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 Apr 03. 2017

고독은 다른 이름을 하고 찾아왔다.



 요즘따라 유난히 그랬다. 뭘 하든 재미가 없고 따분했다. 책을 사러 들린 서점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몇 권의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해도,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읽기 싫다 라는 것 보단 흥미롭지가 않았다. 영화나 봐야지, 싶어 줄거리를 읽고 추천 리스트를 뒤져봐도, 마찬가지였다. 눈길을 끄는 게 없었다.


 사람들과 만나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한참을 웃고 나도 집에 돌아오면 왠지 모를 허전함이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큰 맘 먹고 산 물건이 도착해도 그 때 뿐이었다. 마음 어딘가에 작은 구멍이 하나 있는 것 처럼, 끊임없이 공기를 채워넣어도 부풀지 않는 풍선마냥 마음이 시들시들했다. 원래 사는 게 이렇게 시시했던가, 그런 생각만 들었다.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아무 생각 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47분에 도착하는 지하철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계단을 오르 내리고, 점심 때를 기다려 밥을 먹고 퇴근을 하면 또 그 길을 바삐 걸어 집으로 돌아 오고. 겨우 겨우 5일을 그렇게 버티고 나면 방전된 배터리 마냥 뻗어서 침대에서 하루종일 잠으로 충전을 하는 삶의 반복이었다. 그나마도 주말을 바라보며 버텼건만 이제는 주말도 더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뭔가를 하고 싶어서 기다려진다던가, 하는 것 없이 그저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모든게 감흥이 없었다. 사람이건 노래건 드라마건 그저 스쳐지나가기만 하는 것 같았다. 



꼭 어디 하나가 고장나 버린 것 같았다. 
어쩌면 채워지지 않는 이건 마음의 허기인가 싶기도 했다. 



늘 이런 것은 아니었지만, 1년 전부터 이런 증상이 문득문득 찾아왔다. 이상한 상실감과 허무함이 나를 휩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름대로 아둥바둥 열심히 살아온 삶이, 하루 아침에 텅 비어버린 기분. 끝없이 고민했다. 도대체 왜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고, 지금 이 자리에 멈춰서 버렸을까, 하고.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큰 꿈을 꾼 것도 아니었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 더 잘 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감정조차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소박한 꿈이나 감정, 일상을 조금씩 갉아먹어 버린 모양이었다. 언젠가는 책을 내보고 싶다는 생각, 드라마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들과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며칠을 편히 쉬어도 될 여유마저 일상의 피곤함에 짓눌려 우선순위에서 멀어졌다.



 그 이유는, 먼 곳에 있지 않았던거 같다.
하나는 나의 욕심으로 쫓아버린 여유였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한다는 강박으로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과 불만이 가득했다. 늘 켜져있는 노트북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마치 모든 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짤막한 시간에도 계속 해서 새로운 정보를 찾고, 유용할 것 같은 정보는 스크랩을 하고 그렇게 나는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굴었다. 정작 누구도 나에게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는데 말이다. 조금이라도 더 알차게 주말을 보내야한다는 욕심이 오히려 내 숨통을 죄어 오고 있었다. 몸은 쉬고 있어도 머리는 끝없이 몇 만 가지의 생각과 계산을 쏟아내며 이리저리 재고 있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과부하가 걸린 것 마냥 모든 것에 무감각해졌고 반응하지 않기 시작했다.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나에게 남은 건 스트레스 해소라는 명목으로 주문해 놓은 물건들과 음식들 밖에 없었다. 또 그러다 보면 물질적인 걸 누리기 위해 내가 돈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어 또 기분이 묘해졌다. 그러면서 불현듯 내 인생에 대한 미안함이 몰려오기도 했다. 고작 10년, 20년만 살아갈 게 아닌데 이렇게 쫓기듯 살다가 목표를 잃은 사람처럼 의미없는 행위를 반복해 갈 생각을 하니 우울했다. 


이런 상태로 남은 70년 가까이 되는 삶을 살아갈 생각을 하니 내 삶에 미안해 졌다.



그리고 또 하나, 
이 허기는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에 쫓기듯 살다가 제풀에 지쳐버린 건, 어쩌면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온기가 부족해서 축 늘어져버린 게 아닐까, 하고. 아마도, 70% 정도는 맞는 것 같다. 난 외로움을 타지 않는 무덤덤한 성격이라고 단정짓고 있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늘 내 자신을 목적이 있어야만 움직이는 목적지향형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누군가와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보고 놀랐을 때 비로소 외로움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타지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그야말로 나에게는 직장과 월급 이라는 것 외엔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모든 것(친한 친구들, 가족, 내멋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을 잃었다. 지금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 역시도 근본적인 결핍을 채워주진 못했던 모양이다. 끝없는 삶을 홀로 지탱해야할 것 같은 그 두려움이 마음 속에 있었다는 걸, 이제 깨달았다. 


 모든 이들이 언젠가는 익숙함에서 벗어나 생경함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 변화가 급진적일 수도 있지만, 아주 서서히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그 변화에 갈팡질팡하며 길을 찾고 있는 단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고독을 받아들여 또 다른 내 모습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고, 계속 헤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내가 이러한 고독을 극복해내고 멋진 사회인이 되리라고, 그렇게 단언 하지 못하겠다. 여전히 나는 불완전한 어른이니까. 여전히 가끔씩 찾아오는 무기력함은 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원인은 알아 냈으니 그걸로 반은 성공이 아닐까, 하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