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까페보다 쇼핑몰, 붕붕카보다 마트 카트가 좋은 다섯살
송이는 얼굴은 아빠 판박이라 아무리 들여다봐도 절 닮은 구석이 없어요.
아기 땐 다들 "아빠랑 똑같이 생겼다"며 감탄해, 서운한 기분이 들 정도였지요.
대신, 아빠보단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보니,
성격이나 행동, 취향 같은 것에서 제 모습을 보게 될 때가 많습니다.
송이 할머니는 송이 걸음걸이랑 말투가 엄마랑 똑같대요.
금요일 밤이면 "내일은 일어나서 집에서 좀 놀다가 밥 먹고 축구하러 갔다가 할머니 집에 가서..."
휴일 계획을 쫙 늘어놓고 잠자리에 드는 모습을 보며,
얘도 완전 J네! MBTI도 닮나? 신기해하곤 합니다.
날 닮은 모습이 모두 신통방통하고 즐겁기만 한 건 아니죠.
안 닮았으면, 하는 부분들은 꼭 빼먹지 않고 닮아가고 있으니까요.
그 중 하나가 '쇼핑'이에요.
다섯살 송이는 뭘 '산다'는 행위를 참 좋아합니다.
(뭘 그리 대단한 걸 사는 건 아니구요.
귀여운 캐릭터의 키즈 밴드나, 그 계절에만 볼 수 있는 꽃 한 송이처럼,
작고 예쁘고 쓸데없는 걸 사들고 집에 가는 길엔,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제가 뭘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으면, "사자, 사자!" 옆에서 부추기고,
마트나 다이소에 가면 바구니부터 야무지게 챙겨들고 걷는 뒷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이네요...
물건 자체보단, 물건을 사는 그 순간의 기분을 더 즐기는 것 같은데,
이대로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꽃가게 앞을 지나가면 꼭 꽃 한 송이만 사가자고 조르고,
집에 가서 꽃병에 꽂아놓으면 그 때부턴 관심 밖이에요.
너무너무 갖고 싶다고 슈렉 고양이 눈으로 애원해서 사줬다가
서랍 속에 잠들어있는 장난감들도 여럿이고요.
제가 양말이라도 한 켤레 새로 샀을 땐,
"엄마 양말 새로 샀어?" 금세 알아봐주고,
"예쁘다! 잘 샀다!" 친구처럼 같이 흥을 돋아주는 건 참 좋긴 해요.
너무 어이없으면서도 엄청나게 귀여워서 한참을 웃었던 적도 있고요.
"송이가 지금 이 장난감을 사면, 송이 좋아하는 포도는 살 수가 없다."
"이 그림책들을 다 사려면, 아빠랑 엄마가 더 많이 일해야 해서 송이랑 더 적게 놀아줘야 한다."
고심해서 설명해봐도, 아이는 아직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
(진지한 얘기만 시작하면 '"왜?" 지옥'에 빠집니다...)
아빠 카드는 화수분인 줄 알고, 500원짜리 몇 개 딸랑이는 저금통으로 뭐든 살 수 있는 줄 알아요.
"와, 송이 신발은 불도 나오네? 너무 멋지다!" 기분을 띄우는데,
금세 기분이 좋아진 아이가 하는 말은,
"엄만 불 나오는 신발 없어? 다음에 내가 사줄게!"
"(푸핫!) 송이 돈 있어?"
"그럼! 나 저금통에 돈 많잖아! 사줄게!"
"그래! 고마워!"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간 아이가 귀엽고도 우스워서 입으론 웃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눈가가 촉촉해지더라구요.
누가 나한테 뭘 사주겠다고 그렇게 기분좋게, 호쾌하게 말하는 일이 그리 흔치는 않잖아요. ㅎㅎ
아주 가끔 내가 아이가 되고 아이가 부모가 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때가 그랬나봐요.
전 어렸을 때 저희 집이 (실제보다 더) 가난하다고 느끼며 자랐어요.
엄마가 알뜰한 편이신데, 사소한 것도 아끼고 줄이려는 걸 보면서 자라 그랬던 걸까요.
그래서 뭘 사달라고 엄마 아빠에게 졸라본 적이 없어요.
또래 딸아이가 있는 아빠 친구 집에 갔다가 '미미의 집'이란 걸 처음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는데 -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 그걸 내가 가질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오빠는 딱딱 그 나이에 맞게, 게임기나 나이키 운동화 같은 걸 사달라 조르고,
꿀밤 한 번 맞고 나서 받아내곤 했는데 말이죠.
그러고 보면 경제관념도 (같은 환경이라도) 타고난 성향에 따라 달라지나봐요.
송이는 어릴 때의 저희 오빠처럼 해맑은 경제관을 가진 것 같네요.
곰곰 다시 생각해보니 이거, '걱정'보단 '안심'되는 일에 가까운 것 같아요.
지극히 아이다운 거니까요.
전 송이가 앞으로 뭘 하고 싶거나 갖고 싶을 때,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 하며 (어릴 때의 저처럼) 지레 포기하고 주눅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 그러면 다 커서 캐릭터 양말 같은 걸 사게 됩니...)
절제하는 건 가르치면 되니까요! (할 수 있겠죠? 해야 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마트보다는 놀이터에, 쇼핑몰보다는 숲이나 공원에 더 자주 데려가
실컷 뛰어놀게 하는 것 뿐인 것 같아요.
쇼핑은 어떻게 보면 가장 쉽게 만족을 얻는 방법이잖아요.
땀흘리며 재미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아이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야겠습니다.
내일은 문화센터 유아축구 교실에 가는 날이에요!
실컷 뛰어놀고 나면 또 마트에 가자고 (이게 마트 문화센텁니다...)
카트에 타겠다고 (이제 무게 초과에요...) 조르겠지만,
내일은 아이가 애교를 부리든 삐져버리든 굴하지 않고
후딱 데리고 집에 와보도록 하겠습니다.
할 수 있겠죠?
이번 주말도, 육아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