.
죽을 죄를 지은 이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이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아이한테 너무 절절 매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아이와 한 약속을 홀라당 까먹어버리고 지키지 못한 게 참 마음을 무겁게 하네요.
생일파티 사진에선 부디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삐졌다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렸던 아기가,
속상한 마음을 꽤 오래 품을 수 있다는 것도,
많이 컸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네요.
크는 게 다 반갑지만은 않아요. ^^;
그래도 아이는 여섯살, 일곱살 생일초를 불며 계속 커가기면 할테고,
저는 되도록 기쁜 마음으로 그 옆에서 박수를 쳐주는 게 맞겠죠.
아, 여섯살엔 헬로카봇 케이크! 잊지 않도록 여기 기록해둡니다.
깜빡깜빡하는 엄마지만, 중요한 약속은 꼭 지키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요!
이번 주말도 육아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