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돌이켜보면 퍼스트 무버는 아닌 듯 하다. 퍼스트 무버들이 가진 한 가지 강력한 특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실행력' 이다.
-나도 생각만 하기 보다는 일단 실행하는 게 낫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한동안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나는 무작정 실행하는 것보다 한 번, 두 번 사유하고 실행하는 성향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혁신가가 아니니 그냥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살아가야만 하는 건가? 그러라는 법은 없다. 나에게는 꽤 괜찮은 장점, '관찰력'이 있었다. 어떠한 상황을 직시하고 본질을 파악하는 데 약간의 재능을 갖춘 사람이다. 혁신적인 무언가가 세상에 나타났다면 그 본질을 파악해 내 방식으로 변형하는 게 더 재밌고 편하다. 그렇다. 나는 사유하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먼저 뛰어가기도 하지만, 주로는 잠깐 생각한 다음에 걸음을 떼는 팔로워에 가까웠다.
-조재형, <하우투딴짓>-
내가 긴 시간에 걸쳐 안고 있던 콤플렉스 내지는 결핍감을 꼽으라면 '실행력'이라 할 수 있겠다. 내게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안타깝게도 너무 일찍 깨달았다. 상상만 하다가 끝나는 일도 있고 결정 했어도 미루는 일도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 남들도 다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찾아온 탓이었다. 물론 결심한 걸 다 실행하며 살지 않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문제는 실행의 '빈도'였다.
다른 사람이 3개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1개를 실행한다면, 나는 10개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1개를 실행한다. 결과의 횟수는 같지만 실행률이 다르다보니 나는 상대적으로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거 해야겠다! 라고 말하자마자 바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내게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 무조건 도전했던 적도 많았다. 누군가 '이거 할래요?' 라고 물어보면 정말 1초의 생각도 하지 않고 덥썩 그 제안을 무는 것이다. '네, 할래요!'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초반에는 열정에 불타올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벌려놓은 일들을 수습하기 어려워졌고 중간에 흐지부지 되며 그만둔 것도 꽤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행력은 내게 콤플렉스였다.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까 빨리 해야지'와 '그런데 하기 싫어.'의 끝없는 싸움. 하지 않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역시 실행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구박했고 이는 알게모르게 내 에너지를 마모시켰다. 에너지가 닳아 헤지다 못해 텅 비어버려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 해지면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좀 쉬어가고, 그러다 또 계획을 세우고...의 무한 반복.
하지만 책에 나온 이 구절은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했다.
과연 실행력이 최우선의 가치인가? 작가님의 말대로 나 역시 일단 실행하는 게 낫다는 데 동의하고 그러니 그렇게 노력했던 거다. 그러나 무작정 실행하는 게 내 성격과, 바꿀 수 없는 근본적인 내 성격과 정 반대의 길이라면? 단 한번도 떠올리지 못했던 의문이었다. 작가님에게도 실행력 대신 관찰력이 있었다면 내게도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나는 소위 말해 '꽂혀야' 하는 스타일인데, 일단 꽂히면 깊게 빠져든다. 기간 보다는 순간의 몰입도가 강하다.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내내 그것만 생각하고 할 정도니까. 포토샵 콜라쥬 아트에 빠졌을 때는 밥 먹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재밌었고, 피아노에 꽂혔을 때는 얼른 연습실에 가고 싶어 밤에 잠이 안왔었고, 영어 섀도잉에 꽂혔을 때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기침을 했더니 목에서 피가 나온 적도 있었다. 지속 기간은 각각 한 달도 채 안됐다. 분야도 다양하다. 나도 내 관심사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좀 쓸모 있는 방향으로 튀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아 아쉽기도 하면서 어찌 생각해보면 이 또한 다능인의 특성이 아닐까 싶고.
실행력 대신 가진 장점이 아직 명확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이것 하나는 제대로 깨닫게 된 구절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 더불어 실행에 대한 부담도 많이 줄어들었다.