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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제작소 Mar 29. 2021

쓸쓸한 삶 속에서 발견된 찬란한 작품

존 말루프 감독의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연출한 존 말루프는 동네 벼룩시장 경매에서 수십만장의 필름이 들어있는 상자를 단돈 400달러가 채 않되는 돈으로 낙찰받는다. 그가 집필중이던 역사책에 쓸 시카고의 옛날 사진을 위해 낙찰 받은 물건이지만 사진을 스캔하면서 그가 원하던 사진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 사진의 촬영자였던 비비안 마이어를 구글로 검색해보지만 전혀 정보가 없다. 스캔했던 사진들을 사진 공유 사이트에 올려 좋은 반응들을 확인하고는 전시회를 추진한다. 그리고 그 전시는 흥행에 흥행을 거듭하며 전세계 순회전시까지 이어진다. 


여기까지는 천재적인 작가의 성공담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주인공인 작가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존 말루프 감독이 낙찰 받은 필름은 고인의 유품으로 단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사진작품이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어떤 삶을 살다 갔길래 이 많은 사진과 그녀의 자잘한 유품들을 남기고 떠났는가를 추적한다.


분명한 작가의식과 주제의식을 가지고서 촬영된 사진의 예술적 평가를 작가론과 함께 작품론으로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제 후자의 질문이었던 ‘왜 그녀는 이토록 많은 사진작품을 전혀 발표하지 않고 생을 마감했느냐’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몇 가지의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그 질문은 감독이 직접적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진행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기저에 깔린 것으로, 스스로 그 질문을 던지지 않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질문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몇 개의 질문은 직접적으로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기저에 깔린 묵직한 질문들은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하고 ‘비비안 마이어’의 생애를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깔끔하게 풀리지 않고 과제로 남는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녀의 작품 속에서 정작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현상을 만난다.

1926년 미국 뉴욕 출신으로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보모로 생업을 삼고 사진을 찍으면서 미혼으로 평생 외롭고 가난하게 살다가 2009년 시카고에서 생을 마감한 비비안 마이어의 삶이 그녀의 작품과 함께 펼쳐진다. 신문 스크랩과 영수증, 기차표와 메모 등 그녀의 유품들을 정리하며 단서들을 이어 붙이며 비비안 마이어의 생을 따라간다. 


그 여정 속에서 ‘왜 그녀는 이토록 많은 사진들을 남겼는가’도 궁금하지만, ‘왜 그녀는 이토록 많은 사진들을 전혀 발표하지 않았던가’에 무게감이 실린다. 분명히 감독은 전자보다는 후자의 의문을 더 의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자의 의문은 작가의식에 관한 고찰이다. 그녀의 삶을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는 짧거나 길거나 그녀가 길렀던 아이들과 그녀를 기억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이다. 그들의 기억에 담겨있던 비비안 마이어는 친절하고 다정하거나, 괴팍하고 이기적이며, 심술궂은 사람이었고, 따뜻하거나 어두운 사람이며 즐거운 사람, 염세적인 사람 등으로 평가가 갈린다. 그녀의 삶 속에서 독특한 이력을 토대로 작품 속에 담긴 예술적 의미들을 더듬는다. 


이는 분명한 작가의식과 주제의식을 가지고서 촬영된 사진의 예술적 평가를 작가론과 함께 작품론으로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제 후자의 질문이었던 ‘왜 그녀는 이토록 많은 사진작품을 전혀 발표하지 않고 생을 마감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질문은 작품으로 인한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느냐로 이어지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진행형으로 남는다. 


영화는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라질뻔했던 한 명의 천재적인(?) 작가를 발견한 과정과 그녀의 삶을 추적하는 것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그녀가 잠시 살기도 했고 먼 친척이 있는 프랑스의 시골 사진관에서 그녀의 사진을 관광상품으로 팔고 싶어했음을 확인한 것이 전부다. 이것으로 온전히 그녀가 작품 발표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평가하기엔 미흡하다. 이것도 가정일뿐이지만 그녀는 작품을 발표하고 유명한 작가로 남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녀의 작품 속에서 정작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현상을 만난다. 두 번째 의문이 확실하게 풀리지 않고서, 그녀의 삶에 대한 스토리와 알려지지 않은 삶을 살다간 신비로움이 더해지면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그녀는 만족하고 있는가. 


지금 그녀의 작품으로 인해 받는 보상은 온전히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감독도 이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부채의식을 어떻게든 덜고 싶었음을 읽을 수 있다.


흥미롭고 감동적인 영화가 끝나고(2013년) 난 이후 벌어졌던 저작권 수익 상속에 관한 법적인 진행(2018년)을 보면서 감독도 풀지 못했던 현실의 숙제가 남아서 진행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그녀의 삶에 대한 감동과 함께 쓸쓸함과 서글픔이 밀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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