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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Oct 17. 2016

가난했던 김광석, 가난한 이들을 위하다

이루지 못한 사랑과 꿈들을 위하여

#3. 가난했던 김광석, 가난한 이들을 위하다


멀지 않은 어느 날 혼자라고 느낄 때 

외롭다고 느낄 때 위로받고 싶어질 때

 그땐 알게 될 거야 너에게는 내가 필요한 거야

- <내가 필요한 거야> 중에서


1996년 1월 6일, 김광석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국 모던포크의 기둥이자 라이브 공연을 정착시킨 장본인이다. 대중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온몸으로 보여준 그였기에 사람들은 더욱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김광석은 올곧은 목소리 하나만으로 사람들을 웃고 울게 했다. 노래에 담은 진정성이야말로 삶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그래서 김광석이 부른 노래들은 끊임없이 다시 들리고 불리고 있다. 노래들이 지속적으로 살아 숨 쉬면서 영원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모두 아름다울 순 없다. 노래하는 수많은 별들 중 김광석은 지극히 아름다웠기에, 결국 노래를 위해 산화(散華)했다.



다음날 신문은 김광석의 자살 소식을 다뤘다. 덧붙여 그의 음악성을 기리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단호하고 힘찬 울림의 목소리를 지닌 90년대 한국 모던포크의 대표적인 존재”, “포크록의 기수”, “독특한 음색과 서정성 짙은 노래로 우리 대중문화를 기름지게 가꾸어온 문화전령사”, “포크음악 계보의 맨끝에 서있는 그”, “일상에서 느끼는 단상을 풍자와 해학성 있는 노래말로 표현”. 강헌 대중음악평론가는 김광석을 “70년대 김민기로부터 시작된 모던 포크의 적자”라고 표현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광석, 모던 포크를 계승하다


김광석은 가난했다. 그리고 외로웠고 슬펐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기에 가난했다. <이젠 떠나가세요>에선 “이 세상에 일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우리들의 사랑도 멀어져만 가고 / 난 그날에 추억을 잊지 못하고 부질없는 눈물을 흘려야했지만 / 이젠 떠나가세요 그대의 사랑을 내가 찾아 갈 수 없는 곳으로”라고 노래한다. 떠나간 사랑을 잊지 못해 김광석은 마음이 가난했던 것이다. 떠나간 것은 사랑 혹은 잃어버린 꿈들일 수 있다.


김광석은 방황하며 불행했다. <불행아>에선 “깊고 맑고 파란 무언가를 찾아 / 떠돌이 품팔이 마냥 / 친구 하나 찾아와 주지 않는 이곳에 별을 보며 울먹이네”라고 노래했다. 이 노래의 후렴구인 “그리운 부모형제 다정한 옛 친구 /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 홀로 가슴 태우다 흙 속으로 묻혀갈 나의 인생아”는 김광석 자신을 암시하는 듯하다. 물론 본인이 만든 노래가 아니지만 계속해서 부르다가 노래와 동화되었을지 모른다. <불행아>는 원래 김의철의 <저 하늘의 구름따라>)이었다.


또한 김광석은 꿈의 방향성이 투명하지 못해서 가난했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진정 원했던 길인지, 마땅히 가야 하는 길인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힘들었다. 특히 자신이 원했던 만큼의 음악적 성공을 이루지 못했기에 가난했다. 스스로의 만족감 말이다. 그래서 더욱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할 줄 알았다. 가난하다는 것은 무언가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이고, 가난하기 때문에 더욱 사랑해야 한다. 


김광석은 공연장에 들어올 때 언제나 통기타 한 대와 하모니카만 가져왔다. 동시에 김광석은 관객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희망을 가득 품고 있었다. 작은 초 하나, 심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김광석의 눈빛은 반짝거리며 기타 줄을 튕기기 시작한다. 촛불이 방안을 온통 밝게 비춘 것처럼 그가 사람의 은은한 온기를 뿜으며 노래하기 시작한다.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가 불리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불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온기로 전해지길 바랐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화려한 전자음보다는 구성진 하모니카와 명징한 기타선율, 그리고 올곧은 목소리만으로 김광석은 침잠해 있는 대중들의 감성을 깨웠다. 소통의 방식 역시 직선이다. 김광석은 에둘러 가지 않았다. 김광석은 대중들과 직접 호흡하기 위해 소극장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김광석은 정식 앨범에 녹음된 목소리와 흡사할 정도로 라이브 공연을 제일 잘하는 가수로 손꼽힌다. 김광석의 행보는 후배 가수들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교훈이다. 김광석의 라이브 공연 실황은 나중에 테이프로 담긴다. ‘노래이야기’와 ‘인생이야기’ 앨범에 담긴 김광석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머물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 노래


소설가 양귀자는 가장 좋은 소설은 독자가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하고 쉬운 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좋은 노래 역시 마찬가지다. 10대에서부터 할머니까지 아우를 수 있는 노래는 댄스음악이나, 힙합, 록이라기보단 포크음악이다. 통기타 하나로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가 바로 김광석 노래들이다. 


