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흥미롭게 본 적 있다. 비밀을 간직한 채 사랑하는 이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은 미화되었고, 음악과 함께 어울려 예술작품을 만들어냈다.
예술가가 생전에 주목받지 못하면 다음 세대에 유명해질 수도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피카소가 그랬던 것처럼,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인정받고 싶다는 절규는 대부분 작가나 예술가들의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이십 대 중반, 밀라노에서 유학 중이던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방문한 적이 있다. 덕분에 밀라노뿐만 아니라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까지 이탈리아의 유명한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유럽 문화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왜 그토록 많은 예술 작품들이 탄생했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장소 중 하나는 피렌체에 위치한 우피치 미술관이다. 입구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 사이에 서서 순서를 기다렸고, 미술관에 들어선 순간 감탄사를 내뱉느라 바빴다. 책이나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명화들을 눈앞에 본 순간 '아우라'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와, 저렇게 멋진 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니... 여긴 축복받은 도시야.'
처음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이 부러웠고, 거리 곳곳에서 예술적인 풍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쨌든 아우라까진 아니더라도, 학부 때는 남다른 기운으로 선배나 후배들을 제압하곤 했다. 복수 전공을 선택해서 4년 내내 수업 듣느라 선후배들과 어울릴 시간이 별로 없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필요한 말만 하는 편이라 동기들 뿐만 아니라 선배들도 내게 말 붙이기 어려워했다.
"너랑 친해지고 싶은데, 너한테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왠지 혼날 것 같아."
체육 대회 때 나의 손목을 깔아뭉갠(?) 대가로 한 학기 내내 밥을 사주던 선배가 어느 날,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요? 저 알고 보면 겁도 많고 따뜻한 사람인데..."
하지만 그 말을 믿어준 사람은 나의 절친들 뿐이었다. 눈에 띄게 유별난 것은 아니지만, 조용히 생각에 빠져 지내면서도 언제 훅 치고 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는 존재. 그게 바로 나였다.
*우피치 미술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피렌체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원래 메디치가에 의해 행정관청으로 건립되었으나, 프란체스코 메디치에 의해 미술관이 되었으며, 이후 엄청난 규모의 작품들이 수집되었다. (출처: 네이버 통합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