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서평
생각도 하지 못했던 코로나라는 역병(!)이 전 세계에 창궐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많은 이들의 관심사는 코로나와 관련된 것들을 제외한다면 단연 집이 아닐까 싶다.
나만 해도 그랬다. 운이 좋게도 올해 동생과 함께 살던 1.5룸의 좁은 집을 벗어나 원하던 조건보다 훨씬 좋은 쓰리룸으로 이사를 했었는데, 이사를 하고 몇 달이 지날 동안 동생과 가장 많이 한 이야기가 "올해 이사하길 진~짜 잘했다."였다. 이 말은 밥을 먹다가도 아주 뜬금없이 툭툭 튀어나왔고, 상황이 점점 악화되면서 "예전 집에 계속 살았으면 나가지도 못 하고 답답해서 진짜 힘들었을 것 같다."로 변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 안 구석구석의 아쉬운 부분이나 필요한 가구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는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집을 아늑하게 꾸미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다른 이야기지만, 집 꾸미기 앱의 대표주자 격인 오늘의 집의 경우 유저 수가 2배 이상 증가함은 물론이고 역대 최대 사용자수를 기록했다고 하니, 정말 말해 뭐해, 라는 말이 이런 데 쓰는 말인가 싶다.
주거 환경에 대해 높아진 관심만큼 올해는 유독 서점에서도 '주거', '집' 등을 주제로 한 에세이류가 눈에 띄었는데, 이번에 읽은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역시 주거 에세이다. 하지만 단순한 주거 에세이라기엔 '비혼 주의', '방송작가', '여성', '페미니스트', '1인 2묘' , '1인 가구', '미니멀리즘'이라는 키워드까지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라는 아주 직관적이고 다소 저돌적인 제목에 이끌려 책을 펼쳐 들었는데, 30대의 비혼을 꿈꾸는(고민 중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에세이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 책은 자신의 힘듦에 대한 감정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에세이들이 아니라 작가가 겪고 처했었던 진짜 현실에 어떻게 대응했고, 해결을 했는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나에겐 많은 도움이 됐다.
포항에서 올라와 긴 세월을 서울에서 월세를 전전하던, 굳이 분류를 하자면 비정규직의 방송작가가 월세집에서 취향의 인테리어를 실현하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대신 내 집을 사겠다고 마음먹는 계기는 정말 한 순간이었는데, 이 부분이 마음에 남았다. 일을 위해 서올로 올라온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도 이리저리 월세를 전전하면서도 그 공간만큼은 취향에 맞추어 꾸미는 것에 작은 행복을 느끼고 있는데, 최근 주변의 몇몇 친구들이 서울 외곽과 경기도에 집을 마련하는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던 차였다.
아무리 대출까지 영끌해서 산다지만 어떻게?라고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작가는 시원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임시의 삶"을 끝내고 자신만의 집, 자신만의 시간을 얻어낸 이야기까지. 위에서도 언급했듯 정말로 단순한 주거 에세이는 아니다. 책을 읽으며 재테크, 자산으로의 집의 기능뿐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방식까지 변화시키는 것이 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찌 보면 내가 그리고 있는 삶의 모습을 먼저 부딪혀 본 작가가 해주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해서, 나에게는 에세이가 아니라 마치 "실용서"같은 느낌이 들기도.
책 내용 가운데 몇 가지 와닿았던 구절들이 있어, 몇 가지를 옮겨 보았다.
내 집을 마련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당연히 목돈을 빨리 모으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빨리 깨닫는 게 중요하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여성이 주변에 있다면 내 집으로 향하는 길이 더 이상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친구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된다. 모 영어 학원 광고 중에 이런 카피가 있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 〈야 너두 할 수 있어〉
내가 집과 직장에서 고립을 겪고 나니, 내 고충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게 됐다. 고립은 죽음과 닮았구나. ‘인생은 혼자’라는 쉽고 달콤한 말이 사실은 아주 위험한 독이구나. 하지만 그걸 알아차렸을 때 내 인간관계는 이미 점선에서 점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 〈나 오늘 한 마디도 안 했네?〉
내 집은 평당 천만 원 정도다. 드레스룸은 3평 정도 되니 3천만 원의 가격이 된다. 그만한 가치의 공간을 그냥 버려둔다고? 돈으로 계산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이 집을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방 하나를 옷에 내주다니. 나는 그동안 월세도 안 내는 옷에 얼마나 많은 공간을 양보하며 살아왔는가. - <집의 기쁨과 슬픔>
책을 읽으며 나 역시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역시도 내 집 마련 레이스의 출발선 앞에 서야 할 시간이 온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과 함께 단순히 집을 넓히기 위한 고군분투가 아니라 내 삶을 더욱 윤택하고 풍요로운 삶으로 만들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해 고민을 해야겠다는 생각,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꾸역꾸역 사놓고 쓰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방의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까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당장 컴퓨터를 끄고 내 자산 현황을 확인한 후, 내 집 마련 레이스에 필요한 것들을 계산해 볼 생각이다. 그녀가 그러했듯, "야 나두 할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