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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Oct 04. 2024

엄만 불 나오는 신발 없어? 내가 사줄게!

키즈까페보다 쇼핑몰, 붕붕카보다 마트 카트가 좋은 다섯살

'내 아이가 날 참 닮았구나', 언제 느끼세요?

송이는 얼굴은 아빠 판박이라 아무리 들여다봐도 절 닮은 구석이 없어요.

아기 땐 다들 "아빠랑 똑같이 생겼다"며 감탄해, 서운한 기분이 들 정도였지요.


대신, 아빠보단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보니,

성격이나 행동, 취향 같은 것에서 제 모습을 보게 될 때가 많습니다.


송이 할머니는 송이 걸음걸이랑 말투가 엄마랑 똑같대요.

금요일 밤이면 "내일은 일어나서 집에서 좀 놀다가 밥 먹고 축구하러 갔다가 할머니 집에 가서..."

휴일 계획을 쫙 늘어놓고 잠자리에 드는 모습을 보며, 

얘도 완전 J네! MBTI도 닮나? 신기해하곤 합니다. 


날 닮은 모습이 모두 신통방통하고 즐겁기만 한 건 아니죠.

안 닮았으면, 하는 부분들은 꼭 빼먹지 않고 닮아가고 있으니까요.


그 중 하나가 '쇼핑'이에요.

다섯살 송이는 뭘 '산다'는 행위를 참 좋아합니다. 

아마도, 엄마가 쇼핑하며 기분전환하는 걸, 어려서부터 봐오며 습득한 거지 싶어요.


(뭘 그리 대단한 걸 사는 건 아니구요. 

귀여운 캐릭터의 키즈 밴드나, 계절에만 있는 송이처럼,

작고 예쁘고 쓸데없는 걸 사들고 집에 가는 길엔,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제가 뭘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으면, "사자, 사자!" 옆에서 부추기고,

마트나 다이소에 가면 바구니부터 야무지게 챙겨들고 걷는 뒷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이네요...


물건 자체보단, 물건을 사는 그 순간의 기분을 더 즐기는 것 같은데,

이대로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꽃가게 앞을 지나가면 꼭 꽃 한 송이만 사가자고 조르고,

집에 가서 꽃병에 꽂아놓으면 그 때부턴 관심 밖이에요.

너무너무 갖고 싶다고 슈렉 고양이 눈으로 애원해서 사줬다가 

서랍 속에 잠들어있는 장난감들도 여럿이고요.


제가 양말이라도 한 켤레 새로 샀을 땐,

"엄마 양말 새로 샀어?" 금세 알아봐주고, 

"예쁘다! 잘 샀다!" 친구처럼 같이 흥을 돋아주는 건 참 좋긴 해요.


어느 날은 세탁하려고 커버를 벗겨 흰 쿠션솜만 쇼파 위에 있는 걸 보고는,

"엄마, 쿠션 새로 샀어?"하며 한껏 상기되는 아이를 보며,

너무 어이없으면서도 엄청나게 귀여워서 한참을 웃었던 적도 있고요.


그래도, 요즘은 경제교육도 어릴 때부터 하는 추세라던데,

"송이가 지금 이 장난감을 사면, 송이 좋아하는 포도는 살 수가 없다."

"이 그림책들을 다 사려면, 아빠랑 엄마가 더 많이 일해야 해서 송이랑 더 적게 놀아줘야 한다."

고심해서 설명해봐도, 아이는 아직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

(진지한 얘기만 시작하면 '"왜?" 지옥'에 빠집니다...) 

아빠 카드는 화수분인 줄 알고, 500원짜리 몇 개 딸랑이는 저금통으로 뭐든 살 수 있는 줄 알아요. 

 

하루는 어린이집 가기가 싫은 눈치길래,

아이가 좋아하는, 불빛이 나오는 운동화를 신겨주며,

"와, 송이 신발은 불도 나오네? 너무 멋지다!" 기분을 띄우는데,

금세 기분이 좋아진 아이가 하는 말은,


"엄만 불 나오는 신발 없어? 다음에 내가 사줄게!"  


"(푸핫!) 송이 돈 있어?"

"그럼! 나 저금통에 돈 많잖아! 사줄게!"

"그래! 고마워!"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간 아이가 귀엽고도 우스워서 입으론 웃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눈가가 촉촉해지더라구요.

누가 나한테 뭘 사주겠다고 그렇게 기분좋게, 호쾌하게 말하는 일이 그리 흔치는 않잖아요. ㅎㅎ

아주 가끔 내가 아이가 되고 아이가 부모가 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때가 그랬나봐요.


어렸을 저희 집이 (실제보다 더) 가난하다고 느끼며 자랐어요.

엄마가 알뜰한 편이신데, 사소한 것도 아끼고 줄이려는 걸 보면서 자라 그랬던 걸까요.

그래서 뭘 사달라고 엄마 아빠에게 졸라본 적이 없어요.


또래 딸아이가 있는 아빠 친구 집에 갔다가 '미미의 집'이란 걸 처음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는데 -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 그걸 내가 가질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오빠는 딱딱 그 나이에 맞게, 게임기나 나이키 운동화 같은 걸 사달라 조르고, 

꿀밤 한 번 맞고 나서 받아내곤 했는데 말이죠. 

그러고 보면 경제관념도 (같은 환경이라도) 타고난 성향에 따라 달라지나봐요. 


송이는 어릴 때의 저희 오빠처럼 해맑은 경제관을 가진 것 같네요.

곰곰 다시 생각해보니 이거, '걱정'보단 '안심'되는 일에 가까운 것 같아요. 

지극히 아이다운 거니까요.


전 송이가 앞으로 뭘 하고 싶거나 갖고 싶을 때,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 하며 (어릴 때의 저처럼) 지레 포기하고 주눅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 그러면 다 커서 캐릭터 양말 같은 걸 사게 됩니...)

절제하는 건 가르치면 되니까요! (할 수 있겠죠? 해야 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마트보다는 놀이터에, 쇼핑몰보다는 숲이나 공원에 더 자주 데려가 

실컷 뛰어놀게 하는 것 뿐인 것 같아요. 


쇼핑은 어떻게 보면 가장 쉽게 만족을 얻는 방법이잖아요.

땀흘리며 재미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아이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야겠습니다.


내일은 문화센터 유아축구 교실에 가는 날이에요! 

실컷 뛰어놀고 나면 또 마트에 가자고 (이게 마트 문화센텁니다...)

카트에 타겠다고 (이제 무게 초과에요...) 조르겠지만,

내일은 아이가 애교를 부리든 삐져버리든 굴하지 않고 

후딱 데리고 집에 와보도록 하겠습니다.

할 수 있겠죠? 


이번 주말도, 육아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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