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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Nov 16. 2016

아빠의 한숨 소리를 이해하게 된
어떤 날


아빠는 늘 말이 없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괜히 말을 걸어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아주 가끔 세상 팍팍한 이야기로 가득한 뉴스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찰 뿐이었다. 그저 아빠는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구나, 그냥 무뚝뚝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뉴스를 보며 짧게 뱉어낸 툴툴거리는 말들이 사실은 아빠의 마음 속에 담겨있던 많은 힘듦과 괴로움을 대변해주는 응어리와도 같은 것임을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누가 그랬던가, 모든 일은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고. 이 말 역시 어렸을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왜 역지사지를 몰라? 그 사람 입장이 되서 생각해보면 쉬운 일이잖아, 예전에 나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온전히 그것을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정말 동등한 위치에 섰을 때,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어째서 아빠는 그렇게 말이 없는지. 왜 말을 하지 않고 늘 듣기 싫은 긴 한숨을 그렇게 내쉬었는지.


사회에 나와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가족, 친구가 아닌 타인들에게 내 의견을 다른 어떤 의도의 개입없이 그대로 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베풀 무한한 친절을 기대하며, 혹은 그들이 나에게 보여줄 동의와 긍정의 눈빛을 기대하며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전한다면 아마 내 말의 90%는 공중에 흩어져 사라지거나, 그들에게 나쁜 인상만을 남기며 그나마의 10%조차 이해받지 못하고 없어질 것이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이, 아마 아빠의 한숨을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속이 답답하고 마음에 울컥하고 차오르는 응어리들이 겹겹이 쌓여서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짓눌러도, 누군가의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대신 긴 한숨으로 그 말을 대신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냥 좀 그래요


누군가가 한숨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있느냐 물어도 내 마음을 쥐어짜내서 할 수 있는 말은 저 한 마디 밖에 없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 머릿 속에선 아빠의 한숨이 떠올랐다.


사실은 누구보다 힘든 하루를 보냈을 텐데 너무 많은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그 중 어떤 것을 먼저 이야기 해야 할 지 몰랐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심하게 말하기 싫으면 됐어, 하고 넘겨버렸던 과거의 대화들이 무심코 떠올라 괴로워졌다. 가끔은 그런 한숨소리를 들을때면 왜 제대로 이야길 안하고 한숨만 쉬냐며 핀잔을 주었던 내 자신이 참 못난 딸이었구나, 싶어져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면서도 슬픈 것은 이제는 누군가가 내쉬는 한숨의 의미를 알면서도 내 시름이 먼저라 모르는 척 넘겨버릴 나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 그래서 조금 슬퍼졌다.


어쩌다가 나는 누균가에게 한숨의 이유조차 묻기 싫은 

내 코가 석자인 삶을 살아가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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