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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Sep 27. 2024

나도 어린이랑 짝꿍하고 싶어!

5세 어린이들의 우정의 세계

송이는 보통의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싶어하고,

또 대부분의 다섯살 아이들처럼, 친구와 어울리는 데에 아직은 좀 서툴러요.


하원길엔 아주 중요한 얘길 하듯 진지한 표정으로,

'오늘은 누구랑 뭘하고 놀았는지' 하나하나 되짚어 보곤 하는데요.

반이 바뀐 3월엔 "오늘은 나랑 놀아주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하며

시무룩해 하는 날들도 많았어요.

"친구는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노는' 거지! 송이가 먼저 뭐 하고 놀자고 얘기해봐!"

아무렇지 않은 척 밝게 대꾸했지만, 아이 몰래 마음 속은 철렁, 했답니다.


제가 어릴 때,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참 어려워하는 아이였거든요.


그림책 [안 보이는 아이 노아] 중에서


저희 엄마는 딸인 제가 집 밖으로 '나도는' 걸 싫어했고,

대낮에 부모님이 계신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것도 일절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덕분에 (+ 타고난 성향도 있었겠지요) 사회성이 일찍 발달하지 못했던 저는

여자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놀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등학교까지

한번도 그 무리에 제대로 끼어본 적 없이 겉돌기만 했어요.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 와중에도 간간히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

조용하고 심심한 우정과 추억들을 만들기도 했고,

책이나 음악에 기대며 그럭저럭 그 시간들을 잘 지나온 것 같지만.

그 시절 제 마음 속은 참담할 때가 많았어요. 

친구관계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이었으니, 

그 중요한 걸 못해내는 스스로를 낙오자나 패배자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부모는 자신이 받았던 가장 큰 상처를 아이만은 겪지 않기를 바라잖아요.

더구나 송이는 외동에 늦둥이니까, 

살면서 부모나 형제를 대신할만한 좋은 친구 몇은 사귈 수 있기를 바래요.

그래서, 너무 앞서가는 거 알면서도,

놀이터에서 친구에게 거절당하거나 소외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송이가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게 (스스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까?

친구 사귀기엔 젬병이었던 내가 과연 도움이 될 수나 있을까?


내게 친구관계가 어려웠던 게, 어려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적어서였다면,

송이에게는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 기회를 가능한 많이 만들어주자.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송이에게 맡기자는 게, 한동안 끙끙 앓던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동네 놀이터도 열심히 나가구요.

키즈까페에 가서도 혼자 노는 또래 친구가 보이면 

같이 놀자고 해보자고 살짝 부추겨 보기도 합니다.


작년 같은 반이었다가 지금은 각각 다른 유치원들로 흩어진 친구들 엄마 몇 분과 아직 연락을 주고 받는데요.

두어달에 한 번은 시간을 맞춰 같이 놀게 하기도 해요.  

마침 오늘도 그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날이네요. 


오늘 하원하고 환이랑 율이랑 만나 같이 놀기로 했다는 말에 

아이는 신이 나서 기분좋게 등원했는데요.  

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네요. 


지난번 송이랑 환이랑 율이랑 세 친구가 모여 놀았을 때,

환이(남자아이)랑 율이(여자아이) 둘이 손을 꼭 붙잡고 뛰어다니고,

송이는 그 뒤를 쫓아다니며 노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송이가 "나도 친구들이랑 손 잡고 싶어!" 하길래, 

(이런 말은 친구들한테 직접 못 하고 꼭 엄마한테 하지요^^)

"환아, 율아, 송이랑 셋이 손 잡는 건 어때?"

다른 엄마들도 모두 같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 아이를 꼬드겨 봤는데,

요 깜찍한 커플이 싫다며 손 더 꼭 잡고 도망가 버린 거죠.

이미 율이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가 혼자 남겨진 송이는 그대로 얼어버렸구요. 


"에이, 송이는 엄마랑 짝꿍해서 가자!"

"싫어! 나도 엄마 말고 어린이랑 짝꿍하고 싶어!"


에구. 오랜만에 친구들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네요.

엄마도 울고 싶었답니다. 


환이랑 율이 엄마도 난감해 했지만, 뭐 아이들 마음이 엄마들 마음대로 되나요. 


그날 밤엔, 다음엔 환이 율이랑 셋이 노는 자리엔 안 나가야겠다,

다른 커플 데이트에 눈치 없이 낀 것도 아니고 이게 뭐야...

마음 먹었지만.


오랜만에 같이 놀자는 연락에 좋다고 해버렸어요.

먼저 마음 먹었던 게 있잖아요.

친구관계는 송이에게 맡기자.

나보다 잘할 거라고 믿어보자. 

계속 부딪혀보게 하자. 


한동안 못봤더니 율이랑 환이가 보고 싶기도 해요. 

율이 엄마랑 환이 엄마도요. 

그러고 보니, 아이 덕분에 제게도 새 친구가 생긴 거였네요. 


오늘은 과연 우리 송이, 커플들 틈에서 살아남아 신나게 놀 수 있을까요?

어쩌면 또 서운한 일이 생겨 울음이 터질지도 모를 아이에게, 

저는 조금 더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아이와 둘이 놀자니 진이 빠지고, 친구들과 같이 놀게 하려니 기가 빨리는 다섯살 부모님들,

이번 주말도 육아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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