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아이와 어린이집 등원길에 나눈 이야기 2
오늘도 비가 오네요.
등원길엔 한두방울 떨어지고 말더니
하원시간이 다 된 지금은 제법 추적추적이에요.
오늘 한복 입는 날이라 공주님처럼 긴 치마를 뽐내며 걷는 여자아이들이 참 귀여웠는데
치맛자락이 젖지 않을까 괜히 걱정되네요. ^^
송이는 서걱거리는 옷을 좋아하지 않아 면으로 된 생활한복을 입혔는데요.
아씨와 도련님들 사이에서 혼자 돌쇠가 되었던 건 아닌지 그것도 걱정이구요. ㅎㅎ
길었던 더위를 식히는 게 쉽지 않은지, 요즘 들어 비가 자주 오는 느낌입니다.
예보에도 없이 소나기가 오거나, 잠깐동안 비가 쏟아졌다가 개었다가를 반복하기도 하는,
변덕스러운 날들이 많았어요.
등원하기 전 창밖을 내다봤을 땐 쨍쨍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사이에 비가 쏟아지고 있어,
우산을 가지러 돌아가야 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날도 그랬어요.
분명 창문 열고 손까지 내밀어 빗방울이 떨어지는지 확인했는데,
비구름도 습한 기운도 전혀 없었는데,
1층에 내려와 보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던 거죠.
안 그래도 엄마가 늦잠을 자서 빠듯하게 등원하다가,
우산 가지러 다녀오느라 꼼짝없이 지각하게 되어 미안하고 속상했습니다.
냉방이 약해 찜통인 엘리베이터를 두 번 더 타게 한 것도요.
"엄마가 비 오는 걸 못 봐서 더운데 왔다갔다 하네. 미안해."
앞머리가 벌써 땀으로 축축한 송이가 덤덤한 얼굴로 말합니다.
"비가 투명하니까 그렇지."
어. 별말도 아닌데 괜히 코끝이 찡하더라구요.
이 아이가 내 편을 들어주는 구나.
준비성 없다고 타박하는 대신
괜찮다고 말해주는구나.
그냥 '괜찮다'는 말보다 더 정성스러운 토닥거림이 들어있는 말이네...
또한번 아이가 많이 컸다고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엄마는 할 일이 산더미인데 '그럼 나는 누구랑 노냐'며 바지가 벗겨지게 매달릴 땐.
아유. 아직 애기다. 다른 사람한테 공감도 못하고. 자기 생각만 하고.
얠 언제 사람 만드나, 까마득했는데요.
생각해보면 자주 덜렁거리고 깜빡거리는 엄마의 실수에
아이는 화낸 적이 없더라구요.
아이는, 엄마에게 늘 너그러웠더라구요.
그런데 송이한테 엄마는 그리 너그러운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요즘 들어 "엄마는 맨날 화만 내잖아."라는 말을 자주 해요.
(그 말 앞엔 항상 "엄마, 나 사랑해?"가 붙어요.
'날 사랑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맨날 화낼 수가 있어?'라는 뉘앙스로요. ㅎㅎ)
억울해서 "엄마가? 맨날까진 아니지 않아?" 반박해 보지만...
뭐... 하루에 한 번 정도는 큰소리가 나오는 것 같긴 하네요. ^^
오늘 아침에는 큰소리 안 냈으니까,
저녁에도 '화내지 않기' 한번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내친 김에 추석 연휴 동안 내내?
음... 내내는 힘들고, 퐁당퐁당 이틀에 한번씩만 화내는 걸 목표로 잡아볼까요. ^^
화가 올라올 땐, 아이가 내게 보여주었던 너그러움들을 열심히 떠올리면서 한번 더 참아보려구요.
"사랑해도 가끔 화를 낼 수는 있다"고 설명해주다 구차해졌던 순간도 떠올리구요.
그리고, 긴 연휴가 끝나면 혼자 맛있는 브런치집을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
이번 연휴도 육아팅입니다!
보름달에,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의 평안을 빌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