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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Aug 23. 2024

내 꿈은 엄마를 사랑하는 거야

더 갖고 싶고 더 주고 싶은 욕심에 지칠 때

아이가 네살에서 다섯살이 되었던, 지난 겨울을 떠올려봅니다.


새해가 되면 다섯살이 된다고 했더니,

매일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눈을 비비며 "나 이제 다섯살이야?" 물었던 날들을요.


다섯살 되면 뭐가 좋냐고 물으면, "무거운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라구요.

엄마도 들 수 있다며 의기양양 들떠있던 얼굴이 참 귀여웠어요.

물론 지금도 제가 아이를 들고 다닙니다만. ^^


아이의 다섯살을 앞둔 제 마음은 늘 들떠 있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다섯살 1년 더 어린이집을 다니기로 했는데,

여섯살부턴 유치원으로 옮겨지,

그럼 다섯살부터 거기 다니던 아이들에 못 섞이고 겉도는 건 아닐지,

다른 엄마들 유치원 설명회 다닐 때 좀 따라다니지, 너무 게을렀다, 혼자 자책도 했구요.


이제 3년 후면 학교도 가야 하는데,

배정될 학교는 아이가 걸어다니기엔 너무 먼데,

그럼 이사를 가야 하는 건지, 간다면 또 어디로 가야 할지, 전세, 매매, 학군,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로 머릿속이 복잡했어요.

100일도 안 된 아기를 안고 결혼 6년 만에 마련한 작고 아늑한 '내 집'에 들어선 날,

이제 2년마다 이사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며 두 다리 뻗고 웃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송이는 집을 참 좋아하는 아이에요.

주말, 5분마다 '이제 뭐 하고 놀까!'를 외치는 아이에 지쳐 '우리 키즈까페 갈까?' 꼬시면,

집에서 노는 게 더 좋다며 벌러덩 드러누워 세상 행복한 웃음을 보이는 아이죠.

어쩌다 할머니 집에서 자고 오는 날엔, '앞으론 잠은 집에서 자자'고 근엄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고대하던 다섯살이 된 날,

늘어놓은 장난감들로 더 좁아진 거실에 누워 뒹굴거리던 송이가 물었어요.


"엄마, 우리 집을 어디서 샀어?"

"(집도 있다는 어떻게 알았지?) 음... 인터넷에서?"

"무겁지 않았어?"

"좀 무거웠어. ㅎㅎ (갑자기 떠오른 대출금...)"

"이제 내가 같이 들면 무겁지 않을 거야."

"(코끝이 찡) 그래. 덜 무거울 거야!"


그날 밤, 욕실 발판 위에 올라서서 거울을 보며 열심히 치카를 하던 송이가 또 물었어요.


"엄마, 우리 집을 왜 샀어?"

"엄마랑 송이랑 아빠랑 셋이 오래오래 살려고."

"왜?"

"그럼 행복할 것 같아서."

"왜 행복하게 살아?"

"그게 엄마 꿈이었거든."

"왜?"

"음... 어떻게 살고 싶다, 이런 게 꿈인데... (이대론 대화가 안 끝난다. 방향을 틀자!) 송이는 꿈 있어?"

"응!"

"(오?) 뭔데??"


"엄마를 사랑하는 거야."


(하고는 슬쩍 안긴다)


코끝이 찡해졌지만 울지 않으려 애쓰며, 안겨오는 아이를 꼭 안아줬습니다.


이제 다섯살이니 제대로 훈육할 거라며 아이에게 큰소리를 몇 번이나 낸 날이었어요.

올해는 3키로는 빼야겠다고, 결혼 10주년 기념 선물은 제대로 받아내겠다고,

시시껄렁한 목표를 세워보던 날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송이의 말을 듣고 새해 목표를 바꿨습니다.


송이를 사랑하는 걸로요.


한해의 3분의 2를 채워가고 있는 지금, 목표를 잘 이뤄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흙놀이터와 수영장, 상주하는 원어민교사가 있다는 유치원 이야기에 혹했다가, 지금보다 몇 배는 뛸 교육비에 헉하기도 하고,

늘기만 하는 아이 짐에 딱 방 한 칸만 더 있었으면, 부질없는 바램에 자주 헛헛해지는 요즘인데요.


그럴 땐 새해 첫날 아이가 들려줬던 그 말을 떠올려

허해지는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봅니다.


고백으로, 혹은 다짐으로도 들렸던 그 말을요.


그리고 저도 마음속으로 다시한번 다짐해보곤 합니다.


무엇보다도, 너를 사랑하겠다고.

사랑이 첫째인 걸 잊지 않겠다고.


한동안 노래부르듯 하루에도 몇번씩 사랑한다고 말하던 아이가, 이젠 그말을 잘 안해주네요.

오늘은 "엄마 미워!"를 서른번쯤 들었더니 마음이 너덜너덜합니다. 그래도 엄마는 안다? 송이가 엄마 사랑하는 거! 니가 아무리 못된 척 쎈척 해봤자, 너 '꿈이 엄마를 사랑하는 거'라고 했던 애야!


...물론 아이는 벌써 까맣게 잊었겠지요. ㅎㅎ

어쩌면 저도 머지않아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 꼭꼭 눌러 적어둡니다.

사춘기, 더 모질고 날카로운 말들로 제게 상처 주는 날이 오더라도, 아이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잊지 않는다면 조금은 덜 아프지 않을까요.


내일은 엄마 밉단 말을 몇번이나 듣게 될까요?

내일도, 미운 말은 훌훌 털고 예쁜 말은 잘 담아둘 수 있는 하루가 되길 바래봅니다.


이번 주말도 육아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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