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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Sep 06. 2024

엄마, 나 세상을 보고 싶어!

아이와 함께라면 모든 게 모험, 모든 순간이 처음

아침공기가 많이 선선해졌어요.

영원할 것 같았던 여름도 이제 물러나려나봐요.

여름 내내 등하원길이 말도 안되게 더워

이 정도면 여름방학이 더 길어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네요.

(물론 그냥 하는 생각입니다. 방학은 열흘이면 충분하지요. 암!)


여름방학,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오랫동안 별러왔던 '아이와의 첫 비행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이랑 비행기 타는 건 일곱살 즈음은 돼야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많이 당겨졌네요.

계기가 있었어요.


이른 봄, 

창가의 햇볕 드는 자리에 앉아 아이와 블럭 쌓기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노곤노곤 잠이 쏟아지려 할 때 아이가 하는 말. 


"엄마, 나, 세상이 보고 싶어."


뜬금없이 툭 튀어나온 말에 웃음이 나면서도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나 궁금했죠.

(나중에 든 생각인데,  <인어공주>를 읽어줄 때 들었던, '막내 공주는 바다 밖 세상이 보고 싶었어요.' 같은 대사에서 착안한 말 같습니다...)


"그래? 세상은 어디 가면 볼 수 있는데?"

"(무심히 계속 블럭을 쌓으며) 비행기 타고 가야 돼."


빵 터져서 웃다가, 이 녀석 뭘 알고 하는 말인가? 생각이 많아지더라구요.

겨울방학 때 어린이집 친구들 중 꽤 여럿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거든요.

해외에 대한 개념은 없겠지만, 비행기 타고 여행 다녀왔다는 말은 부러울 수도 있겠다, 싶더라구요.

그때 결심했지요. 올해 여름방학엔 제주도라도 다녀오자. 비행기 한 번 태워주자!


처음 타는 비행기에서 아이는...


자더라구요.

창밖 구름도 보여주고 싶고, 

기내식은 없지만 카트 밀고 가는 승무원에게 음료 주문하는 재미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3박4일 뿐인 여행 꽉 채워 다녀오려고 이른 아침 비행기를 예약했더니 그만.


오는 비행기에선 깨어있긴 했지만,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무서워하지도 않고, 

뭘 특별히 둘러보지도 않고,

기대만큼 감흥이 없더라구요. 

우리 애 드디어 첫 비행기 태워준다, 부모만 괜히 들떴었나봐요. ^^


비행기보다 신나 한 건 어른 눈엔 더 소소해 보이는 첫 경험들이었어요.

차에 탄 채 여객선에 올라타거나, 당나귀를 타거나, 모터보트를 타는, 그런 경험들이요.

모터보트가 속력을 높이자 아이가 신이 나서,

"우리 이제 모험을 떠나는 거야?!" 하고 외쳤는데,

(이건 아마 만화 속에서 봤던 대사겠죠^^)

그 말에 저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하더라구요.


아이들은 처음 보거나 해보는 게 많아서 하루가 길고

어른들은 늘 하던 일상을 보내면서 하루가 짧아진다고 하는데요.

아이가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저도 그 기분을 같이 느낄 수 있으니,

조금 어려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두번째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요.


새로운 경험은 해외여행 같은 거창한 것만 있는 건 아니더라구요.

방학의 어느 날, 아이와 둘이 지하철을 타고 조금 멀리 갔어요.

환승도 해야 했는데, 생각해보니 아이는 지하철 환승이 처음이었더라구요.

목적지에 도착하자 아이가 하는 말. 


"엄마, 내가 여기까지 오다니 대단하지 않아?"


대단하다고 엄지를 세워주었죠.

오는 길엔 자꾸 안아달라고 보채긴 했지만요.  


송이는 낯선 환경이나 경험 앞에 주저하는 시간이 많았던 아이에요.

어린이집 선생님도, 다른 건 크게 걱정할 게 없는데,

새로운 걸 도전하는 걸 어려워하는 면이 있다고 하셨었구요.


그랬던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게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안심이고 기쁘고 설렙니다.


올 겨울엔 얼음에 구멍 뚫어 낚시하는 걸 해보고 싶대요.

별똥별 보고 소원 비는 것도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빌고 싶은 소원은, 썰매 타고 하늘을 나는 거래요. ^^ 산타처럼요!

그러곤 얼른 덧붙입니다. 혼자 타면 엄마랑 너무 멀어져서 무서우니까 다같이 타는 걸로!)

마을사람들 다 우리 집에 초대해서 파티도 하고 싶다네요...

(그럼 사람들 다 꼼짝 못 하고 서 있어야 돼. ^^)


어제는 하원 후 아이 친구 두 명과 엄마들을 초대해 집에서 같이 놀고 저녁도 먹었는데요.

친구 한 명은 누나까지 함께 왔으니,

우리 집 거실에 어린이 네 명이 북적대며 놀게 됐는데,

이게 또 저는 처음 보는 광경이고, 처음 하는 경험이었던 겁니다.


아이마다 입맛도 다르고 하고 싶은 놀이도 달라, 

이리저리 챙기느라 분주하고 정신 없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즐겁더라구요.

내향형이라 누가 집에 오거나 내가 누구 집에 가는 걸 가능한 한 피하는 편이었는데 말이죠.

아이 덕분에 제 세상도 조금 넓어지는 듯 합니다.


꼭 비행기 타고 가야 새 세상인가요?

늘 똑같던 일상을 조금만 벗어나면 우리 동네도 우리 집도 충분히 새로운 세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에도, 아주 사소한 장면이라도,

아이가 처음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끼는 순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아, 아이 말고 저에게도요.

또, 아주 조금이라도 어려지게요.^^


그럼, 이번 주말도 육아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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