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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Aug 02. 2022

좁아지는 나의 세계에 관하여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 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어디선가 "사람은 평균 33세부터 새로운 노래를 듣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우연히 이 글을 접했을 때 나는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허벅지를 철썩 내려쳤다.

"헐. 맞아. 진짜!!!!"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그 기사에서 말한 딱 서른셋이었고, 노래를 "일부러 찾아서" 듣는 행위를 하지 않은지 꽤 되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의 나는 나름대로 헤비 리스너라고 자부했었다.

지금은 단종되어버린 용량 180기가짜리의 아이팟 클래식을 2개나 가지고 있었고, 그 안에는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의 전 앨범이 그득그득 담겨있었다.


거기에 외장하드 1 테라를 가득 채우고 있던 음악들까지. 당시에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지금만큼 활성화되지 않았었던 시절이었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듣다 보면 다른 음악을 찾아 듣다가 플레이리스트가 뒤죽박죽 되어버리거나 사라지는 일들도 흔하게 있었기 때문에 저장해서 듣는 방식을 선호했었다. 


그리고 트랙리스트 순서대로, 앨범 순서대로 듣다 보면 앨범의 기승전결이 느껴지는 기분이라 꼭 그 순서에 맞춰 들었고, 그래서 한 때는 CD도 야무지게 모았다. 


혹시나 모르는 이들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찾아온 아이팟 클래식의 영상. 단종과 고장으로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아이팟..


인디부터 K팝의 대중음악은 물론이고, J팝도 전공 덕에 꽤나 들었고 한 때는 뉴에이지에 꽂히는가 하면 시부야케이나 시티팝에 열성적인 시기도 있었다. 그 덕에 친구들에게는 음악을 추천해달라는 이야기도 제법 들었기 때문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아이돌 계의 대모로 불릴 만큼 모든 아이돌 전 앨범 수록곡을 알고 있던 나는 이제는 포인트 안무로 유명해진 노래들만 겨우 알고, 좋아하는 아이돌이 생기면 그것만 주구장창 듣고 있다.


르세라핌이나 아이브, 에스파의 신곡도 동생이 옆에서 주입식 교육을 하지 않았다면 찾아 듣지 않을 만큼 내가 먼저 무언가를 찾아 듣는 행위가 낯설어졌다.


그게 왜?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웬만한 중소 아이돌도 다 꿰고 있을 만큼, 아이돌들의 숨은 명곡 찾아 듣기에 진심이었던 내가 하물며 4세대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걸그룹들의 신곡에도 반응하지 않는 건… 스스로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영상 중 썸네일이 예쁜 플레이리스트를 골라 듣거나, 누군가가 큐레이션 해놓은 ‘일할 때 듣기 좋은 노동요 플레이리스트’ 등을 골라 적당히 틀어둔다. 

물론 그렇게 틀어둔 곡들은 누구의 곡인지, 어떤 가사인지, 심지어는 어떤 멜로디 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흘려보내는 때도 있다. 정말 가끔 가다 귀에 맴도는 곡들 정도만 기억해 뒀다가 찾아 듣게 되었다. 


음악은 나이와 함께 좁아져버린 나의 세계에 대한 가장 큰 예시 중 하나지만,
그 외에도 나는 모든 일에 무감해져 가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어릴 적에는 모든 게 다 너무도 새로운 경험이어서 즐거웠다. 마음에 와닿는 음악 하나를 발견하면, 그 가사들을 하루 온종일 곱씹어보고 그 가사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보고 그러다 그 아티스트의 다른 곡과 앨범으로 확장해 살펴보고, 그러다 보면 또다시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의 되풀이 속에 내 취향을 찾으며 내 취향의 세계는 견고해졌다.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취향의 세계를 아주 잠깐 기웃거려 보다가
 "오, 좋네" 하는 감탄사와 함께  끝낼 뿐이다.
결국 내 세계로 편입되지 못한 그것들은 아주 찰나의 순간 맴돌다 사라진다.


어쩌면 이러한 과정의 반복은 내 삶의 형태도 비슷하게 재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것들을 꾸역꾸역 구겨 담는 속에서 울퉁불퉁하지만 재미난 모양으로 만들어졌던 내 삶에서,
대충 어딘가에 생겨버린 빈 구멍을 메꾸는 것 같은 행위를 통해 여느 누구와 같은 동그란, 혹은 네모난 형태의 삶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그 작은 것들을 쌓아 올려가던 열정 넘치던 나는 어느새 순간순간의 자극에만 잠깐 반응하고 말았고, 그로 인해 점차 좁아지는 나의 세계를 느끼고 있다. 


아마 그 기저에는 내가 열정을 갖고 하던 것들이 현실적으로 내 스펙을 높여주거나, 어디엔가는 써먹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들, 말하자면 가성비를 따지는 행위가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전에는 그저 내가 좋고 재밌으면 그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알리고 싶어서 영상 편집과 자막을 넣는 방법을 알아서 찾아보고, 그것들을 올릴 블로그를 만들고 소개하는 글들을 시간 들여 적는 행위들, 정말 좋아서 하던 그것들이 모여 내 세계를 넓혀주곤 했는데 이제는 무엇을 하려 해도 시간에 쫓겨, 그래서 이걸 하면 뭐가 좋아?부터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단순히 좋아해서 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시간만 잡아먹는 것으로 치부했는 그 행위들이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 주었는지, 또 나라는 사람의 세계를 얼마나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는지를 이제야 깨닫고 있다.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런 것들을 재고 따지지 않고, 시간이 얼마가 걸리는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내가 좋아하니까 하는 일들을 찾아서, 다시금 내 하루하루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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