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인 이유로 사람들이 하는 대화를 유심히 듣고, 인상 깊었던 표현들은 기록해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언제 쓰일지 모를 '대사'를 수집해두는 것인데요. 까페 옆 테이블, 썸 타는 중인 듯한 커플의 밀당 섞인 대화라던가, 지하철에서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아주머니의 리듬감 절묘한 넋두리 같은 걸 무심한 얼굴로 엿듣다가, 핸드폰 메모장을 열고 누가 볼새라 후다닥 적어두는 그 순간들을,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아이를 낳고 한동안은 그 소소한 '취미'를 즐길 기회가 없었어요. 집밖으로 나가 낯선 사람들 속에 섞여들 수 있는 시간을 완전히 빼앗겨 버렸으니까요. 울음과 옹알이 소리 밖에 낼 줄 모르는 아이와 단둘이 온종일 붙어있으면서, 제발 '어른'과 '대화다운 대화'를 하루 10분만이라도 해봤으면, 간절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말문이 트이더라도 아마 한참을, 아이는 내게 뭘 요구하거나 떼를 쓰고, 나는 허락하거나 제지하고, 공룡의 이름이라던가 만화 캐릭터의 대사 같은, 내겐 큰 의미 없는 말들만 오고 가지 않겠나 짐작했었어요.
그런데 왠걸, 두돌 지나 겨우 두 단어를 이은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던 아이가, 세돌 지날 무렵부터는 꽤나 깜찍하고 제법 아름다운 말들을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말'을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아이가 처음 쓰는 단어나 문장을 들려줄 때마다 많이 놀랐고, 신이 났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여쁜 말들은 지금이 시간이 지나면 들을 수 없게 되리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어요. 문장 구조가 엉성하고, 발음이 웃기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모두 재잘대지 않고는 못 베기는, 지금 이 나이에만 들을 수 있는 말들이란 걸요.
어릴 때만 볼 수 있는 귀여운 모습을 남겨두려고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장씩 아이의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듯 아이의 귀여운 말들도 남겨두고 싶어서, 그리고 다른 분들과도 나눠보고 싶어서, 여기 짧은 글들을 적어보려 합니다. 아마 다른 집 다섯 살 아이들도 내 아이와 비슷한 말들로, 또는 전혀 다른 말들로 매일 엄마 아빠를 놀래키고 웃기고 울리고 있을 거예요. 떼쓰는 말, 우기는 말, 꾀 부리는 말들로 우리를 지치게 할 때가 더 많긴 하지만요. 대체로 고단하고 때로는 지루한 육아의 시간 속에서도, 아주 가끔 보여줘서 더 귀하고 소중한,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의 예쁜 짓, 예쁜 말, 예쁜 마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간직할 수 있길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