음악적 완성도와 별개로 김광석의 노래들을 평가할 때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라 부르기 쉽다는 점이다. 포크송들이 가진 큰 장점 중에 하나가 바로 누구나 편하게 흥얼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힙합이나, 랩, 록 음악처럼 음악 자체가 가진 기교로 인해 대중과 교감하기 쉽지 않은 장르가 있다. 댄스음악은 클럽이나 청중의 시각을 즐겁게 해줄 군무가 필요한 공연장에 안성맞춤이다. CCM은 종교적 틀 때문에 듣는 이들에 제약이 있다. 이 때문에 포크음악은 그 빈틈을 차지한다. 


김광석은 화려한 음악이 유행하던 시절, 오히려 단순화의 길을 선택했다. 반주나 편곡에선 지극히 사운드를 아꼈다.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까. 사람의 목소리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악기이다. 그 악기도 주인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다. 그런 면에서 김광석은 가장 훌륭한 악기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악기는 하루 종일 울어도 그 설움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대학 시절, 내 작은 옥탑방에서 작은 노래 모임을 만들어 몇 달 동안 노래 부르고 연주했던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보니 작고 보잘것없지만 매우 소중한 추억이다. 이때 김광석 노래는 단골이어서 노래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김광석 노래 테이프가 닳고 닳아 다 외울 정도로 노래를 듣고 불렀다. 마치 김광석이 우리 옆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우리는 이루지 못한 사랑과 꿈들을 노래에 흘려보냈다. 세월도 함께 흘렀다. 허영만의 『고독한 기타맨』에 가장 멋진 연주란 본인을 위한 것이라는 표현이 있다. 아주 나중에야 노래도 결국 본인을 위해 부른다는 걸 알게 됐다. 김광석 역시 그랬을 것이다. 


김광석이 부르는 노래들은 보편적 감수성을 자아낸다. 동시에 그의 노래는 좀 더 그늘진 곳을 향하며 어루만진다. 그래서 만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부유층이나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보다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이와 삶의 끝에서 울고 있는 어떤 이에게 더 절실하게 와 닿는다. 노래들은 정신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말을 건넨다. 회한을 이야기 하고픈 사람들의 이야기들, 바로 그 굴곡을 김광석은 노래했다. 자신들이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매시간이 노래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였고, 운율이 있는 시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문학평론가 고영직은 김광석에 대해 “가난을 아는 자의 사랑 노래”라고 표현했다. 그는 김광석이 사랑을 노래함에도 다른 사랑 노래들과 다른 이유는 “‘가난’”에 대한 성찰이 배음으로 깔려 있다는 점”이라고 적은 바 있다. 아울러 고영직 문학평론가는 “가난에 대한 김광석의 성찰은 어쩌면 생득적인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김광석이 살아온 삶의 흔적이 그러한 점을 더욱 잘 알려준다. 김광석의 노래가 그늘진 곳을 향하는 까닭이다. 


따라 부르기 쉬운 김광석의 노래들


김광석은 대봉동 번개전업사에서 1964년 1월 22일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 김광석은 현악반에서 바이올린과 색소폰, 오보에,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를 섭렵하고 악보 보는 법을 배운다. 1982년, 김광석은 명지대 경영학과에 입학한다. 그 시절 많은 대학생들이 그러했듯, 학업에 열중하기보다는 나중에 동물원을 같이하게 될 김창기, 유준열 등과 어울려 다니며 인생을 학습한다. 노래와 시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던 시점이다. 


김광석은 1984년 김민기 씨의 뮤지컬 「개똥이」 앨범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후 민중가요 노래패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와도 인연을 맺는다. 그는 남자 목소리의 일원을 담당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래 인생의 길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1988년, 동물원 1집에서 김광석은 <거리에서>를 부른다. 1989년에는 <너에게>, <슬픈 우연> 등이 수록된 솔로앨범 1집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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